[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0)중국 칭다오(청도) 한인회 이영남 전 회장 시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0)중국 칭다오(청도) 한인회 이영남 전 회장 시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7.09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30)중국 칭다오(청도) 한인회 이영남 전 회장 시

지난 6월 중국 산동성 칭다오(청도: 靑島)에서 오사카에 오신 이영남 칭다오 한인회 전 회장님을 만났다. <제17기(2015-2016) 민주평화통일 해외지역 자문위원회 칭다오협의회> 회장도 역임하신 이영남(80) 전 회장을, 같은 해에 당 협회 <일본근기(오사카, 교토, 고베지역 등)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권오일 전 회장의 소개였다. 칭다오에서 약 25년간 장신구 사업을 하시는 이영남 전 회장은 사업 협의차 오사카에 오셨다가 오사카에 사시는 이모님 가족들을 만났다. 그후 권오일 회장의 소개로 이영남 회장을 처음 만났다.

"제주도 출신이라니 반갑습니다. 저도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 출신입니다." 전신에 온화한 분위기가 넘쳐흐르는 이영남 회장의 첫인사였다. 10대까지 살던 고향 평대를 떠나서 지금은 칭다오에 사신다고 하셨다. 이영남, 권오일 전 회장님과 식사를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이영남 회장께 필자가 쓴 단편소설과 시 등을 드렸다

칭다오로 돌아가신 이영남 회장님께서 필자의 작품들을 잘 읽었다면서, 자신도 시를 쓴 적이 있다면서 부끄럽지만, 그 시를 읽어 보라면서 이메일로 보내 주셨다. 부끄러운 것은 이영남 회장님이 아니고 나 자신이었다. 필자가 쓴 졸시보다 훨씬 뛰어났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작품들은 읽은 적이 있지만, 해방 후, 한글세대가 중국에 거주하면서 쓴 작품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반갑고 좋은 시여서, 여기에 그 시 세 편을 소개한다.

작품은 <순응의 향연>이다.

순응의 향연

 

끝없이 펼쳐진 갈대의 제국

야생마의 하얀 목 갈기인 양

아기 비둘기의 부드러운 솜털인 양

 

보드랍게 피어오른 갈대의 하얀 올 위로

10월 오후의 잔염이 부서져

살포시 내려앉는다.

 

농염한 여인의 눈부신 속살 드러내듯

눈부시리 빛나는 은빛 세계여!

 

바람에 무수히 유린당하고도

미풍이 속삭여 주면

이내 주체할 줄 몰라

몸부림치고 마는 가녀린 갈대여!

 

때로는 바람이 가는 대로

넘실대는 하얀 물이랑을 만들어 놓고는

어느새 하얀 파도를 일으키는 순응의 향연

 

바람이 저만치 가 버리고

시방 고요가 엄습하고

사방은 적막의 하얀 바다가 되고

 

저 하얀 바다에 배를 띄워

푸른 하늘 닿을 듯 힘껏 노를 저어가

저 너머 그곳에 살고 있을

너를 만나고 싶다.

그리운 너를!

 

1연 첫 행에 '갈대의 제국'이라는 표현에 압도당했다. 갈대라면 낭만적이고 아주 연약한 여운을 주는 사물의 대상이다. 그 대상이 제국이라니 의외의 신선미가 돋보였다. 그 갈대는 야생마도 아니고 아기 비둘기도 아니었다. 야생마의 목에 난 가느다란 실과 같은 갈기였고, 아기 비둘기의 부드러운 솜털이었다. 이 갈대가 10월 오후의 잔염(殘炎)과 맞물려 농염(濃艶)한 여인의 눈부신 속살로 비유의 대상이 비약한다.

그렇게 연약한 갈대가 바람에 무수히 유린당하고도 꿋꿋하게 견뎌 내다가, 미풍이 속삭여 주면 그 기백은 사라지고 몸부림치고 마는 본연의 가녀린 갈대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많은 갈대들은 하얀 파도의 해원(海原)을 만들어 모세의 바다 갈림길처럼 물이랑을 만들곤 한다.

저 하얀 바다에 배를 띄워/ 푸른 하늘 닿을 듯 힘껏 노를 저어가/ 저 너머 그곳에 살고 있을/ 너를 만나고 싶다/ 그리운 너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펼쳐진 제국의 갈대 해원을 지나면, 푸른 하늘 닿을 것 같아서 힘껏 노를 저어서 가도 가도 끝없는 수평선이다. 그것만 넘어서면 유토피아 속에 그리운 너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안타까워한다.

대자연의 교향곡 속에 갈대의 요염성까지 제목에서 시사하는 <순응(順應)의 향연(饗宴)>처럼 풀어놓았다.

<코스모스의 여정>이다.

코스모스의 여정

 

어쩌면 저리도 고우랴

어쩌면 이리도 눈이 부시랴

하늘이 가을 하늘이

 

무지개색 풀어놓아

출렁이는 코스모스 꽃물결

 

여덟모 쟁반 같은

코스모스 꽃잎 위에

살포시 자리 잡은

고추잠자리

 

나래펴 파르르 떠는 건

하늘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코스모스를 질투함인가

 

갈바람 산들히 불어와

코스모스 잔허리 뽐내며

하늘하늘 춤을 추는 건

 

싹쓸광풍에 마침내 살아남아

찬란히 꽃피운

하얀 절개의 자부심인가

 

아니면

태양이 점점 멀어져

싸늘히 식어가는 계절

 

계절의 침몰을 슬퍼하면서

시한부 생명을 살아야 함을

탄식함인가

 

여덟모 쟁반 같은/ 코스모스 꽃잎 위에/ 행에서, 코스모스가 여덟모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살포시 자리잡은/ 고추잠자리/ 나래펴 파르르 떠는 건/ 하늘의 아름다움과/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 코스모스를 질투함인가/상부상조 속에 서로 살아가면서도 고추잠자리의 나래 펴 파르르 떠는 것을 질투의 대상으로 직시한 관찰력은 날카롭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서 울고 싶도록 무언가 그리울 때가 있다. <코스모스의 여정>은 모자이크처럼 그 모습의 한 단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려니 숲>이다.

 

사려니 숲

 

불볕 더위에

숨이 막혀도

 

다랑쉬 오름

꼭대기에 이르면

 

가마 아득히

보이는

사려니 푸른 숲

 

그 숲속으로

미친 듯 스며들고픈

모지락스런

여름 한나절 볕

 

사려니 숲으로 가는 길은

고부슴길 가르마길

이어가는 길

 

천둥 번개치며

내리던 비에

다보록히 자라버린

난장이 잔디길

 

사려니 숲속엔

무성한 삼나무와

이노리 나무처럼

가시박힌 나무도 있고

 

마치 태양을

삼켜버린 계절인 양

서늘한 바람이

나무와 대화하는 곳

 

숲으로 가자

사려니 숲으로!

 

<사려니 숲>에 대해서 제주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하겠다. <사려니 숲길>은 제주의 비경 31곳' 중의 하나이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이라는 '신역의 산명'에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즉 사려니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다. 사려니 숲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 생물권 보존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힐링의 최적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시는 그 사려니 숲길을 걸으면서 쓴 시이다. 자연환경으로서의 힐링도 좋지만 이 시에서는 우리 말 단어의 절묘한 묘사가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있다. 가마 아득히 보이는(멀리 아득히) 표현, 모지락스런/ 여름 한나절 볕/의 모지락스럽다(보기에 억세고 모질다로서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고부슴길 가르마 길/에서는 꾸부정한 길과 여성의 머리 가르마처럼 반듯한 길이 어우러져 이어가는 길이다. 이렇게 정겨운 우리 말 단어가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그리고 다보록히 자라버린 난장이 잔디길/은, 한 군데 오롯이 모여(나) 있는 그러한 잔디길 등, 여러 숲길을 걸어간다.

필자의 선입감인지 몰라도 <순응의 향연>과 <코스모스의 여정>에서는 제목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탓인지 한자 발음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사려니 숲>에서는 우리 고유의 고운 말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어서 또 하나의 힐링이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