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8) 사전오기(四顚五起) 사나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의원의 역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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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38) 사전오기(四顚五起) 사나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의원의 역전 승리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9.2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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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38) 사전오기(四顚五起) 사나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67) 의원의 역전 승리  

사전오기의 사나이 이시바 시게루 의원이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 역전승했다. 바로 그 전의 일이다.

"저는 수상이 되더라도 야스쿠니 참배는 계속할 것입니다." "독도에는 어떠한 구조물도 설치할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경제 성장을, 일본을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올려 놓겠습니다." 등등의 초 강경 일본 보수의 기세몰이로 공약을 내걸고 지지를 받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 早苗·63) 경제안전보장상이 자민당 총재 선거 제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다. 

필자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의 공약은 이웃 국가들과 싸움을 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보수성이 강한 나라(奈良) 지역구에서 9선을 한 실력파 의원이지만 발언 수위가 한계를 넘었다. 나라라면 한반도가 삼국시대에 국제 교류가 빈번했으며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양국 사이였다. 1994년 경주시와 나라시는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이러한 나라시 출신 의원이 한국과의 교류에서 장애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다카이치 의원이 상위 1위에서 3위 내 진출은 자민당 투표자와 일본 국민들도 예상은 했었지만 설마 1위라는 사실에는 놀랐을 것이다.

일본 첫 여성 수상이 탄생할는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지구가 마치 일본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식의 발상의 보수 의원을 총재로 뽑는 불안의 여파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과반수 미달로 실시된 1,2위의 제2차 결선 투표에서는 그 불안을 불식 시키려고 제1차 투표에서 2위였던 이시바 시게루 의원이 역전승을 거두었다. 

총재 선거에 이시바 의원은 재수 삼수만이 아니라 사수까지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고배를 마셔야 했다. 총재선 오수에 도전한 그는 이번에 떨어지면 다시는 나오지 않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임한 도전이었다. 안보, 외교만이 아니라 다방면의 정책통으로 굴지의 논객이며, 국민으로 부터는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었었다. 일반 국민들과 자민당원들에게 일본 수상에 적합한 인물 앙케이트에서는 1위가 아니면 언제나 상위권에 속했었다.

그러나 자민당 의원들에게는 인기가 없어서, 그 인기도 '워낙'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워낙 인기가 없을 정도였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제1차 선거에서 당원, 당우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했던 이시바 의원이었다.  그러나 과반수 미달로 2위였던 고(故) 아베 전 수상과 국회의원에 의한  제2차 투표에서 역전패했었다. 의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이유들 중에는 리더로서 친화력이 없어 무뚝뚝하다는 것과 자기만이 다 잘 안다는 모습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다시 복당을 하고 이시바 파벌을 만들었다가는 다시 해산하는 우여곡절을 되풀이했었다. 이것은 자신만의 권력 지향에서 빚어진 일이 아니라 정책의 갈등과 친화력의 결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도전한 이번은 달랐다. 스스로가 변하겠다면서 별로 교류가 없던 동료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자민당 각 파벌이 부당한 정치 자금 운영 처리에 대한 자민당 내부의 징계와 정화의 애매한 끝처리로, 기시다 수상의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그는 총재 선거 입후보를 사퇴해야 했다. 모든 파벌이 정치 자금 부당 처리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해체되었다. 그로나 아소오 부총재만은 이를 거부하고 이번에는 자파의 고노 후보자를 응원 않고 다카이치 후보자를 지지했다.   

기시다 수상은 자신의 후임으로 다카이치 후보자가 당선되면 자신의 정책 노선 모두가 날아가 버릴 위기에 처했다. 임기 3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한·미·일 협력 체제나, 특히 한일 관계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제2차 투표에서 전 기시다파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시바 의원을 지지하고 투표하기로 약속했다. 

이시바 의원이 승리 요인으로서 무파벌로서 각 파벌의 부당한 정치 자금에서도 자유로웠던 이시바 의원은 이 점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일본 강경 보수의 비상식론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 다카이치 의원을 견제하는 중도 세력에 의해 다섯 번째의 도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사죄해야 합니다. 다만 몇 번이나 역대 수상, 천황까지 사죄의 뜻을 밝혀도, 한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한 불만은 큽니다. 그래도 납득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사과할 수밖에 없겠지요." 2017년 5월 동아일보 인터뷰 때, 위안부 문제 등에서 한일 관계가 어려워지 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왜 한국은 반일인가. 혹시 일본이 타국에 점령 당하고, (창씨개명 정책에 의해서) <오늘부터 당신은 스미스 씨이다>라고 들었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2019년 10월 5일 아사히신문 디지털 기사에 실린 이시바 의원의 말이었다. 한국으로서는 이시바 의원이 9명의 입후보 속에 당선된 가장 적합한 일본 수상일 것이다.

이시바 시게루 신 자민당 총재는 1957년 출생. 게이오주쿠대학 법학부, 중의원 의원 12선. 지역구는 돗토리현 제1지역구. 방위대신, 농림수산대신, 간사장, 내각부특명담당대신(국가전략특별지역구), 내각부특명담당대신(지방창생) 등을 역임했다. 10월 1일 의원 총회에서 수상으로 임명된다. 부인은 대학 동창인 이시바 요시코(石破佳子) 씨이며, 딸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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