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본 제주관광 : (2) 196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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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본 제주관광 : (2) 1960년대 초반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5.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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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관광 태동기에 제주가 하와이와 비교될 정도의 명승지로 부각돼
현대식 호텔 건설과 3000톤급 여객선 취항 등 관광인프라 구축돼

조봉춘(관광학박사)

여행, 관광은 이동을 수반한다. 관광객이 관광지로 이동하고 그 내에서 이동하기 쉬워야 좋은 관광지이다. 제주는 섬이기 때문에 공항과 항만이 있어야 제주를 방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제주도내 관광객 이동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기록을 다뤄본다. 1945년 해방 이후  제주에 관광객 방문 관련 기사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60년대 초반부터이다. 1960년대 초반부터가 제주관광산업의 기반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고, 지금의 제주관광산업의 태동기였다.

◆ 제주가 하와이와 비교된 최초의 신혼여행지로 기록

아래 첫 번째 신문기사는  『조선일보』,1964. 6. 21.자 기사다. ‘5.16 이후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건설을 칭송하고, 관광산업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당시 제주보다 인기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혼여행지 온양과 해운대와의 비교, 하와이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관광지라 소개하고 있다.

“(전략) 군사혁명이후 제주도에는 혁명아닌 혁명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다름아닌 제주시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횡단도로의 개통이라하겠다.(중략) 횡단도로는 산업발전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크지만 관광제주를 위해서도 이처럼 다행한 일은  없을것 같다. (중략) 지금까지 경향각지 신랑신부들은 밀월여행으로 온양이나 해운대로 찾아간다. 그러나 온양이나 해운대는 너무나도 속화된 데다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다. 이왕 밀월여행을 떠나는 길이라면 멀리멀리 바다를 건너 제주도로 날아보면 어떨까? (중략) 3박4일 일정은 제주시에서 1박, 산장에서 1박, 서귀포에서 1박.. 용감한 신혼부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룩색을 둘러매고 한라산까지 정복한다면 어떨까? (중략) 그리고 관광공사 당국은 그러한 관광객들을 위해 제반 시설을 보다 더 완비하는 동시에 부부동반객들을 위해서는 항공회사와 협조하여 부부관광 특별할인권 제도를 신설해 주었으면 어떨까? (중략)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는 언제든지 자국인의 관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략)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안이라면 관광지로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서귀포와 한라산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제주도와 같은 놀라운 자연을 가지고 있으면서 외화 한 푼도 획득하지 못한 것은 순연히 우리 자신의 몰이해와 태만의 결과였다.(중략)  일본 오륜대회를 눈앞에 바라오는 우리는 외화고갈해결책의 일단으로서 제주도 관광 붐을 일으켜야 하겠고, 그것은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일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유배의 고도였던 제주가 이제 앞으로는 관광의 보고가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선일보 1964. 6. 21.>

또 재미있는 점은 외화획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수출, 곧 외화벌이는 국가의 중심 정책이었다.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베트남에 파병을 가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가게됐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 차관을 당시 정부가 받았다. 외화가 중요하고 산업을 일으켜야 할 시기에, 식민지 시대 민족이 겪은 고초를 얼마 안 되는 외화로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협정과 관련된 재판이 진행되고 있고, 아직도 끝나지 않는 역사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일본요륜대회라는 표현은 1964년 10월에 개최된 제18회 동경하계올림픽을 의미한다. 1945년 원폭투하로 패전했던 일본이 1964년 4월 OECD 가입과 그해에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는데, 당시 여론이 이웃 나라의 올림픽을 계기로 관광활성화와 외화획득이 절실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글을 쓴 정비석은 자유부인, 삼국지, 손자병법 같은 대중소설을 집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제주가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 『욕망해협』이나 ’제주여행(조선일보, 1964년, 탐라풍광)‘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였다.

◆ 5.16도로 건설, 김영관 전 지사의 적극 건의로 이뤄져

위 기사에서 언급된 횡단도로는 한동안 5.16도로라고 불리었고, 기존 관덕정~남군청을 잇는 도로를 본격 정비한 것인데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김영관 해군 소장이 적극 국가사업으로 건의해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1962년 3월 24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도청광장(현재 제주시청 앞) 에서 약1만명이 참석한 기공식에는 박정희 의장 대신 김형욱 대령(1963년부터 6년여 중앙정보부장 재임)이 참석한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시 소요 예측비용은 6억원으로(경향신문, 1962.2.4.) 당시 극장요금이 50원이고(조선일보, 1962.9.20. 6면) 요즘 1만원 수준임을 고려할 때 오늘날 약1200억원으로 추정된다. 2000년 9월부터 2020년까지 건설된 서성로(서귀포~성산)의 가시리~성읍리 3.1km 구간을 제외한 30.8km 건설에 총사업비(토지보상, 공사비 등) 1100억원이 소요가 되었다.(연합뉴스, 2018.5.27.) 제1횡단도로는 한라산을 가로지는 당시로서는 획기적 공사였고 당시 도내 교통편과 장비 사정이 매우 취약한 것을 고려하면 최근 도로건설 비용과 단순 비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경향신문 1962. 3. 25(왼쪽)기사,  경향신문 1962. 2. 4(오른쪽 기사)
경향신문 1962. 3. 25(왼쪽)기사, 경향신문 1962. 2. 4(오른쪽 기사)

위 기사처럼 1960년대 제주는 기반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하고  정부가 주도한 국가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면서 제주에 부여된 국가발전 역할인 관광산업 진흥이 태동된 시기였다. 1964년에 정비석이 기고한 글에서도 제주와 하와이에 대한 비교가 나오는데 1960년대 초반에 제주 관광개발이 태동되면서 미국의 하와이가 기록에 등장한다. 그 전까지 일제시대를 포함해 제주와 하와이를 직접적으로 비교한 기록은 거의 없다. 1962년에 들어 당시 김영관 제주지사는 제주의 관광산업 진흥을 역설하면서 하와이 사례를 들고 있다.

“(전략) 제주도와 많이 닮았다고 알려진 하와이는 오늘날 연간 30만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1억불 이상의 관광불을 얻고 있지만 현재 7천5백여 객실이 부족하여 앞으로 1만개의 객실을 증축하고 1970년도에는 4억불이상의 관광불 획득을 목표로 하는 관광개발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멀지않은 장래에 제주도는 관광황금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경향신문, 1962년 10월 6일, 관광제주의 개발을 제창한다)

◆5.16도로, 제주관광호텔, 3000톤급 선박 취항 등 제구관광 인프라 갖춰져

김영관 전제주도지사는 1925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졸업 후 미국 버지니아군사종합학원, 미주리 군사종합학원, 미군해군참모대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미국유학을 통해 많은 군사지식과 선진 문물을 배웠을 것으로 생각되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제주도지사를 역임할 당시 기고에서도 제주를 하와이와 비교 언급한 것으로도 유추된다. 1960년 해군대학교 총장을 거처 1961년 제주도지사로 취임하는데 이때 횡단도로 건설계획이 나왔다(임기 1961년 5월 24일 ~ 1963년 12월 17일). 약 2년 6개월 지사직 이후 1966년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고 최근 2021년 3월 21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김 전지사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제주 최초 현대식 호텔인 제주관광호텔 건립, 3000t급 대형 선박 제주항 입항 등 제주관광 태동기에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제주관광에 대한 기록은 많이 있지만 본 편에서는 제1횡단도로, 현 지방도 1131호선(제주특별자치도 이전 국도 제11호선)에 대한 신문기사와 당시 도지사 기고문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에서 주목할 점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고, 제주에서도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항과 항만,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이 본격적으로 건설되고, 관광산업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주관광 발전의 어떤 선진화된 모델이자 비교대상으로서 하와이가 등장했다는 점, 국가주도로 자유항 건설계획이 등장했다는 점, 1960년대 말이 되면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가 한진에 매각되고 항공교통이 활성화되면서 1970년대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 등이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이다.

오늘 제주관광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아마도 과거에 일어났던 다양한 일과 사건, 사업들과 관계가 있고 또한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역사기록을 살펴본다는 것은 논리적이거나 분석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선에서 지금의 문제를 볼줄 아는 힘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제주관광의 과거 기록은 역설적이게도 오늘 제주관광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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