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모님께 단 하루만이라도 ‘어쩌다 맑음’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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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모님께 단 하루만이라도 ‘어쩌다 맑음’이었으면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5.1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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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맑음

                                  문순자

바다에 반쯤 잠겼다 썰물녘 드러나는

애월 돌염전에 기대 사는 갯질경같이

한사코 바다에 기대

서성이는 생이 있다

그렇게 아흔아홉 세밑 겨우 넘겼는데

간밤엔 육십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아기 젖 물리란다며 앞가슴 풀어낸다

사나흘은 뜬눈으로, 사나흘은 잠에 취해

꿈속에서도 꿈을 꾸는 어머니 저 섬망증

오늘은 어쩌다 맑음

요양원 일기예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그 사이, 낯익은 승합차 한 대가 내 앞을 지나갔다. 살아생전 어머님이 타고 내리던 그 승합차. ‘치매노인주간보호센터’ 그 글자도 선명한. 그러고는 무심결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순간, 왜 깨달음은 항상 늘 이렇게 늘 뒤늦게 오는 것일까. 치매를 앓는 어머님을 모시는 게 너무나도 힘들어 나 힘든 것만 생각했지 정작 며느리의 시중을 받는 어머님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울다가 집으로 돌아왔던 그해 그 봄. 꿈결에 어머님을 찾아뵈었던 그 기억이 이 시를 읽는 동안 다시 새롭다.

시인도 그러했으리라. 아흔아홉 세밑까지 한사코 바다에 기대 서성이는 생. 자식에 자식, 그 자식에 자식에 이르기까지 어미 몸 빌리지 않고 이 땅에 온 목숨이 어디에 있겠으며 그 앞가슴을 의지해 목숨 부지하지 않은 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섬망증에 시달리며 사나흘은 뜬눈으로 사나흘은 잠에 취해 꿈속에서도 꿈을 꾼다는 어머니. 어쩌면 이 땅을 사는 우리 모두가 이처럼 꿈꾸다가 가는 존재가 아닐는지. 하여, 이 꿈 같은 세상에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단 하루, 오늘 이 하루만이라도 부모님께 ‘어쩌다 맑음’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만의 욕심일까.

[송인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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