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하릿(Tamkharit) 축제
오늘은 원래 한글학교 수업일이었으나, Tamkharit을 맞이하여 임시 휴업일이 되었다. 땀하릿은 10월 23일이다. 이날은 이슬람력으로 새해 첫날 즉 설날에 해당된다.
그런데 공휴일이 아니다. 기관도 문을 열고 또 인근 학교들도 정상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엔 여직원은 한 명도 출근하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도 몇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나와야 한다고 했다. 안 나왔으면 조금 곤
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무실에선 청장인 디렉터의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느라 청장은 소회의실에서 근무한다. 내방 바로 옆이다. 오다가다 살펴보면 확실히 집중하여 열심히 근무하는 모습이 보인다. 직원 사무실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서 근무하니 직원들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듯하다.
같은 구역에 근무하는 오스만 게에는 전직 초등학교 교장이다. 별로 할 일도 없고 지금은 우리 사무실의 도서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책이라야 몇 권되지도 않고 딱히 중요한 업무도 없고 해서 항상 불평에 가득 차 있다. 그는 도서관 직인인 카제(KASE)를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도장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며 투덜거린다. 공문을 발송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 이곳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부인은 그의 고향인 Dondou에서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자주 아파서 이곳까지 와서 진료 받는 일이 많다. 고향까지는 12시간 거리다. 부인은 생활이 어렵고 또 이곳까지 자주 오려면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수도인 다카에 오게 되면 이곳에서 생필품을 사다가 시골에서 팔기도 한다.
또 그는 신문 기고가이다. 가끔씩 그가 쓴 글을 나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영어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도 한다. 착하고 부지런하다. 그런데 그에 알맞은 업무가 주어지지 않아서 불평이 많고, 또 어떻게 하면 다른 부서로 근무처를 옮길까 궁리 중이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2015년 10월 24일)
까프린(Kaffrine) 가는 길
11월 4일부터 6일까지 까프린(Kaffrine)에 출장을 다녀왔다. 우선 까프린이라는 이름이 너무 예쁘다. 꼭 꽃 이름 같기도 하고 예쁜 공주를 떠올리기도 한다. 아침 일찍 챙기고 7시 30분에 우선 Pekine Garage로 갔다. 다카 종합 터미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탑승구에 까프린이 없었다. 아마 그곳까지 가는 손님들이 많지 않아서 없나 보다.
여기저기 알아보고 한참 찾아보니 땀바쿤다 승차장 뒤쪽에 까프린 가는 셋플러스가 있었다. 세네갈의 거의 유일한 전국을 연결하는 차량이 셋플러스다. 아무런 안내판도 없이 그냥 물어물어 찾아가는 차량이었다. 내가 첫 손님이었다. 문제는 이곳에 있는 차량은 시간에 관계 없이 손님이 가득차야 출발한다는 것이다. 즉 일곱 명이 다 모여야 출발한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니 손님이 가득차서 10시 30분 출발했다. 두 명의 여자가 각각 아이를 안고 있어 결국 운전자까지 이 좁은 차에 손님이 열 명이 되었다. 이 셋플러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서너 번은 폐차했어야 할 정도의 낡은 차량이다. 그러나 어쨌든 가기는 간다. 까프린까지 6시간 정도의 거리다. 거의 쉬지 않고 중간에 화장실도 못 가고 까프린에 도착했다.
오늘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숨이 턱턱 막혔다. 소위 태양이 작열하는 날이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고쳐 앉아 보았지만 여기저기 너무나 불편했다. 까프린에서 Hotel de Kaffrine 까지는 1000세파 정도 한다고 해서 택시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오토바이로 갈 것인지 아니면 택시로 갈 것인지 물었다. 택시를 원한다고 하자 택시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준다. 그런데 택시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아무 택시 표시가 없는, 그냥 옆에 서있는 폐차가 택시라고 했다. 정말 움직이는 차일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차도 없으니 그냥 타 보기로 했다. 막상 타니 문도 안 닫히고, 모든 배선들이 드러나 있다. 실제 움직일지 걱정이 되는 차였다. 그래도 느릿느릿 출발했다. 그리고 그런 속도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방갈로 형으로 되어 있었다. 유일한 편의 시설은 에어컨이 전부였다. TV도 없고 변기는 깨져 있었다. 모기장은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다음 날 얼마 전까지 우리 사무소 직원이었던 Mamadou Soujnbounou가 호텔로 왔다. 함께 교육청으로 갔다. 교육장을 만나서 온 목적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음식’ 불어판을 선물로 주었다. 순부누(Mamadou Soujnbounou)는 다섯 평쯤 되는 좁은 사무실에서 다섯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젊은 장학사가 유별히 반갑게 맞이한다. 알고 보니 그는 작년에 한국연수단으로 선정되어 한국에서 한 달 동안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한다.
다른 장학사와 함께 셋이서 유치원 방문을 했다. 처음 간 곳은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병합 운영하는 학교였다. 원장은 나이 많은 백인 수녀였는데, 이태리 출신이었다. 유치원은 3, 4, 5세 학급이 편성되어 있었고, 시설은 잘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수업 자료와 교구는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었다. 일일이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들어서는 교실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젬벨(북)을 치며 소리 높여 인사한다.
같은 구역에 있는 초등학교도 살펴보았다. 4, 50명은 되어 보인다. 모두가 일제식 수업에 수업 자료는 칠판과 교과서가 전부이다. 교실 내에 비치된 자료도 교구도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른 자세로 설명에 열중한다. 우리를 보자 큰 소리로 인사한다. 아이들은 밝고 예의 바르다.
이어서 공립 유치원을 방문했다. 세네갈 전통 움막을 모델로 큰 한 칸 집이었다. 즉 3, 4, 5세 어린이들을 한 공간에서 교육하고 있었다. 일종의 합동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어서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간이 칸막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교재도 교구도 없다. 아이들은 그냥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서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고 있었다. 나는 함께 간 장학사들을 식당으로 초대했다. 식사 후에 교육청으로 함께 가서 방문 활동을 마무리했다.
오후 시간이 있어서 까프린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택시를 임대했다. 1시간에 7000세파 주기로 했다. 워낙 작은 마을이어서 특별히 구경할 곳도 없었다. 고등학교는 2개가 있었고, 이어서 경찰서, 지방법원, 시청사, 보건소 등을 둘러보았다. 전통 시장은 꽤 컸고,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성당도 발견했다.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아주 작고 허름했다. 잠시 들어가서 화살기도도 드리고 촬영도 했다. 까프린은 말리와 가까워서 국경 가까이 가보기도 했다.
40분 정도 돌아다니니 시내를 다 구경했다. 호텔로 들어서니 이른 오후였다. 호텔이라는 명칭만 붙은 여인숙 수준도 안 되는 방이었다. 에어컨을 켜니 조금 돌다가 꺼진다. 에어컨이 안 되니 숨이 턱턱 막히고 또 창문도 아주 작게 두 개 나와 있는데 열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전기 공사를 하고 있었다. 에어컨이 안 된다고 말하고, 조금 기다리니 다시 가동되었다. 호텔 내 식당이 없다. 인근에도 식당이 없다. 일하는 청년에게 물어보니 주문하면 식당에서 배달한다고 한다. 뿔렛(치킨)을 시켜서 바께트와 함께 대충 먹었다.
시간이 있어 가지고 간 ‘한국의 역사’ 책을 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가 병기된 외교부에서 발간한 책이다. 오랜만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대여섯 시간 책에 빠졌다. 고조선, 발해, 한사군, 중국의 동북공정, 일제의 잔인한 약탈과 살인, 고려의 위대한 유산인 금속활자와 청자와 팔만대장경 또 세조의 업적도 살펴볼 수 있었다. 왔다 갔다 하는 전기 사정에 더위를 계속 견디면서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잠자리에 든 후에는 계속 정전이다. 어둠이 갑자기 찾아와 앞을 내다보지 못할 만큼 깜깜하다. 문도 찾을 수 없다. 핸드폰으로 겨우겨우 출입구를 찾아 프런트에 갔으나 아무도 없다. 참 황당한 일이다. 모두 퇴근해 버린 것이다. 또 방에는 전화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전화 예약할 때 입력해 둔 곳으로 전화를 여러 차례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문자로 서너 차례 연락을 했다. 답신은 없다. 그래서 내 생각에 오늘 전기 공사를 할 때 보니 메인 스위치를 올리면 전기가 오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문자로 메인 스위치를 올리라고 했다. 어쨌든 잠시 후에 전기가 왔고 에어컨도 가동되었다. 새벽 2시까지 이렇게 씨름했다. 잠은 그럭저럭 건네 뛰었다.
나중에 보니 여기저기 모기에 많이 물려 있었다. 혹시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침 호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은 바께트 한 조각과 커피가 전부다. 물값도 지불해야 했다. 어제 저녁의 불편함을 프런트 직원에게 말할까 하다 그냥 체크 아웃을 하고 나왔다. 택시를 불러서 터미널까지 갔다.
터미널엔 다카까지 가는 셋플러스도 있었으나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손님이 다 차야 출발하기 때문에 몇 시간 후에 떠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못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선 Kaolack까지 가는 차를 탔다. 그곳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가면 되니까 그곳에선 다카까지 가는 차가 많기 때문에 그게 좋다고 장학사가 말해 주었었다. Kaolack까지 가는 차는 그야말로 차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차량이었다. 계기판도 없고 전선이 여기저기 얼기설기 얽힌, 문도 잘 열리지 않고 모든 차체가 심히 부식되고 너덜거리는 차였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타니까 나도 그냥 탈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무사히 Kaolack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시 다카행 셋플러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다카까지는 거의 5시간이 걸리니까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그런데 세 번이나 차를 보냈으나, 도저히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현지인들이 제빨리 자리를 잡아버려서 편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어떤 순서가 없고 눈치와 행동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1000세파를 주고 앞자리를 잡아 달라고 부탁해서 출발할 수 있었다.
한 시간쯤 가다가 차가 멈췄다. 본넷을 열고 수리도 보고 냉각수도 보충한다. 근처 집에 가서 물을 길어다 붓는다. 5, 6차례 가다 멈춰 물을 붓고 또 출발했다. 결국 다 가지 못하고 음브르(Mbour) 터미널까지 겨우 가서 다른 차량으로 모두 갈아탔다.
그런데 갈아탄 차는 운전자가 엄청나게 과속한다. 지금까지 지체된 시간을 메우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 Kaolack에서 다카 사이에는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가 비 포장 도로다. 모래와 먼지와 많은 차량으로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거의 안 보일 정도의 길을 서로 교차하며 달린다. 속도는 너무 빠르고 에어컨은 아주 없으니 모든 문을 완전히 개방하여 달린다. 결국 그 심한 모래 먼지 속을 헤치고 들이마시며 올 수밖에 없었다. 아마 먼지를 한 컵은 마시지 않았나 모르겠다.
까프린 너무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출장은 너무 너무 힘들었다.
(2015년 11월 8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