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56)자리물회(한기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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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56)자리물회(한기팔)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6.0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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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물회

자리물회가 먹고 싶다.

그 못나고도 촌스러운 음식.

제주 사투리로

‘자리물회나 하러 가주’

‘아지망

자리물회나 줍서’하면

눈물이 핑 도는,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톡 쏘는 재피 맛에

구수한 된장을 풀어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여름날 팽나무 그늘에서

한담을 나누며 먹는 음식.

아니면

저녁 한때 가족들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먼 마을 불빛이나 바라보며

하루의 평화를 나누는

가장 소박한 음식.

인생의 참맛을 아는 자만이

그 맛을 안다.

한라산 쇠주에

자리물회 한 그릇이면

함부로 외로울 수도 없는

우리들 못난이들이야

흥그러워지는 것을

만나면 즐거운 붉으레한 얼굴들과 앉아

오늘은 아들 낳고 딸 낳고 살림 늘리고

시집 장가보낼 얘기나 나누며

그 자리물회가 먹고 싶다.

               (한기팔, ‘자리물회’,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보리밥 같은 섭섬이 노랗게 출렁이는, 여름도 초여름 그 마을 보목리를 찾아들면 인생의 참맛을 아는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는 음식이 있었으니.

함부로 외로울 수도 없다, 이 맛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왼 종일 종종종 고향 바다와 함께 걸치는 한라산. 술 술 술 넘어간다고 사는 것도 다 술 술 술이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뼈는 뼈, 가시는 가시. 애써 모른 척 다 어루시루며 살아왔기에 살아진 것일 뿐.

‘아지망 자리물회나 줍서’…… 휘이 젓는 숟가락에 노을이 와 진다. 베이고 썰리고 절궈지고 녹아든다 해도 자리는 자리! 하여 저 먼 마을 불빛조차도 다사로울 것이다, 오늘은.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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