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8) 발가락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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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8) 발가락 낙관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6.17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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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낙관

볕 좋은 주말 아침 운동화를 빠는데

물에 불린 깔창 두 장 비누칠하다 보니

과묵한 열 개의 눈이 나를 빤히 보지 뭐야

 

아무 일, 아무 일 없다고 모닝 키스 해놓고선

구조조정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 믿지, 큰소리치며 출근 인사해놓고선

 

몇 번이나 참을 忍자 마음에 새겼으면

이 깊은 동굴에 와 낙관을 찍었을까

지렁이 울음소리로 혼자 눈물 삼켰을까

 

제 철 조기 찌개 끓여 한라산 올린 밥상

못하는 술이라도 한두 잔 부딪히자

낮술의 힘을 빌어서 고백할까 당신 최고!             김영숙

 

  전생의 원수지간이 이생의 부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서로 죽고 못 살아서 결혼을 한 사이인데도 밀월, 그 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날부터 다시 피 터지게 싸우는 게 부부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런 옆 지기가 어느 날인가부터 측은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정수리는 언제 저렇게 빈 거며 걸음은 또 저렇게 팔(八)자로 휘고 키는 또 언제 저리 작아진 건지.

  이러구러 서른 해 그리고는 오십 줄. 위로는 눌러대고 아래로는 치고 올라와 더는 설 자리가 없어져 날마다 밥 먹듯 반복되는 구조조정 속에서도 내색 한 번 하는 일 없이 묵묵히 그 ‘가장’이라는 돌덩이를 한 번도 내려놓지 않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이 땅의 가장들에게 오늘은 그대들을 위한 성찬을 차릴 것이니, 이 섬도 섬이고, 그 술잔에 뜨는 것도 섬일지니 이렇듯 오늘은 아내라는 섬과 남편이라는 섬이 만나 저 바다가 다 배가 아프게 ‘철썩 철썩 위하여 위하여’ 원 없이 행복하시라. 백년해로가 뭐 별건가. 이런 게 백년해로지!    <송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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