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 (2) 살라 말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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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별 세네갈] (2) 살라 말래꿈!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9.1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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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Jean Diouf) 선생님의 세네갈 교육부 교육정책자문관의 교육봉사 체험 기록

이영운 선생님이 쓴 이글은 800명 가까이 응모한 2015년 제14회 공무원연금 수필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체험수기입니다. <편집자주>

이영운 선생님(Jean Diouf)
이영운 선생님(Jean Diouf)

살라 말래꿈!

 

“살라 말래꿈!(평화가 함께 하기를!)”

“말라꿈 살라!(당신에게도 평화를!)”

“낭가 데프?(어떻게 지내세요?)”

“망기피니.(예, 잘 지내요)”

두 손을 활짝 펴든 마마두 디우프 과장과 인사를 나눈다. 이곳은 서

다카르의 유치원 아이들
다카르의 유치원 아이들

부 아프리카 세네갈이다. 수도 다카(Dakar)에도 봄이 왔지만, 날씨는 매일 섭씨 40도를 오르내린다. 나는 작년 7월 세네갈 교육부에 착임하여 8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그 사이에 비가 온 날은 2-3일에 불과했고, 그나마 찔끔 찔끔 내렸다.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니 벽시계가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언제나 사무실 문을 처음 여는 사람은 나다. 아홉시 반쯤 되자 직원이 한 두 사람씩 나타난다. 열시 반, 열한시가 되자 모든 얼굴이 보인다.

직원들은 열다섯 개의 사무실을 돌면서 ‘살라 말래꿈!’으로 시작되는 20여개의 인사말을 모든 사람과 나눈다. 교육국장도 역시 모든 사무실을 돌며 인사한다. 진작 아침 인사를 마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은 11시가 훨씬 지나서이다.

나는 작년, 즉 2014년 2월 정년퇴직을 했다. 4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제주외국어고등학교와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직의 문을 나섰다. 든든한 공직의 울타리 안에서 오직 한길만 가다 막상 소속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황야에 발을 내디디니, 참으로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 몰랐다. 자유는 생소하고 어색하기까지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의 마음과 두려움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얼마 동안, ‘중장년 일자리 센터’에서 안내 봉사, 또 종교 기관 어린이집에서 사군자 봉사 활동 등을 하면서 지냈다. 물론 퇴직교육자 동우회를 중심으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오름과 올렛길을 탐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슴 한쪽이 항상 허전했다. 40년의 경험을 살리면서 보다 유익한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아직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퇴직을 6개월 앞두고 나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시행하는 퇴직예정자 사회적응 연수에 참여했다, 연수를 통해 한국국제원조기관인 코이카(KOICA :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해외 봉사 활동 사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중장기 자문단 교육 일반 분야에 응시했고, 연수를 거쳐 세네갈 교육부에 파견되었다. 처음 이 곳에 와서 정착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집을 빌리고, 전기와 수도를 신청하고, 가게에 가서 가스통 사다 가스렌지와 연결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장 보고, 해보지 않은 취사를 혼자 해결하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생루이에서 여고생들과
생루이에서 여고생들과

지난해 11월엔, 코이카에서 한국 연수를 다녀 온 세네갈 젊은 엘리트 80 여명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나는 ‘세계 최고의 교육 국가-한국(The Best Education – South Korea)’를 주제로 한 기조 강연을 내가 했다. 이 젊은이들은 세네갈 정부에서 선정한 엘리트층으로 주요 관공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빤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세네갈 미래의 중추들이다. 기조 강연이 끝나자 한국 교육에 대한 질문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나는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가능한 상세하고 현실감 있는 답변을 주었다. 그들은 한국의 교육 체제와 경험을 빨아들이기에 너무도 배고파하고 있었다.

나는 2개월에 한 번씩 교육국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선진국의 교육 정책과 교육과정 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원고를 영어와 불어로 작성하고 파워포인트를 제작하고 다과도 준비한다. 프랑스 문화에 길들여진 직원들의 질문과 의견 개진은 끝이 없다. 그들의 한국 교육에 대한 사랑과 열망을 보면,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어떤 행복에 젖어든다.

세네갈의 교육 환경은 우리나라의 5, 60년대와 같다. 수도 다카는 어느 정도 교통수단이 정비되어 있으나, 그 밖의 지역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한국에서라면 몇 차례 폐차 처분을 받은 차들이 운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택시를 타면 가다가 멈추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고, 차문은 닫히지 않거나 열리지 않아 밖에서 잡아 당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세네갈 북부에 있는 생루이 지역 유치원 교육을 파악하기 위해 출장을 갔다. 생루이 까지는 5시간이 걸리다. 작년에 생루이에서 출장 오던 시니어 봉사단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까지 반신불수 상태에 있다고 한다.

유치원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공립 유치원인 ‘자일로 유치원’은 세 칸의 교실이 있었다. 한 칸은 천장이 무너지고 기물이 거의 파괴되거나 녹슬어 방치되고 있었다. 풀풀 날리는 모래 더미가 운동장이고 교실이라고 해도 바닥에 비닐 돗자리 하나 까는 정도였다. 벽은 시멘트가 반 이상 떨어져 나가 있었고, 낡은 그림 몇 장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필기도구는 가로 세로 15센티쯤 되는 작은 흑판에 분필로 쓰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해 본다. 한국에서 아이들이 쓰다가 버리는 학용품과 학습 문구를 모아서 보내주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고 말이다.

유치원생들과 공동학습을 하며
유치원생들과 공동학습을 하며

인생 이모작이라는 말이 이제야 실감난다. 나는 그 사이에 선진국의 교육정책을 50여건 제안하여 세네갈 중장기교육 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아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있고, 학교 평가 척도도 개발 중에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네갈에 서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유아교육진흥원을 설치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그곳에서는 교사 연수, 유치원 학생의 체험 학습 프로그램과 교육과정 시범 운영, 어린이 안전과 건강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 서부아프리카를 강타한 에볼라로 세네갈에서 활동하던 봉사단원들이 반 이상 귀국해 버렸다. 본인의 뜻 보다는 고국의 부모와 친구들의 걱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혜국에서 수원국(授援國)이 된 참으로 모범적인 나라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담그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30 여개의 학교를 방문했다. 찾은 학교마다 새까맣지만 하얀 눈과 빛나는 치아를 가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와 그들이 내밀었던 고사리 손들을 잊을 수 없다. 이 열사의 검은 대륙에 ‘꿈을 심어 희망을 키우는 것’이 이제 나의 새로운 소망이 되었다. 열병식으로 도열한 천년의 바오밥 나무처럼, 나도 그들에게 작은 바오밥이 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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