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 (14)가재미(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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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 이야기 (14)가재미(문태준)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8.0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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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김천 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波浪)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累代)의 가계(家系)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 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은 이렇듯 모순 천지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혹, 가족이나 친구일지도 모르는) 그 한 사람을 위해 위로 차 들른 병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절망이 희망으로 어떻게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지를 여실히 보게 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 시 구절에서처럼 바짝 바닥에 엎드려 사는 한 마리 가재미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엎드려 살다가 한 사람은 암 병실 침상에서 나머지 한 사람은 그 침상 귀퉁이에서 가재미로 만나 서로 나란히 누웠습니다. 물속에서의 삶은 또 얼마나 지난했을까요. 파닥 파닥 파닥 파닥……아무리 솟구치려 해도 오를 수 없었던 그 벽 앞에, 한편 이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머지 한 마리 가재미가, 죽음 그 너머의 세상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그녀를 향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만 좌우를 흔들며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누워보는 것일 뿐. ‘살암시라 살암시라 살암시민 살아진다’ 따스하게 맞잡은 몸말인 이 말로 그 마지막을 대신했을.

뜨거울수록 그림자는 긴 법, 성하의 계절입니다.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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