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태양의 땅, 동티모르에 첫발을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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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태양의 땅, 동티모르에 첫발을 내딛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9.0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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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 현지 소장님 인사 말씀 “기본업무 외에 한국어와 영어교육에 힘써달라. 한국어 교육을 받은 학생이 해마다 30명 정도 한국에 취업을 할수 있으면 좋겠다. 투자만 하고 인계해 버리면 한 두 해 뒤에 또 옛날의 학교로 되돌아가 버릴는지 걱정이 된다.”
동티모르 공항에 내리자  현지 사무소 직원과 봉사단원들이 마중나와 반가이 맞아준다.
동티모르 공항에 내리자 현지 사무소 직원과 봉사단원들이 마중나와 반가이 맞아준다.

오늘 동티모르에 도착했다. 이곳 시간으로 오후 2시 20분이다. 동티모르와 우리나라는 시차가 없으니 우리 시간으로도 오후 2시 20분이 된다. 이 곳에 도착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영문 서류 작성, 정밀 신체검사, 우리말과 영어 면접 등이 있었고, 총 세 차례의 시험을 통과하고 최종적으로 두 주간의 집중 연수 끝에 동티모르 근무가 확정되었다.

연수는 서울 양재 KOICA 연수원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진행되었다. 2인 1실을 사용하는데 나에게는 특별히 독실을 배정해 주어서 조금 외로웠지만 편하고 자유로운 휴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 3차례의 시험과 2주간의 연수 끝에 동티모르 근무 확정. 세네갈 교육부 파견 2년 경험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준비해

주요 연수 내용은 국제개발 협력의 이해 및 한국의 ODA 개발 협력 정책, 인권과 개발 협력, ODA 거버넌스, 응급처치 및 생활 안전, 올바른 성의 이해, 자문단의 권리와 의무, 타 문화의 이해와 수용, 재난 안전 및 예방, 활동국가 미리보기, 동티모르어(테툼어) 익히기 등이었다.

그 사이에 간염 등 여러 종류의 예방 접종과 관용여권 발급 등의 절차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간 자문관으로 아프리카 세네갈 교육부에 파견되어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교육도 받고 준비도 할 수 있었다. 연수가 끝나고 출국 때까지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제주도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틀은 오가는데 써야 해서 준비기간이 한 닷새쯤 되었다. 제주에 도착하고는 친구들과 몇몇 모임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일 년간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준비했다.

7월 30일 집사람과 서울로 올라왔다. 공항에서 재보니 수화물 무게가 38.5Kg이다. 집사람과 두 사람의 수하물을 합쳐서 계산해도 8.5 Kg이 초과되었다. 제주공항에서는 다음부터 주의하라며 통과시켜 주었다. 역시 제주는 친절하다.

▣ 항공기 수하물 무게에 맞춰 짐꾸리는 아내의 솜씨에 감탄

서울에서 부식들과 나머지 물건들을 구입했다. 구입한 물건의 무게가 10Kg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음식도 건어물 위주로 샀다. 짐 꾸리기가 서툰 나를 대신하여 집사람이 일일이 물건들을 확인하고 정리하여 정돈된 가방을 꾸려 주었다. 마침 딸도 퇴근하여 공항버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화물은 원래 30Kg까지 허용되는데 KOICA에서 20Kg을 보전해주기 때문에 총 50Kg까지 가능하다. 두 개의 가방 무게를 재보니 49.9Kg이다. 0.1Kg이 모자란 50Kg이었다. 절묘하게 무게를 맞췄다. 집사람의 짐 꾸리기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하나투어 안내자도 어떻게 이렇게 무게를 정확히 맞췄느냐고 놀라워했다. 코이카에서 부담한 초과된 20Kg의 추가 화물비용은 124만원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12시 35분 비행기 편으로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아침 9시 35분 MI Silk Star 비행기에 환승하여 오늘 2시 20분에 동티모르 딜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 기내서 세네갈 근무 때 사무실 찾아왔던 코이카 현지 부소장을 만나다

오면서 비행기에서 밖을 내다보니 바다로 둘러싸인 조그만 섬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건물들은 우리나라의 아주 소박한 농어촌 분위기를 닮고 있었다.

날씨는 비교적 선선했다. 지금이 건기이고 연중 가장 쾌적한 절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건너편 앞쪽에 단정한 한 청년이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지니고 있는 수첩에 World Friends라는 로고가 붙어 있었다. KOICA 로고여서 ‘혹시 코이카에서 일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냈다. 자신이 코이카 현지사무소 부소장이라고 하면서 한국에 휴가 갔다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세네갈에 근무할 때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던 분이었다.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내릴 수 있었다. 내려 보니 사무실 신성우 코디네이터와 두 봉사단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코이카 차량으로 잠시 머물 호텔(Hotel the Ramelau)로 갔다. 짐을 풀고 호텔 구내에 있는 코이카 사무실로 갔다.

▣ 코이카가 110억 투자한 베코라 기술고를 동티모르 최고의 기술고로 경영자문하는 게 나의 임무

강형철 소장님께 도착 인사를 드렸다. 소장님은 이 달 말에 한국에 있는 부산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된다고 했다. 마음이 급한지 벌써 업무를 협의하겠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파견된 가장 큰 이유는 베코라기술고등학교의 경영 자문활동이다. 코이카에서는 100만 달러(110억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자하여 10여 채 이상의 집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고 6개 기술학과 즉, 건축, 컴퓨터, 전기, 자동차, 토목, 통신 학과의 최신 기자재와 설비를 한국에서 가져다가 설치하였다. 이 학교가 동티모르 최고의 기술학교로 운영될 수 있도록 경영 자문을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소장은 기본 업무 외에 한국어 교육과 영어 교육에 힘써 달라고 했다. 한국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해마다 30명 정도 한국에 가서 취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냥 투자만하고 인계해 버리면, 한두 해 뒤에 또 옛날의 학교로 되돌아가 버릴는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김기남 대사와 만나다. 김 대사는 해병대 소장출신으로 소탈한 성품을 지닌것 같았다. 김 대사는 마침 한국어평가사업소 소장이 제주출신이라며 알려줘 만나해 주었다.
김기남 대사와 만나다. 김 대사는 해병대 소장출신으로 소탈한 성품을 지닌것 같았다. 김 대사는 마침 한국어평가사업소 소장이 제주출신이라며 알려줘 만나해 주었다.

▣ 김기남 대사와 제주출신 양주윤 한국어평가사업소장을 만나다

부소장과 함께 대사관으로 향했다. 대사님은 김기남 대사다. 해병대 소장 출신이다. 강건해 보였으나 성격은 소탈했다. 3달 정도는 쉬면서 그냥 학교 현황을 관찰만 하라고 하신다. 대사관에서는 또 이철희 영사, 조소연 행정원, 서민정 행정원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대사관은 대사 저택과 사무실을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대부분 대사관들은 저택과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하지만 워낙 규모가 작은 나라라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사무실은 소박, 단순, 수수하게 꾸며져 있었다.

대사님은 마침 제주 출신 한국어평가사업소 소장님이 계신데 잔뜩 만날 기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통화를 하고 라멜라우 호텔에서 잠깐 만났다. 양주윤 소장이다. 원래 한국산업인력공단(HRD)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했고 제주도 사업소에서도 근무했었고 지금도 집은 제주시에 있다고 한다. 퇴직 후 1년씩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퇴직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으니 복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직에 있을 때 성실하게 많은 실적을 내며 활동했기 때문에 퇴직 후에도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금 제주특별자치도교육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장영 전 교장선생님과는 군대 동기라고 한다.

제주 출신 양주윤 한국어평가사업소장을 만나다.  티모르 플라자 레스토랑에서 중국요리로 호의를 베풀어줬다. 너무 고마웠다. 김장영 교육의원과 군대 동기라 했다.
제주 출신 양주윤 한국어평가사업소장을 만나다. 티모르 플라자 레스토랑에서 중국요리로 호의를 베풀어줬다. 너무 고마웠다. 김장영 교육의원과 군대 동기라 했다.

저녁 때 티모르 플라자에 있는 The Sky Restaurant에서 다시 뵈었다. 중국집인데 새우요리, 볽은밥 등 네 종류의 음식을 시켜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마음이 선량하고 중도를 잘 지키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첫 날 저녁 굶지 않고 지낼 수 있게 호의를 베풀어준 양주윤 소장님이 너무 고마웠다. (2017년 8월 1일 화요일)          <전 제주중앙여고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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