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철과 청산도 무녀, 한 생애에 만나야 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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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철과 청산도 무녀, 한 생애에 만나야 할 운명?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4.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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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제주경제일보는 마음과 삶을 살찌울 “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를 게재한다. 문학을 통해 일상을 짚어보는 일이야말로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금속이 제련가의 손을 거치며 용처가 다양해질 터인데, 문학 또한 그렇다. 말과 글을 다루는 솜씨, 그것을 읽고 평가하는 독자들의 해석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송인영 시인이 그리는 작품속 인물의 세계를 감상한다. [편집자주]

>1< 장한철과 청산도 무녀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듯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냥 그대로 묻혀버렸을 이야기. 그 이야기가 빛을 볼 수 있었던 데는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제주사람 장한철(張漢喆)에 의해서다. 호는 녹담(鹿潭), 어려서부터 문재가 뛰어나 여러 번 향시에 수석 합격하여 과장에서 그의 이름을 날렸던 그는 조선조 영조 46년(1770년) 12월 25일(음력)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29명의 거민과 함께 뭍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만 풍랑을 만나 노도 근해에서 조난을 당하게 되고 그 후, 류큐열도 호산도와 전라남도 소안도 청산도를 거쳐 1771년 5월 8일 마지막으로 남은 8명의 제주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와중에 생사를 넘나들었던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이 기록이 바로 ‘해양문학의 백미’라고 일컫는 장한철(張漢喆)의 ‘표해록(漂海錄)’이다. 이는 당시의 해로와 수류 계절풍 등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되어 해양지리서로서의 문헌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제주도 삼성(三姓) 신화와 백록담과 설문대 할망의 전설, 류쿠태자에 관한 전설 등이 풍부하게 실려 설화집의 가치로도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또한 이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한 인간이 일궈낸 인간승리에 대한 기록임은 물론이거니와 제주민의 위상을 드높은 기록이기도 하여 제주도는 이를 높이 사 지난 2008년에 지방문화재로 지정 한 바 있다.

특히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8명의 사람들이 청산도에 이르렀을 때, 그 곳 주민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이 섬에 머무르게 되는데 바로 이곳에서 그는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남편을 여읜 20살의 과부인 그 곳 청산도 무녀의 딸이었던 그녀는 뜻밖에도 장한철이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꿈속에 나타나 물을 건네준 바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천년의 사랑도 지나고 보면 하룻밤 사랑이라고, 여기 정확히 250년이 지난 오늘 그 절절했을 사랑을 위무하는 작품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납읍천 도끼돌에 꿈이라도 별렀을까

1770년 12월 25일, 못 가둔 그 꿈 하나

기어이 조천바다에 돛배 한 척 띄운다

 

믿을 걸 믿어야지 뱃길을 믿으라고?

소안도도 유구열도도 들락들락 들락키면

몇 명 또 바다에 묻고 만가 없이 가는 눈발

 

파도가 싣고 왔지, 청산도에 왜 왔겠나

꿈속에서 물 한 모금 건네던 무녀의 딸

하룻밤 동백 한 송이 피워놓고 돌아선다

 

그리움도 장원급제도 수평선 너머의 일

나도 야성의 바다, 그 꿈 포기 못했는데

단애를 퉁퉁 치면서 애월에 달이 뜬다

"

오승철 시인의 "애월 -장한철 표해록에 들다"이다.

사람의 한 생애 동안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 장한철과 청산도 그 무녀의 딸이 그런 운명이 아닐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위험천만한 바다에서 이 시인의 말처럼 파도라고 밖에는 더 이상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놓아버리면 그 즉시 끝나버릴 마지막 이승의 삶에 하늘도 측은히 여기셨는지 한 여인을 보내 목숨 같은 물 한 모금 건넸을.

그러나 섬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리움도 장원급제도 모두 다 수평선 그 너머의 일. 때문에, 장한철도 우리 모두도 다 야성의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섬사람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죄로 종내는 꿈꾸었던 그 많은 꿈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단애가 오늘 저 애월바다를 흐르는 달이 아니겠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심정이라니.

바라보면 언제나 부르지 않아도 늘 먼저 달려오는 바다! 그 바다 애월바다에 오늘은 내가 섰다. ‘장한철 산책로’라 명명한 장한철의 바다라 그런지, 부딪는 파도가 언뜻 언뜻 그의 그 흰 장삼자락만 같다. 질기디 질긴 목숨 종내는 살아 돌아와 문득 문득, 그리움에 사무치면 이 바다에 나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을. 그리고는 다시 총총 발길을 돌려 붓에 묻힌 검은 피로 ‘1771. 01. 09. 사랑과 귀향’ 으로 시작되는 ‘표해록’의 그 어느 한 부분을 써 나갔을.

하여, 오늘은 나도 그가 그립다.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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