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도톤보리 크로키연구소 개설 60주년 기념전
"도톤보리 크로키연구소 개설 60주년울 맞아서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이 연구소와 30년의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오늘 그 기념전시회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리무중으로 실종된 가을은 35도에 가까운 무더위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 더위가 서로의 인사말이 되면서 9월 29일 도톤보리 크로키 연구소 개설 60주년 기념전이 코리아타운에 있는 갤러리 살토에서 열렸다.
김석출 대표의 인사말처럼 60주년의 역사 속에 도톤보리 크로키연구소가 중심으로 지속된 한일 미술 교류는 추종을 불허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한일미술 교류전은 지난 5월 10일 오사카한국문화원에서 22회째를 맞이하고 열렸었다. 해마다 한일 양국에서 오가며 개최하는데 그 지속성에 놀랄 따름이다.
"継続は力なり:게이조쿠와 찌카라나리"라는 말을 일본에서는 많이 사용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계속은 힘이 된다"라는 의미인데, 도톤보리 크로키연구소의 활동상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그것을 느끼곤 한다. 이러한 교류전에서 맺을 수 있는 인적 교류는 지속성을 갖고 있다. 학교나 공공기관의 교류는 그 담당부서에서 이동하면 개인적 측면에서 갖는 인적 교류는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 교류에 있어서, 특히 예술 분야의 지속성은 끝이 없다. 그 부가가치의 다양성은 미술계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에까지 파급된다. 필자는 미술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몇 사람의 동포 화가를 알게 된 관계로 그 교류 폭이 넓어지면서, 이러한 전시회 때는 참가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동반하기도 하여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이번 기념 전시회에는 모두 25명의 참가 속에 40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재일동포 사회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김석출 화가는 '월광'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는데 그가 갖고 있는 특유의 섬세함이 인상적이었다. 오경만 화가의 작품 '아라바스크'는 여러 사람들이 뒤엉킨 형상의 추상화였는데, '전일본아트살롱콩클상'을 받았다고 일러 주었다.
홍성익 화가의 '사람' 역시 추상화로서 양손으로 무엇을 떠받치는 모습인데, 자신을
떠받치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비약적으로 생각한다면, 타인의 혼을 떠받치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는 조선적으로 한국에 마음대로 가지 못했을 때는 '기도'라는 작품에 집착했었지만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고 했다. 남북한을 보고 나서 기도에 대한 갈구가 마음 속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필자로서는 '사람'이라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걸렸다.
살트 갤러리 관장인 장관순 화가의 '행복해요'는 동화 속에 나오는 환상적인 그림을 연상 시켰다. 필자의 이 감상과는 달리 그녀는 그림이 모두 자수(刺繡) 처럼 보인다고 그러지만 제가 그린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이 작품 외에 다른 한편도 출품하고 있었다. 필자가 아는 동포 화가는 위의 네 사람인데 더 있었다.
일본인 이시다 세이시 화가의 '내일이 없는 시계'에서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재작년 오사카 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 한일미술교류전에 그녀는 '미싱'이라는 작품을 출품했었다. 발미싱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마치 사진처럼 정밀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주는 임팩트였다. 세계 어느 나라나 가난에서 풍요스러운 가정으로 발돋움할 때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미싱이었다.
그러한 작품을 선보인 이시다 화가가 이번에는 초침이 실지로 움직이는 '내일이 없는 시계'라는 작품이었다. 그림 뒷면에 전지를 부착해서 초침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진처럼 시계는 정밀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림 오른 쪽 모퉁이에는 떨어진 분침 두개가 놓여 있었다. '내일이 없는 시계'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마치 '핵의 위기를 알리는 시계'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이해해 주셔도 됩니다' 살며시 웃으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토미와코 씨의 '나부'는 의자와 다리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순간적인 수법에 놀랐다. "어릴 적에 저는 이 부근에서 자라고 학교도 다녔습니다. 저의 고향입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지금은 많이 떨어진 외곽 도시 돈다바야시에 살고 있다는 80대이신 노화가는 그 나이를 거부하는 커렁커렁한 목소리와 행동력은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노화가의 그러한 모습은 작품 '나부'에도 느낄 수 있었다.
"3분 동안에 그려야 합니다." 작품 '나부' 3점을 출품한 간자키 아케미 화가의 말이었다. 나부 작품에는 옆 모습이나 뒷 모습 작품이 많은데 그녀의 3부작 속에서의 한편은 정면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고뇌에 찬 모습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모델은 약 3분마다 그 포즈가 다릅니다. 그
3분 속에서 스케치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면의 묘사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조용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칸자키 아케미 화가의 표면적 모습과는 다른 이면의 내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전시회는 10월 5일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