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29) '제주문학' 2021(88집), 가을호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29) '제주문학' 2021(88집), 가을호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2.08 07:5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문학' 2021(88집), 가을호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0월 26일 제주에서 항공편으로 보낸 '제주문학' 가을호(88집)가 12월 3일 오사카 우리 집에 도착했다.(EMS: 전자우편은 일주일만에 와서 깜짝 놀람) 예전 같으면 일주일도 걸리지 않던 물류 유통이 코로나로 인하여 한달 이상 걸리는 원시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반갑게 도착한 '제주문학'의 내용에 대해서 쓰기 전에 먼저 제주 언론에 부탁의 말씀을 써야겠다.

현재 제주도청 출입 지방언론사 현황 자료를 보면 일간지가 7개, 인터넷신문이 14개로 나와 있다. 도청 출입 언론사 이외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제주도 인구는 10월 현재 약 69만명(외국인 약 2만명 포함), 세대수가 약 29만 6천(외국인 포함) 세대였다. 제주도 인구, 세대수와 언론사의 비율을 볼 때, 제주 언론은 홍수 사태를 지나서 범람 상태이다.

모두 제주 지역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는 사명을 사훈으로서 내걸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문화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문화의 한 영역을 담당하는 데는 문학도 많은 영향을 끼치리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제주에는 여러 문학 단체가 있지만 크게 나눠서 제주문인협회, 제주작가회의, 국제PEN제주지역이 있다. 제주문인협회의 '제주문학'과 제주작가회의 '제주작가'는 정기적으로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국제PEN제주지역은 연 1회 '제주PEN'을 발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가을호가 발간된 '제주문학'과 '제주작가'를 소개한 제주 언론은 한라일보 밖에 없었다. 오사카에서 인터넷에서 조사해 보니 가을호 소개 기사는 10월 24일자 한라일보에 진선희 기자가 쓴 것 밖에 없었다. (다른 언론에도 소개되었다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물론 전문 분야가 다르겠지만 7개 일간지와 14개를 넘는 인터넷신문의 제주 지방 언론에 '제주문학'과 '제주작가'를 소개한 기사가 1개 언론사 밖에 없다는 사실에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주 문화 기사가 넘쳐나서 계간문학지 소개할 난이 모자랐는지 아니면 언론사에서 보는 문학지가 지역 문화에 미치는 평가가 낮아서 외면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문인 단체와 언론사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이 부조리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주문인협회 회원이면서 제주경제일보에 이렇게 필자가 글을 쓰고 있지만 제주경제일보도 이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제주경제일보만이라도 정기적으로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주문학' 이야기를 써야겠다. '제주문학' 가을호에는 46명의 시인 회원 시 90편, 10명의 시조 시인 시조 19편, 23명의 수필가 수필 23편, 2명의 동시 시인 동시 4편, 2명의 소설가 소설 2편, 1명의 평론가 평론 1편이 게재되었다. 그리고 특집으로 '제주를 거쳐간 한국 문단의 거장'으로 서정주, 이은상, 정지용 작품을 작품평과 함께 실렸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선택한 시 두 편과 수필 한 편을 소개한다. 강연익 시인의 시 "내 마음은"이다.

 

내 마음은

 

한 생 깊은 고뇌에 빠져

남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비교하며 곁눈질하고 더듬거리던 일들

이제 후회한들 다 지나간 과거일 뿐

 

마음먹기 더 해지고 덜 해지는 것을

왜 아직까지 남의 눈치만 보고

내 마음 찾지 못해 방황하던 자리엔

새가 허공에 남긴 발자국처럼 허무하네.

 

마음에 출렁이는 넓은 파란바다

때로 파도가 일고 자는 것도

어떤 빛깔로 살아야 하는 것도

내 안에서 만들어 가는 것임을 이제 알았네.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라 생각하며

굳게 잠겨 있는 마음에 빗장을 열려고

뭄부림치며 두드려보았지만

허공에 열리지 않는 그림자만 떠있네

 

이제 울렁이는 여린 가슴 속을 비우고

사랑하는 주위의 인연들 낙엽처럼

다 떠나버린 빈 자리에 외로이 서서

하루를 지나는 시간에 감사할 뿐이네

 

우리는 흔히 소시민적 처세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말을 바꾸면 보통 사람이 보편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일상에서 한 단계 뛰어 넘고 싶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무리한 발돋움을 한다. 그 결과, 굳고 단단하게 지면에 힘을 주어 지탱할 수 있는 디딤돌이 없어서 뒤뚱거리다가 쓰러지기도 한다. 자연 재해가 많은 일본에서는 피해로 인하여 피난처 생활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생겨난다. 그들의 가장 절실한 바람은 '하루 빨리 보통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염원이다.

다음은 고병권 시인의 "여름과 가을 사이"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선뜩한 기온이 나를 감싸고

햇살에 달궈진 나뭇잎 아래

숨고르기하며 영그는 열매들

구름 속에 퇴색되는 여름이 자리하고

 

가을은 눈 앞에 아른거리며

애달은 매미 울음 멀어지는데

잎새 사이에 서걱이는 사연들

등 떠밀며 노을 쪽으로 다가서는 바람.

 

4계절이 뚜렷한 지구의 지역에서도 여름과 가을 사이의 경계선이 무너져서 실종되고 있다. 그 경계선의 서정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변동으로 인해 지구 환경문제가 클로즈업되어서 현실적인 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이제는 글에서만 그 여운을 맛볼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올런지 모른다. 영그는 열매만이 아니고 우리들도 잠간 멈춰 서서 숨고르기 하면서 음미할 수 있는 사연들을 만들어 나간다면, 좀 더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김가영 수필가의 "의미 없는 시간" 전문을 소개한다.

 

의미 없는 시간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장수에 대한 기대를 갖고 그런 얘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반갑지 않다. 정년이라는 산의 정점에 도달해서 몇 십년 있다 내려 오면 비틀거리며 퇴장해야한다. 그 걸음으로 100세까지 걸어가라 하면, 쉬운 거리가 아니다.

체력이 없어져도 한참을 더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다. 의학의 힘을 빌리고 노인복지가 어떻고 해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오래 살아서 겨우 얻는 단어가 있다면 성숙이라고 하자. 그 성숙은 조용하고 평온한 시간이 좋다는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말한다. 아무 생산성이 없는 노인들이 짐이라고, 그런 면박을 당해도 노인들은 참는다. 인간의 슬픔을 아는 노인이 바라는 세계는 다르니까. 힘들게 세상이 돌아가도 가만히 두고 본다. 나쁠 때가 있으면 좋을 때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있었던 좋은 날보다 더 좋은 날이 미래에 온다는 보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최근에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이 없다'는 포르투칼 속담에 마음이 움직인다. 오늘보다 좋은 내일은 없다고 마음을 정하니 불확실한 미래에 마음을 빼앗길 이유가 없어졌다.

인생 최고의 날인 오늘을 하루하루 정성들여 살면 된다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불안감이 있다. 왜 그럴까?

언제나 무한대로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을 물쓰듯 써버렸다는 것. 수중함도 모르고 나는 시간을 탕진해버렸다. 그것이었다.

인간은 고대부터 시계를 발명하고 달력을 만들고 시간이라는 것에 끊임없는 관심으로 관리했는데, 나는 몰랐다. 내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살면서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며 설쳐댄 것밖엔 없다. 그것이 이렇게 큰 우울이 되어서 남아 있을 줄을 몰랐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는 여러 가지 실생활에 시간을 쓰며 그 경험으로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어떤 면에서 그런 세속적 동기도 훌륭한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건 결코 단순한 세속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 건성으로 추상적으로 센티멘탈하게 사물을 보는 것은 작가로서 빈약함이다. 다방 면에서 철저히 공부해야 된다.

발자크는 매일 열여덟 시간 소설을 썼다고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자신을 이겨내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작가의 덕목인 것 같다. 예술의 가장 자연로움을 얻으려면 노력이라는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읽어내고, 고독을 배우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고, 그런데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데 나는 인생이라는 시간을 불평불만으로 다 써버렸다.

작가의 꿈은 실격이다.

이미 노인사회에 접어들고 노인이 되어 긴 시간을 어슬렁거리며 보내는 신세가 됐다. 작가는 마라톤 선수처럼 체력이 필요하다. 한 작품 한 작품 써낼 때마다 체력을 소모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 체력이 없다면 그것 또한 실격이다. 두려운 건 슬픔이나 고통, 일상의 모든 일에 감동을 잃는 것, 그러면 백 세 인생은 의미없는 시간일 뿐이다.

김가영 수필가의 '의미 없는 시간'의 전문인데, 수필을 전부를 게재한 이유는 군더더기가 없다. 짧은 문장 속에 많은 여운을 함축 시키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음미하라고 한다. 필자는 프랑스 영화를 좋아 했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 오래 전 프랑스 영화는 짧은 대사 속에 많은 여운을 남긴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필자가 한국어 번역판이나 자막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틀렸다고 비난이 쏟아질런지 모른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백세 시대에 잘 못 썼다가 노인 비하라고 비난 받을 수 있는 주제인데 동감 할 수 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한 연유도 있어서 전문을 소개했지만, 더 큰 의미는 본문 중에 쓴 김가영 수필가의 작가론이다.

"작가는 여러 가지 실 생활에 시간을 쓰며 그 경험으로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어떤 면에서 그런 세속적 동기도 훌륭한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건 결코 단순한 세속적인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 건성으로 추상적으로 센티멘탈하게 사물을 보는 것은 작가로서 빈약함이다. 다방 면에서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제주문학' 가을호에는 필자의 졸품 단편소설 '이쿠노 카멜레온들' (일본에 있는 한국 민단 조직의 부조리를 쓴 내용임)이 게재되었다. 책을 받아본 순간, 자신의 작품이 게재되었으니까 즐거움보다 등에서 식은 땀이 갑자기 흘렀다. 372페이지의 책에 필자가 쓴 소설은 49페이지에 달하고 있어서, 약 13%의 점유율이다. 이 소설을 읽으려면 약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과연 이 분량의 비율과 소비되는 시간만큼 필자가 쓴 작품이 질적인 면에서도 그 가치가 수반되었는가에 대한 자문이 앞섰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솔직히 답변하지 못하겠다. 회의적인 자기 혐오 속에 '제주문학'을 읽는데, 김가영 수필가의 '의미 없는 시간' 속의 작가론을 읽게 되었다.

앞으로도 필자는 소설을 계속 쓸 것이다. "건성으로 추상적으로 센티멘탈하게 사물을 보는 것은 작가로서 빈약함이다. 다방 면에서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 김가영 수필가 개인만의 지적이 아니고 '제주문학' 회원들의 경종이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재형 2021-12-08 20:54:03
김길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일본에 계셔서 잘 뵙지도 못하고, 문학모임에도 나오시지 못하고. 그래서 열정적으로 제주문인협회에 참가하시고 작품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옛날 나라까지 찾아와 주셨던 고마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후에도 삿뽀로, 북알프스, 규슈, 오키나와, 동경에서 나고야를 거쳐 오사카 고베까지 등 여행을 자주 갔습니다만 인사를 따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바쁜데 전화해서 또 폐를 끼칠까봐서요. 아무튼 감사드리고, 늘 건강하십시오. 소설은 잘 읽었습니다. 박재형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