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6)첫 출근날 1000명의 학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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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6)첫 출근날 1000명의 학생을 만나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12.21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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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은 온통 흙탕물이다. 오수와 하수가 구분없이 바다로 흘러들어 생선을 날로 먹지 않는다 했다. 저녁준비는 별로 고민할게 없다. 라면에 밥 말아 먹고, 한국인 입맛엔 라면이면 오케이다. 약간 매운 맛이 속을 편하게 하는 것 같다. 첫 출근하고 사무실 배정을 받았는데 양쪽으로 창이 있어 햇빛도 잘 들고 밖에 아이들의 모습도 볼수 있어 좋았다. 특히 사무실 책상 등 비품은 한국에서 제공된 것으로 대한민국의 기업 로그가 선명히 찍혀 있어 반가왔다.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어제와 오늘은 주변 거리 탐방을 했다. 어제 아침엔 Tetum어 공부를 좀 하다가 머리도 식힐 겸 박찬홍 자문관의 말이 기억나서 바다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동티모르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Tetum어이다. 포르투갈어는 동티모르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고, Tetum어는 동티모르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민족이 테툼족이기 때문이다. 테툼족은 40%를 차지하고 그 밖에 말레이족, 파푸안 족 등이 있는데 총 민족 수는 32개 종족이다. 따라서 Tetum어도 공용어이다. 이곳에 파견되기 전에 일주일간 Tetum어 공부를 했었다. 일주일에 외국어를 마스터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권의 교재를 갖고 왔다. 이곳에서 틈나는 대로 독학하기로 했다. 물론 포르투갈어도 조금 익혀야 한다.

덥고 무척 건조한 날씨에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우리와 정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니 이리저리 피하면서 바다로 향했다. 가면서 보니 집에서 멀지 않은 오른쪽에 성당이 있고, 무슨 행사가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시간이 오후 3시인데 무척 궁금했다. 인파를 헤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운구차량 등이 있어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밖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스피커를 통해서 위령 찬송가가 멀리 오랫동안 퍼지고 있었다.

▣바닷가 노점서 코코아 야자수를 마시며

베코라기술고 학생들이 측량 실습을 하고 있다.
베코라기술고 학생들이 측량 실습을 하고 있다.

성당을 나와 20여분 내려가니 바다가 보였다. 바닷가에는 30여개의 과일 가게가 바닷가를 뒤로하여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선 바다 구경을 했다. 바닷물은 온통 흙탕물이다. 이곳은 하수 정화 시설이 없기 때문에 하수와 생활용수 등을 바로 바다로 흘러 보낸다. 물론 하수 시설이 약간은 되어 있지만 제 구실을 거의 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하수는 소로 하천을 통해 그대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다. 길 양쪽으로 홈으로 파인 도랑이 있고, 그 도랑은 건천으로 연결되고 건천은 바로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가 종말 처리장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최규환 자문관이 이 곳 바닷고기는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이 물을 보면 생선을 먹을 생각이 날 수가 없었다. 우리의 60년대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바닷가 노점에서 코코아 야자 열매 한 개를 샀다. 1달러다. 큰 정글 칼로 능숙하게 위쪽을 잘라준다. 빨대를 꼽아 바로 마시면 된다. 안에 가득찬 물이 달콤하다. 주변 사람들이 다 마시고 안에 있는 흰 육즙을 갈아서 먹는다. 나도 시도해 보았다. 주인이 야자나무를 작은 칼처럼 만들어서 주며 꺼내 먹으라고 한다. 조금 꺼내 먹어 보니 먹을 만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한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고 있어서 나는 맛만 보고 넘겨주었다. 늘어선 과일 가게는 오렌지, 당근, 토마토, 파파야, 아보카도, 망고, 사과,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을 많이 팔고 있었다. 한번 둘러보고 그냥 돌아왔다. 집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으니 앞으로 자주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자문관과 과일시장 가서 청경채 사고, 한국인 입맛엔 역시 라면

베코라기술고등학교 건축과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베코라기술고등학교 건축과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쉬는데 6시경에 또 박자문관이 함께 그 과일 시장에 가지 않겠느냐고 얘기한다. 다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노점들 앞에 Dili 마트와 또 다른 슈퍼가 있었다. 대부분 수입품들이었으나 물건들이 좋아 보였고 또 야채도 싱싱해 보였다. 나는 1달러 밖에 없어서 청경채를 구입했다.

오는 길에 성당에도 다시 들렀다. 집에서는 10분 정도의 거리다. 성당 안에 한 젊은이가 오토바이에 앉아 있어 미사시간을 들어 보니 일요일엔 아침 7시에 Tetum어 미사, 9시에 영어 미사가 있다고 한다. 평일엔 아침 6시 30분 미사가 있다. 나는 일요일 아침 9시 영어 미사에 참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했다. 뭐 특별히 고민할 것은 없었다. 어제처럼 신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역시 한국인의 입맛엔 라면이면 모두 오케이다. 또 약간 매운 맛이 속을 편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녁 후에 박자문관과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 주문한 결핵균 배양용 배지가 도착했는데 통관되지 않아 일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 사무실 직원들은 전혀 지시에 따르지 않고 지원 요구는 계속한다고 한다. 오늘도 어느 직원이 아쿠아 생수 두 병을 끈질기게 사달라고 했는데 오늘은 거절했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박선생님 사모님이 위에 어떤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내일 아들과 병원으로 조직 검사 결과를 보러 간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고 한다. 아프고 어려울 때 옆에 있어야 부부이고 가족인데, 너무도 먼 곳에 떠나와 있으니 서로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하는 생각에 나도 가슴이 아팠다. 이제 어느덧 두 주가 다 지나간다.

▣ 일요일 9시 영어미사에 참례하고, 신부님께 새로 산 성물에 축복받아

베코라기술고의 평화스러운 아침 교정의 모습.
베코라기술고의 평화스러운 아침 교정의 모습.

어제는 일요일이서 성당 미사에 참례했다. 9시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다. 신자가 워낙 많으리라 생각되어서 8시 30분에 미리 도착했다. 제대를 중심으로 앞 오른쪽에는 성가대석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 곳에는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30명 가까이 앉아 있었다.

미사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서 어제 가게에서 사온 십자가, 묵주 등 성물들을 신부님 축복을 받고 싶었다. 사무 보는 남자와 여자에게 신부님이 어디 계시는지 영어로 물어 보았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또 다른 여자에게 물어보니 눈치로 건물 이층에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신부님도 마침 내려오는 중이어서 십자상, 성모상, 묵주 등을 보이면서 축복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부님은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에 자동차 트렁크에서 영대를 꺼내고 따라 오라고 한다. 사무실로 다시 가서는 성물들 위로 성수를 뿌리고 스마트 폰에서 기도문을 검색하더니 한참 동안 기도하고 축성해 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성물에 축복하는 신부님은 처음 보았다. 대단한 축복의 느낌을 받았다.

미사는 또 다른 신부님이 집행했는데 차분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였다. 여학생 성가대들이 영어성가를 하는데 성스럽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성당을 감싸고 있었다. 10여곡을 모두 영어로 부르니 그 아이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은 두 세 명 정도 보였고 모두가 현지인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조금 특이해 보였다. 미사 후에 Dili 마트에 갔는데 그 곳에서 한 분의 시니어 봉사단원을 만났다. 발전소에 근무한다고 한다. 양파, 오이 등을 구입했다. 돼지고기도 팔고 있어서 다음에 와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네갈처럼 양고기나 쇠고기밖에 안 파나 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무슬림이 아니라 가톨릭 국가이니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오늘은 첫 출근하는 날이다. 우리 아파트 맨 뒤쪽에 사는 경은지 봉사단원에게 들어보니 학교는 8시에 일과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녀는 베코라기술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교 일과가 일찍 시작하게 되니 어제부터 마음이 급했다. 첫날이어서 지리도 살필 겸 걸어가 보기로 했다. 에코가방에 카메라, 필기도구, 식빵 두 쪽, 생수 등을 넣고 양복차림으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아직 태양이 뜨지 않아 모자를 쓰지 않고 나섰다. 건조한 먼지와 매연이 엄청나다. 코와 입이 턱턱 막힌다. 아프리카 세네갈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세네갈은 하마탄이라는 모래바람이 심해서 매연이 많이 생겨도 금새 날아가지만 모래 먼지가 또 심하기도 했다. 35분 걸어서 7시 40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 학제는 3학기제… 개학후 1주간은 실제 수업도 안해

경은지 선생님이 함께 가면 길도 안내해 주고, 여러 가지 설명도 해 줄 수 있으련만 선생님은 오늘 출근하지 않겠다고 한다. 오늘은 마침 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는 날이다. 이 곳은 3학기제이다. 개학하게 되면 1주일간 수업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1주일 후에 출근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학교다.

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아주 큰 문이 있다. 이 문은 마치 개선문처럼 이 지역에 위치한 여러 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문이다. 학생들이 서넛씩 무리지어 등교하고 있다. 우리학교 교문을 들어서자 노란색으로 단장한 10여개의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푸른 잔디와 커다란 나무들과 어우러져 노란색이 더욱 선명하다. 본관 머리 기둥에는 현수막이 아직 힘차게 걸려있다. 내용은 몇 달 전에 한국의 코이카에서 새 건물과 시설에 대한 준공 기증식을 했는데 그 축하 기념 현수막이다.

사진을 두어 장 찍고 본관 문을 열어 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아직 교직원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은 그늘에서 삼삼오오 잡담을 하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벌써 벤치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이때 한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현관으로 접근한다. 내리는 분을 보니 교감선생님인 Duarte da Costa 다. 인사를 나누고 내 사무실로 갔다. 지난번에 사무실 문에 시건 장치가 고장 나서 고쳐주기로 했는데 역시 그대로다. 또 새 건물인데 철제 문틀이 어긋나 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코이카에서는 임시로 자물쇠를 사다가 잠금장치를 해주겠다고 했으나 코이카 역시 무소식이다. 결국 옆에 있는 다른 사무실을 쓰기로 했다. 역시 자물쇠가 고장나서 새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출근 첫날 1000여학생들이 이영운 선생님으로부터 소개 인사를 경청하고 있다.
출근 첫날 1000여학생들이 이영운 선생님으로부터 소개 인사를 경청하고 있다.

▣전체 학생 앞에서 교장에게 소개받고, 자기소개를 하다

몇몇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교장선생님 Francisco Guterves도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 학생들이 체육관 앞 공터에 모두 모였다. 파우스티노 학생부장이 장황하게 개학 후 학교생활에 대한 안내를 했다. 교감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소개시켰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왔고, 교장을 지냈고, 세네갈에서 자문활동을 했으며, 이곳에서도 학교 발전 계획 수립 등 학교 운영과 발전에 자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모인 학생 수는 천 명 정도 되어 보였다. 학생들은 청소를 조금하다가 모두가 쉬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들도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 그리고 탁자가 배치되었다. 모두가 한국에서 제공한 것으로 LG로고가 찍혀 있다. 몹시 반갑다. 두어 차례 교정을 둘러보았다. 나의 학교 근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해서 근무하라고 한다.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근무하기로 협의했다. 고장 나서 옮긴 사무실이 오히려 좋아 보였다. 전 사무실은 두 사무실 중간에 있어 채광이 잘 안되고 더웠으나, 새 곳은 양쪽으로 창이 나 있어 햇볕도 잘 들고 또 일하면서 밖의 아이들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장, 교감에게 인사하고 퇴근했다. 풀풀 날리는 먼지 속을 헤집고 40여분의 걷기 귀가에 나섰다.            

                             (2017년 8월 11일, 그리고 14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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