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보고서
한낱 유품이란 매미허물 같은 걸까
껍질만 벗어놓고 황급히 뜨신 그 길
어머니 놓친 올레길
들래말래 첫 제삿날
장롱 속 씨고구마 뭣 때문에 남겼을까
어머니를 모시듯 내 집으로 들고 와
수반에 물 한 사발도 같이 올려놓는다
썩으면 썩는 대로 내다버릴 참이었는데
잔소리, 잔소리 같이 삐죽 삐죽 돋는 새순
하늘에 절하는 나도
이 세상 외로운 유품 -김영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머니, 그 중에서도 제주 어머니들은 삶, 그 자체가 곧 오늘이고 내일이다. 자식을 낳고 기르고 공부 시키고 그 자식이 장성하여 결혼을 한 후에도 아들, 딸이 집 장만한다고 하면 한 푼. 종종 손주들 학비에 보태라고 두 푼, 심지어는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 사후 장례비용에 세 푼.
이런 어머니의 유품인 씨고구마가 오늘은 삐죽삐죽 시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어른들안티 잘 허라이. 부모안티 잘 허민 그거 어디 안 가는 거여. 동기간에는 ‘화목’해사 된다. ‘화목’ 빼면 시체여. 아이들은 커도 아이들이난 부아가 나도 잘 젼디곡. 경허곡 ᄂᆞᆷ 말(놈말)은 사흘만 허민 실프는거난 ᄂᆞᆷ말(놈말)에 너미 신경 쓰지 말곡. 노파심에서 ᄄᆞ ᄀᆞ람쪄마는(또고람쩌마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난 실퍼도 몸 생각허영 밥 꼭 제 때에 먹곡……”
이 새순을 어찌 물로 키웠다 할 수 있겠는가. 가시고 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데 잔소리, 그 잔소리만 더 사무치게 그리워 물 대신 눈물로 새순을 키웠을. <송인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