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카파스 티모르 레스테(Capas Timor-Leste)’ (1)미래, 준비하여 도전하는 사람들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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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카파스 티모르 레스테(Capas Timor-Leste)’ (1)미래, 준비하여 도전하는 사람들의 영역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6.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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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래, 준비하여 도전하는 사람들의 영역
전 동티모르와 세네갈교육부 교육정책자문관 이영운 선생님
전 동티모르와 세네갈교육부에서 교육정책자문관으로 봉사활동을 한 이영운 선생님.

제주경제일보는 이영운 선생님의 해외교육정책자문활동과 관련한 글을 싣습니다. “이영운 선생님의 ‘카파스 티모르 레스테(Capas Timor-Leste: 아름다운 동티모르)”란 큰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이영운 선생님은 40여년 가까이 중등학교에서 제주교육발전을 위해 헌신하다 정년 퇴직 후 세네갈(14년7월~16년7월)과 동티모르(17년8월~18년7월) 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으로 3년여 동안 해외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동티모르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1000만달러(100억원)를 지원받아 아름다운 캠퍼스와 최신 장비를 갖춘 최고의 기술 전문학교를 설립했고, 이학교의 성공적 운영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영운 선생님은 이들 나라 교육부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파견한 교육정책자문관으로 해외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영운 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세계의 온 나라가 밝은 장래를 위해 교육을 얼마만큼 중시하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이영운 선생님(영어)은 재직중 제주도교육청 장학관, 위미중 교장, 제주외국어고 교장, 제주중앙여고 교장 등을 역임했고 시인, 수필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세네갈 교육부장관과 현지 업무 협의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했다.
동티모르 교육부장관과 현지 업무 협의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했다.

◎ 외교부 소속 국제협력단 해외자문관으로 파견돼…베코라 기술고선 한국어가 필수과목

“안녕하세요, 선생님?”

“에밀리에, 안녕! 오늘은 얼굴이 더욱 빛나 보이는데요. 왜 학교에 일찍 나왔어요?”

“학기말 시험에 프로젝트 준비도 해야 합니다.”

이 곳은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입니다. 학교 안에선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교문을 나서면 인근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마저 우리말로 인사를 건네니, 동티모르의 코리아 타운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베코라 기술고등학교에서 교육 행정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동티모르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어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학교입니다. 저는 외교부 소속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 자문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저의 일과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약간의 운동과 세면을 하고 6시에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버스를 타고 6시 30분 베코라 성당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다시 20여분 걸어서 7시 20분 경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언제나 학교에 맨 처음 등교하는 사람은 저이고, 학생들도 보이지 않지만 나지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노란색 교사들 너머로 아침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가슴엔 우리 학생들에 대한 기대가 가득차고, 나날이 성장해 가는 동티모르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뜨러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동티모르 젊은이들의 꿈은 한국산업연수생으로 선진 문명 경험하고 돈 버는 것

이영운 선생님이 베코라 기술고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아래는 건축과 학생들과 휴식시간 한담을 나누는 모습.
이영운 선생님이 베코라 기술고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아래는 건축과 학생들과 휴식시간 한담을 나누는 모습.

에밀리아는 기계과 3학년 여학생으로 유독 부지런하고 한국어 강좌도 열심히 수강하면서 한국어 능력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동티모르 젊은이들의 꿈은 한국 산업 연수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가서 선진 문명도 경험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입니다. 얼마 전 수도 딜리에 있는 크리스토레이(대형 예수상이 있는 공원)에서 미크롤렛(소형 버스)를 운행하는 줄리앙이라는 젊은 청년을 만났는데, 한국어가 유창했습니다. 알고 보니 5년간 한국에 연수생으로 근무하다 귀국했는데, 5년만에 소위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젊은이였습니다. 현재 버스를 2천만원에 매입하여 운수 사업을 하고 있고, 집을 사고 결혼도 했다고 합니다. 세 아들이 있는 그에게 남은 일은 행복하게 사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의 나의 근무 계약 기간은 일년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 학교에 가장 많은 공적자금을 투자했습니다. 일천만 달러(100억)를 지원하여 동티모르 최대 최신의 기술 전문학교를 재설립했습니다. 대학교까지 포함해도 동티모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와 최대 최신 설비가 총 망라되어 있는 곳은 이 학교가 유일합니다. 당연히 이곳 정부에서는 이 기술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에 엄청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6개 학과(전기, 기계, 건축, 자동차, IT, 전자)가 설립되어 있고, 모든 설비, 기구, 재료는 한국의 최신 생산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의 책무는 몇 달 전에 완성된 이 학교의 경영 전반을 지도 자문해서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되어, 최대의 교육 효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수시로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관계자들, 또 한국대사님을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과 긴밀히 협의를 통해, 동티모르와 한국 외교부가 바라는 수준의 경영 자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졸업생들은 UNTL(동티모르 국립대학교, 한국의 서울대학교에 해당)에 30여명이 진학하는 등 명문 공대 등에 80% 이상이 진학했습니다. 다른 학교의 대학 진학률은 대개 10% 이내입니다. 또 전국에서 몰려드는 학생들로 입시경쟁률이 3대1 정도가 되었는데, 이 것은 동티모르에서 가장 높은 입시경쟁률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대학 진학이 그들의 꿈입니다.

◎100여 베코라 교직원 생일 챙기고, 학기마다 가족동반 식사초대로 자문활동 수월해져

이영운 선생님이 세네갈 SOS중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이영운 선생님이 세네갈 SOS중학교를 방문 학생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학교에는 천 백여 명의 학생들과 100여 명의 교사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사들의 생일에는 개인별로 축하 카드를 작성하고,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직접 찾아가서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또 가능한 모든 교사들과 학기에 한 번씩 가족 동반으로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이런 자리를 통하여 서로의 우정을 돈독하게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 교직원, 시설, 예산, 학생 지도, 학교 운영 등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었고, 가족 사항도 알게 되어 효과적인 자문 활동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400여 쪽의 ‘베코라 기술 고등학교 발전 추진 전략’을 발간하여, 교육부, 한국 외교부 등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테툼어, 영어, 한국어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은 학교 발전 전략과 비전, 교원 역량 강화, 기술고등학교 학과별 교육과정, 진로 및 경력 개발, 학교 경영, 교수 학습 방법, 학생 생활지도, 시설 및 기자재 유지 관리, 학교 기업 육성, 특성화 교육 등 방대하고 다양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학교 경영을 자문해 오면서 느끼고 개선해야 할 사항 열다섯 꼭지를 상세히 분석하여 효과적인 개선, 추진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 400여쪽의 ‘베코라 기술고 발전 추진 전략’ 보고서 발간, 15개항 제안

동티모르는 연중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나라로 일년 내내 모기와 해충들에 의한 말라이아, 댕기열, 각종 피부병 등이 창궐합니다. 특히 거리를 배회하는 많은 개들 때문에 광견병에 항상 노출됩니다. 우리 학교에 근무하는 한국인 교사들 중 댕기열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댕기열, 광견병, 간염. 파상풍 등 10여 건의 예방 접종을 했습니다.

저는 2014년 2월 40년 가까운 중등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영어교사, 장학관, 교장 등으로 봉직했습니다. 퇴직 후에는 제주의 풍광을 즐기며 오름 산행을 하기도 하고,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악기를 배우려고 클라리넷을 익히기도 하고, 문인화에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가슴 한 가운데가 공허하고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교육 경험을 활용하여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노사발전재단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강수영 소장님, 최진숙 컨설턴트님을 뵙게 되고 센터의 일과 퇴직자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 내용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 컨설팅 배정, 개인별 체계적 분석, 취업 상담, 이력서 작성과 취업 등록, 면접 코칭 등과 재취업 역량강화 연수도 수강했습니다.

◎ 저의 교육경험으로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없을까 고민과정에 제주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서 컨설턴트와 상담과정서 ‘외교부의 국제협력단’ 정보 접해

저는 이 과정에서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 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장기 자문단이 되려고 지원서를 작성했고 서류 심사가 통과되어 영어 면접, 신체 검사 등을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아프리카 세네갈 교육부에 교육자문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환경과 비슷한 조건의 열사 폭염이 연중 내리쬐는 세네갈에서 2년간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점시시간도 없이 6교시 수업을 하고 교과서도 보관용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가로 세로 15센티 정도의 조그만 휴대용 흑판에 몽당 분필로 필기하거나, 노트 한 권에 볼펜 한 자루만 갖고 학교에 다닙니다. 저의 업무는 교육부 유아교육국 소속으로 교육과정 개발, 교수학습 방법 보급, 평가지표 개발, 선진국의 교육 내용 보급, 종합유아교육센터 개설 등이었습니다. 전국 100여개의 유치원, 관련 교육기관 등을 살펴보고, 교육부 장관, 관련 국장 등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업무를 마쳤습니다. 600여쪽의 보고서를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 작성하여 세네갈 교육부, 교육기관, 외교부 등에 보급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세네갈 최초의 유아교육과정, 유치원 교수학습 방법, 유치원 평가 지표, 선진국의 교육 등 거의 새로운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유야교육 종합 체험학습 센터를 구안이었습니다. 이 센터는 예산 200억 원이 소요되는 서아프리카 최초의 종합 체험형 유아교육 기관입니다.

◎ 서아프리카 최초의 종합체험형유아교육기관 ‘세네갈 유아교육 종합 체험학습센터’ 구안

업무 추진의 어려움, 열악한 생활 환경, 생명의 위협 등은 일상사였습니다. 실제로 30대 젊은 태권도 지도교사는 말라리아로 사망하기도 하고, 시니어 단원은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절도, 폭행, 도난 사건들이 하루 멀다하고 발생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발생하는 정전,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끊기는 수돗물 등도 철저한 준비와 인내로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년간 근무 후에 귀국하여 다시 새로운 준비를 했습니다. 휴가나 귀국을 하게 되면 꼭 중장년센터를 방문하여 그 사이의 근무 상황을 보고하고 새로운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해외 근무로 느꼈던 일은 자취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음식 조리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전문 조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6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한식조리기능사, 양식조리기능사, 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 해외 근무하려면 자취생활을 해야 하므로 무엇보다 음식 조리 능역이 필수…세네갈서 귀국후 고용노동부 내일배움카드 발급받아 전문 조리교육 이수, 한식 양식, 중식 조리사 자격

세네갈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세네갈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준비가 되자 재차 한국국제협력단 자문단 모집에 응시했습니다. 교육 분야는 동티모르 한 곳 밖에 없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했고, 시험 과목과 내용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영문이력서, 서류 전형 자료 제출, 영문 지필 고사, 영어 인터뷰, 우리말 전공 면접 시험 등이었습니다. 합격하여 직무 연수를 마치고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인 동티모르에 파견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의 생활 경험과 그 사이에 익혔던 조리 기능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연중 40도를 오르내리고, 한국 전쟁 직후의 한국과 비슷한 생활 여건 속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 막연히 막막한 상황에서 꿈을 심고 희망을 실천하도록 도와준 것은 전적으로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였습니다.

저는 교육자문활동을 하면서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도 찾아보았습니다. 세네갈이나 동티모르에는 의류 상점들이 거의 없습니다. 길거리 가판에서 선진국의 중고 의류를 가져다 판매하고 구입하는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저는 한국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미니꼬 고아원 등 복지 시설에 여러 차례 교복 지원 활동을 했습니다.

◎한국의 지인 도움으로 도미니꼬 고아원 등 복지시설에 수차례 교복 지원

한국 지인의 도움으로 세네갈 도미니꼬 고아원 여학생들에게 교복을 지원했다.
한국 지인의 도움으로 세네갈 도미니꼬 고아원 여학생들에게 교복을 지원했다.

저는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보다 해외 저개발국의 교육 발전을 위해 보낸 지난 4년이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더 크게 발휘한 시기가 아니었나 평가해 봅니다. 나의 하찮은 지식과 경험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곳에 소박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너무도 큰 행운이요 행복이었습니다. 미래는 선의를 갖고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게 손길을 열어 밝혀준다는 사실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역동적인 빛나는 삶의 후반부를 보낼 수 있었던 것, 너무도 신나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아프리카 세네갈에 이어, 저의 동티모르에서의 교육 자문 활동을 중심으로 동티모르에서의 교육과 생활과 체험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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