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 달의 숙제, 평생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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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 달의 숙제, 평생의 숙제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10.2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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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오수현 서귀포시 관광진흥과

‘수현씨, 숙제 하나 내 줄게요.’

4개월의 수습 기간을 마치고 정식 임용을 받아 새로운 부서로 배치된 지 일주일 남짓이나 흘렀을까. 선배 주무관님께서 신규 공무원의 초심을 다지는 취지로 청렴 기고를 작성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며 하신 말씀이었다. 기한은 내달 말일까지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한 달이 말미를 두고 숙제 하나를 받게 되었다. 물론 이는 공직자에게 있어서 청렴이 얼마나 중요한 미덕인지를 방증하는 셈이기도 했지만, 전에 있던 부서에서 형편없는 글솜씨로 겨우겨우 청렴 기고를 제출 해낸 게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라 이렇게나 짧은 시일 내에 또 다시 기고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거 큰일났다. 소재 고갈이다.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까 하여 다급히 선배, 동료 공직자분들의 청렴 기고를 찾아본다. 다양한 군상의 공직자들이 존재하는 만큼, 청렴에 대한 가치관 또한 다양했다. 청렴이란 스스로를 맑고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끔 할뿐더러 주변마저 감화하는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무관님이 계시는가 하면, 청렴이란 눈앞의 사리사욕을 경계하는 힘이라고 표현하시는 주무관님도 계신다. 한편, 청렴하고 강직했던 여러 선인들의 사례를 들며 본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기고들은 마치 전래동화를 읽는 듯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같은 새내기 공무원들이 뜨거운 포부를 담아 토해내는 청렴에 대한 생각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내게 아주 훌륭한 귀감이 된다.

막연히 ‘청렴 기고’하면 이제 막 공직사회에 들어선 신규 공무원들이나 쓸법하다는 개인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살펴보니 오랜 경험과 지식을 지니신 선배 공직자분들 또한 열정적으로 청렴을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청렴에 대한 자각이 비단 새내기들만의 전유물인 것이 아니라 녹을 먹고 살아가는 공복의 입장이라면 지속적으로 청렴에 대해 고민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청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저마다의 정의를 내리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고민과 시간이 담겼으리라. 아직 같은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을 내리지 못한 처지에서는 존경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청렴에 대해 고찰할 시간을 가졌던 이 한 달짜리의 숙제가 끝을 맺는다고 해서, 청렴한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평생의 숙제도 같이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언뜻 아주 기본적이고 쉬워 보이는 숙제이지만, 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숙제이기도 하다. 공직자로서의 청렴의 가치를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숙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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