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 (7) 유품 보고서
상태바
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 (7) 유품 보고서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6.10 1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품 보고서

 

한낱 유품이란 매미허물 같은 걸까

껍질만 벗어놓고 황급히 뜨신 그 길

어머니 놓친 올레길

들래말래 첫 제삿날

장롱 속 씨고구마 뭣 때문에 남겼을까

어머니를 모시듯 내 집으로 들고 와

수반에 물 한 사발도 같이 올려놓는다

썩으면 썩는 대로 내다버릴 참이었는데

잔소리, 잔소리 같이 삐죽 삐죽 돋는 새순

하늘에 절하는 나도

이 세상 외로운 유품                  -김영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머니, 그 중에서도 제주 어머니들은 삶, 그 자체가 곧 오늘이고 내일이다. 자식을 낳고 기르고 공부 시키고 그 자식이 장성하여 결혼을 한 후에도 아들, 딸이 집 장만한다고 하면 한 푼. 종종 손주들 학비에 보태라고 두 푼, 심지어는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 사후 장례비용에 세 푼.

이런 어머니의 유품인 씨고구마가 오늘은 삐죽삐죽 시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어른들안티 잘 허라이. 부모안티 잘 허민 그거 어디 안 가는 거여. 동기간에는 ‘화목’해사 된다. ‘화목’ 빼면 시체여. 아이들은 커도 아이들이난 부아가 나도 잘 젼디곡. 경허곡 ᄂᆞᆷ 말(놈말)은 사흘만 허민 실프는거난 ᄂᆞᆷ말(놈말)에 너미 신경 쓰지 말곡. 노파심에서 ᄄᆞ ᄀᆞ람쪄마는(또고람쩌마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난 실퍼도 몸 생각허영 밥 꼭 제 때에 먹곡……”

이 새순을 어찌 물로 키웠다 할 수 있겠는가. 가시고 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잔소리, 그 잔소리만 더 사무치게 그리워 물 대신 눈물로 새순을 키웠을.                                                                      <송인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