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아니어도 우리 집은 절간 같다
대여섯 평 방안에 모셔놓은 어머니
가끔은
욕지거리도
염불처럼 흘린다
누구의 소원인들 안 듣고 싶었으랴
내 고함에 나 아직 귀 막은 적 없다며
천연히 부처님처럼
반가좌로 나앉은,
덤인 듯 덤이라는 듯 무덤덤 받쳐 든 세상
공양은 뒷전인 듯 눈에 피는 그리움
언뜻 본
텅 빈 얼굴이
오늘 문득 아프다
(이명숙, ‘세월 먹은 귀’, 전문)
사람이 맨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가장 최후까지 작동하는 기관이 ‘귀’라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인즉은, 우리 몸의 모든 기관들이 모두 다 중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다른 그 어떤 기관들보다 그만큼 ‘귀’가 더 중하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누구의 소원인들 안 들어주고 싶었겠습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때론 그 숨소리로도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늠할 수 있었을. 무덤덤 받쳐 든 세상이라 굽쇼? 아니겠지요. 바꿔 말해 실은 너무나도 절절해, 당신이 가고 난 자리 어쩌면 저 텅 빈 방조차도 오늘은 덤이면서 덤으로……, 살면서 우리는 세월이 약이라고 하곤 하지요. 그러나 ‘어머니!’ 이 단어 앞에서만큼은 그 약효가 우리네 삶의 질서까지도 거꾸로 돌려놓고 있네요.
이제 다 떠나보내고 초파일이 아니어도 절간 같은 시인의 집, 그 대 여섯 평 방 욕지거리가 이 여름 이 무더위를 달래줄 염불 소리로 들리는 것이 저만의 생각만은 아닌 듯 합니다만.
<시인 송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