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동 종점
허름한 건물들이 허름한 종점 길목
드리없는 간판들이 드리없이 걸려있다
각설탕 각진 설움을 풀어 내줄 찻집도 하나
플라스틱 바구니를 무더기로 널어놓고
천 원에 모신다는 난전을 돌아 나오면
저만치 발꿈치 끝에 깔리느니, 천원의 그늘
떡볶이 판 거둔 자리 재봉틀을 얹혔다는
수선 집 여인네의 수선한 살림 걱정에
덩달아 맞장구치듯 선풍기도 끄덕대고
부동산 문지방보다 발길 뜸한 우편취급소
시집 몇 권 부치려고 건널목을 지나는데
'재개발 용산3구역' 후광으로 펄럭인다
(이승은, 보광동 종점 전문)
모든 사물이 종점을 향해 치닫는 요즘입니다. 초록이 마르는 곳에는 지난 계절 치열했던 풀들의 삶이 녹아 있고, 그 이야기 끝에는 이 초록과 이웃해 살던 여치들의 이야기들이 그 뒤를 잇고. 사람들도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요? 허름한 건물들의 허름한 종점골목, 그 골목 끝에 쌀알이 녹아내리듯 녹아내린 아슴아슴한 골목의 풍경들.
詩를 언어로 그린 그림이라 했던가요. 사라지는 게 아쉬워 한 폭의 잘 그린 언어의 풍경을 우리들 가슴에 안겨 준 시인의 혜안이 빛납니다. 비록 ‘재개발’이기는 하지만 저 애잔한 골목의 현재를 희망이라는 미래로 치환하고자 하는 시인의 눈, 또한 따뜻합니다. 돌이켜보면 ‘종점’이란 마지막이기보다는 시작에 더 가까운 의미이기에! <시인 송인영>
저작권자 © 제주경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