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50)한일 탁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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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50)한일 탁구대회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10.28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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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운 선생님의 KOICA 해외 교육 봉사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한일 탁구대회

일본 봉사단(JICA)과 한국 봉사단(KOICA)이 친선 탁구 경기를 했다. 장소는 Stade de Leopold Cadas Senghor 스타디움이다. 경기장 이름이 세네갈 초대 대통령인 생고르라고 하는 이름을 땄다. 한글학교 수업을 마치고 황재윤 선생님, 인턴들, 그리고 내가 함께 갔다. 교회 차량으로 경기장까지 갈 수 있었다.

경기장은 지어진 지는 오래되었으나, 관리는 잘 되고 있었다. 경기장 주변은 주차 차량과 장사꾼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경기는 없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설 시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보인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한글학교 소풍 행사
대서양을 바라보며 한글학교 소풍 행사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데 신분증을 요구한다. 좀 황당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경기장의 메인 구장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계속 물을 내뿜고 있다. 나중에 우리가 기념 촬영을 하려는 데 여자 경찰이 나타나서 잔디 구장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아주 정성들여 키우고 관리도 경찰이 하기 때문에 잔디가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텔레비전에서 국제 축구 경기를 할 때 이 경기장을 몇 차례 본 기억이 새롭다. 세네갈의 잔디 구장은 한 두 개 정도밖에 없다.

원래 시작 예정 시간이 2시였다. 우리는 일찍 출발했으나 길이 막혀 결국 2시 40분에 도착했었다. 그런데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30분 정도 기다려야 시작되었다.

일본팀과 한국 팀이 서로 혼합하여 5개조로 편성되었다. 나는 E조다. 그래도 내가 탁구를 좀 치는 것으로 평가되어, 네 번이나 출전하도록 대진표가 작성되어 있었다. 전에 자문단과 코이카 사무원들이 유숙소에서 탁구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모두가 거의 초보여서 내가 조금 돋보였나 보다. 다른 조와 처음 상대는 우리 코이카 인턴인 권대명 선생 팀이다. 그도 거의 초보였다. 나는 같은 한국인이고 또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치다 보니 내가 지고 말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우리 조를 위해 정신을 집중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기나 게임 같은 것에 최선을 다해 꼭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냥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성격 때문에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죽기 살기로 하면 이길 수도 있는 경기를 그럭저럭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기면 상대방이 슬플 것이라는 생각에 항상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락로즈 마을 모습
락로즈 마을 모습

다음 상대는 코이카 권덕용 선생이다. 내가 이겼다. 그 다음은 여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조민지다. 그녀와도 내가 이겼다. 마지막 상대는 일본의 젊은이였다. 아주 쉽게 이겼다. 4번의 경기에서 3번 이긴 것이다. 결국 종합우승은 C조인 코이카 송기정 소장 팀이 차지했다. 소장님은 승부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오늘도 아주 맹렬하게 공격하고 결국 승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본 봉사단의 가토 소장과 우리 소장과의 경기가 빅 매치였다. 이 경기에서 송 소장이 이겼다. 그전에 치러진 예선에서는 가토 소장이 이겼었다. 결국 1대 1이어서 서로가 행복했다.

경기가 끝난 후에 우리는 차량으로 이동하여 일본 봉사단 사무실로 갔다. 함께 대화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했다. 일본팀에서는 양 한 마리를 준비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양이고, 또 식당에서 미리 조리하여 먹기 좋게 썰어서 가져왔다. 우리 쪽에서도 김치와 밥 등을 준비했는데 양이 적어서 금방 동났다.

나는 가토 일본 봉사단 소장과 대화를 좀 많이 나누었다. 그는 우리 모임에서 긴 인사말을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이형우 단원이 일본에서 3, 4 년 산 경험이 있어서 통역을 했는데, 오히려 잘 못한 부분은 고쳐주고, 스스로 통역도 해주었다. 부러운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이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에 익숙한가 보다. 그는 나에게 장인이 대구 출신이고 장모님은 전주 사람이라고 한다. 혼자 이곳에서 생활하는 데, 부인은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전에 장학사, 장학관으로 일할 때 몇 차례 일본을 교육 출장 간 적이 있었는 데, 당시 문부성 장관이었던 나까소네와 함께 군마현도 가고 일본 교육도 살펴 봤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는 나중에 외무성 장관으로도 일했었다. 나의 말에 소장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아주 호남형으로 인상도 좋고 성품도 무척 온화해 보였다.

락로즈 초등학교
락로즈 초등학교

많은 수의 두 나라 봉사단원들은 함께 모여 이런 친선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앞으로 1년에 한 번 만이라도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JICA는 Ericson 빌딩 3층에 KOICA는 4층에 있다.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교류가 전혀 없었음은 조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본 현지에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두 건의 친선 축구가 있었다. 그 사이에 소원했던 한일관계가 풀리면서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하여 친선 축구를 했는데, 4대 3으로 한국이 이겼다. 그리고 코이카 간부들이 일본의 자이카를 방문하여 축구를 했는데 2대 2로 비겼다고 한다. 며칠 전에 물꼬를 튼 한일 정상회담의 분위기기 모든 분야에 퍼져나가고 있어 보인다. 이래저래 오늘은 양국의 관계된 사람들에게 의미도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15년 11월 7일)

락 로즈(Lac Rose)

오늘은 모처럼 쾌청한 날이다. 미사를 보고 나서 와서 성가를 듣는다. 또 라면을 끓여 먹었다. 행복한 음악을 들으며 피터 흅커트가 쓴 ‘그레이트 게임’을 읽는다. 근대사에서 영국, 소련, 프랑스 등이 인도를 중심으로 침략 활동을 어떻게 전개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거의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어제는 한글학교에서 Lac Rose(장미빛 붉은 호수)에 다녀왔다. 수도 다카르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낯선 방문자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는 분홍빛 호수다. 락로즈는 대서양과 좁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으며, 건기에는 소금 함유량이 1리터당 300 그램 이상으로 중동의 사해와 비슷한 수준의 소금 호수다. 이곳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막 자동차 경기 파리-다카르 랠리의 결승 지점이며, 시상식의 무대이기도 했던 곳이다.

1970년대까지 락로즈 호수는 평범한 호수에 불과했으나 세네갈에 극심한 가뭄이 들이닥쳐 호수가 급격히 마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호수 바닥에 있던 소금이 올라왔다. 지표면 상승으로 소금 채취도 가능해지면서 호수가 분홍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분홍빛을 내는 이유는 호수의 염분에 의해 생기는 시아노 박테리아에 의한 것이다. 이 박테리아는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붉은 색소를 내는 성질이 있다. 호수의 염도가 너무 높아 다른 유기체는 서식하지 못한다. 이 박테리아는 신체에 무해한 것으로 호수에서는 수영만 가능하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높은 염도에 의하여 호수 위에 두둥실 떠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락로즈에서

이곳은 다카에 속하면서도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꽤 먼 거리에 있다. 이곳까지 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차량이 여의치 않으면 갈 수 없다. 정종량 선생이 전부터 몹시 가고 싶어 해서, 언젠가 택시를 대절해서 함께 가기로 했던 곳이다. 나는 기회가 있으면 가려고 택시 기사에게 택시비도 알아보고, 관광할 곳도 알아보곤 했었다. 그 기사는 그곳까지 왕복하면서, 1시간 정도 중간에 구경하는 것으로 2만 5000 세파를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마침 한글학교에서 그곳으로 소풍을 간다니 너무나 잘 되었다. 우선 정 선생님께 함께 가자고 권하고 교장 선생님의 동의도 얻었다. 점심비 5000 세파만 부담하면 된다고 한다.

아침에 교회 차량으로 집에서 출발하여 교회에 집결했다. 다시 교회 차량과 학부모 차량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학부모님들은 거의 모두 나왔다. 총 40여명이 되었다. 그곳에는 멋진 호텔도 있었다.

사막 투어를 했다. 1시간 30분 가량의 일정이다. 트럭을 개조한 차량을 탔다. 손잡이가 있고 위쪽은 모두 개방된 차다. 역시 아주 오래된 차다. 이슬람 무장 단체들이 소동을 벌이지 않았던 옛날에는 이곳이 파리-다카 사막 랠리의 최종 지점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 랠리를 우리가 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막이어서 정해진 길이 없고, 사막 위를 임의적으로 달리는 코스여서 흥미진진하였다. 오르내리는 경사가 아주 심해서 차가 전복되지 않을까 하고 몹시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가다가 막히면 뒤로 또는 다른 길로 가면서 흥미롭고 신나는 사막 질주를 경험했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코스였다. 아이들과 어머니들은 계속 괴성을 지르고 즐거워하였다.

랠리 중간에 백 목사님이 대표로 있는 NGO Better World가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있어 잠시 들렀다. 사막 가운데 학교만 덩그렁 놓여 있었다. 식수 탑도 있다. Better World가 코이카와 협력사업으로 학교 건축과 급수시설을 지원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휴일인데도 우리가 방문한다니 모두 학교에 나와 있었다. 교실은 비교적 시설이 잘되어 있고, 선생님들도 열성이 깊어 보였다. 아이들과 얘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사막랠리 체험장
사막랠리 체험장

사막 가운데 마을이 있다. 나무도 거의 없는 사막 마을에 아이들과 주민들은 사막에서 뛰놀거나 그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TV 안테나들이 보인다. 전기가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모두가 태양열 발전(Solar System)을 하고 있었다. 한글학교 교사인 신성엽 부부도 Better World 직원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데 태양열 발전으로 냉장고와 전등을 켠다고 했다. 에어컨을 켜면 작동이 중단된다고 한다. 참으로 극한의 여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45도 가까운 폭염 속에 선풍기도 켜기 어려운 곳에서 살면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으로 느끼는 날씨는 조금 선선해 보였다. 설명을 들어보니 워낙 건조해서 서늘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계속 가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끝없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인적은 전혀 없다. 앞으로 이 아름다운 백사장과 Lac Rose를 연결해서 관광지로 만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았다.

사람은 없는데 백사장은 온통 쓰레기 더미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수십 년간 치우지는 않고 계속 쌓인 플라스틱과 비닐 제품 쓰레기들이다.

Lac Rose(장미 호수)는 붉은 호수여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앞에서 조금 설명했지만 이곳은 옛날에 바다였다가 지층 활동으로 바다와 분리되었고, 뜨거운 열기로 수분이 계속 증발했지만 염분이 쌓여서 소금 호수가 된 것이다. 예전부터 국가에서 소금 채취를 금해서 아름다운 붉은색 호수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에 국가에서 소금 채취를 허가했다. 지금은 수십 개의 회사와 개인들이 소금을 채취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소금 호수의 분위기를 많이 잃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오히려 흉물로 전락할는지 몹시 걱정된다.

한일 봉사단 단장님들과
한일 봉사단 단장님들과

사람들이 우리를 부른다. 가보니 우리가 올 줄 알고, 그 사이에 백사장 모퉁이에 관광 기념품을 전시해 놓았다. 대부분 목각품인 데 품질은 다카의 물건들과 별 차이는 없는 데 값은 워낙 비싸다. 아무도 사지 않는다. 다카에서 3000 세파 정도 하는 것을 1만 5000 세파 달라고 하니 구매가 안 이루어지고 있다.

사막 투어를 끝내고 호텔 방갈로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호텔에서 준비한 닭고기, 생선 요리 등이 나왔다. 또 목사 사모님이 별도로 김밥과 떡을 준비해 오셨다. 다른 학부모님들도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가져와서 함께 나눴다.

식사 후에는 야외 교실에서 모래 그림을 그렸다. 몇 주 전부터 선생님들이 재료를 준비했고 동영상으로 미리 학습했다. 아이들은 신나게 그린다. 이 곳 세네갈에서는 관광지 마다 모래 그림을 판다. 풀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색깔의 모래를 붙여서 그림을 완성한다. 모두 열심이다. 그림을 완성한 아이들은 호텔 야회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6시를 훌쩍 넘기고 귀가했다. 정말 오랜만에 즐긴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정 자문관님이 너무 좋아해서 나의 기쁨이 배가되었다. 귀가할 때 목사 사모님이 종이 가방을 주셨다. 집에 와서 보니 진라면 열개가 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필요한 기호품 중의 하나가 라면인 데 너무도 좋은 감동적인 선물이다. 최소 열 날은 행복할 것 같다. 모두에게 너무 고맙고 나에게는 행복한 하루였다.

(2015년 11월 15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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