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5)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가곡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5)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가곡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8.10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국민 가곡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일가들이 가족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갖고 애국가 제창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에서 이 기사와 국민의례를 갖는 가족 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가족 모임에서의 애국가 제창은 '전체주의' '파시스트' '국가주의'라는 비난이 일자 최재형씨 부친 고(故) 최영섭 대령의 며느리 여명희, 이소연, 안숙희, 이정은 씨, 네 분이 8월 6일 '고 최영섭 대령 며느리' 명의로 공개 반론 성명을 발표했다. 네 며느리의 당당한 성명에 또 다시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저희는 나라가 잘 된다면 애국가를 천 번 만 번이라도 부를 겁니다." 가족 모임에서의 애국가 제창에 대한 비판에 그 어떤 반론보다도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였다.

8월 6일은 일본 도쿄에서는 올림픽대회(폐회 9일)가 끝날 무렵이었다. 한국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우리 선수들의 피치 못할 부진으로 일본 도쿄에 애국가가 울려퍼진 것은 여섯번(금메달 6개)이었다. 다른 나라의 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부러웠지만 우리나라 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가슴이 찡했다. 필자만이 아니고 고국의 국민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때의 애국가 연주와 최재형씨 가족 모임에서 부른 애국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몇 년 전이었다. 재일동포 2세 지인과 카라오케(노래방)에 갔을 때 애국가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의 유명한 작곡가이며 수필가인 단 이쿠마(團 伊玖磨·1924-2001) 씨가 생전에 일본 TV에서 한국의 애국가는 곡과 가사가 아주 뛰어난 국가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은은한 멜로디는 물론 가사 역시 다른 나라의 국가는 전쟁·피·투쟁 이러한 과격적인 표현의 가사들이 많은데 한국의 애국가는 그러한 곳이 전혀 없고 의미가 깊다면서 높게 평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동포 지인이 자기도 민단 행사 때 가끔 부르지만 가사를 외울 수 없는데 한번 불러 보라고 해서 몇 권 있는 노래 책에 애국가 곡명을 찾으니 없었다. 그래서 마이크 음만 켜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일본 카라오케에 있는 한국 곡명에는 애국가가 없다는 것을 일았다.

필자는 국민의례를 겸한 애국가를 1년 동안 일본에서 몇 차례 부르고 있는지 1월 달부터 차례로 계산해 보았다. 민단 임원을 맡고 있기 때문에 민단 오사카본부 신년회, 지부 신년회, 2월의 본부대회, 3월의 지부대회, 3.1절 기념식, 8.15광복절 기념식, 9월의 경로회, 해마다 이러한 공식 모임에서 최소한 일곱 번과 기타 공식적인 강연, 공연일 경우에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적은 횟수이다.

이럴 때에는 1절로서 끝나지만 필자도 4절까지 부른 적이 있었다. 1970년, 육군에 입대했을 때에 단기 하사로 차출되어 당시 남한산성 부근에 있는 육군행정학교에서 날마다 아침 점호 때는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었다. 최재형씨 일가 모임에서 애국가 4절까지 제창하다니 대단하다면서 이러한 일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가족 모임에서 애국가 제창이 일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까. 왜 애국가는 국가적인 행사나 공식적인 모임에서만 불러야 하는 노래인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가수 소향이 프로 야구 시합 전에 부르는 애국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뛰어난 가창력에서 우러나오는 애국가는 그 어느 노래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그 후로 다른 가수들도 부르는 애국가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도 종종 듣고 있다. 필자는 지금 어느 가곡 못지않게 애국가를 좋아하여듣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은 집에서 갖는 가족끼리의 예배나 목사의 심방 예배에서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1절만이 아니고 전부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불교 신자들은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있다. 또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이다. 종교 신자들은 이러한 것을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며 자신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와 찬송가, 찬불가들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왜 가족 모임에서의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은 안 된다는 것일까. 종교는 속세와 내세가 있어서 삶의 본질에 깊은 의미가 있어서 차원이 높기 때문이고 애국가 제창은 너무 세속적이고 차원이 낮기 때문일까.

국가의 국기에 경의를 표하고 국가를 가족끼리 부르는 의례, 즉 태극기에 대한 경의와 애국가 제창에는 그 국가의 어느 특정인의 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국가를 형성하는 국민 모두의 주권의 상징인 국기, 국가(애국가)가 존재할 뿐이다. 그 상징성에 대한 의례는 그 나라 국민을 위한 기원인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국가주의, 전체주의, 파시스트가 된다는 말인가.

최재형씨가 국민의힘 대선에 등록하면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다. 만일 그가 대선에 등록하지 않고 자연인으로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가족의 미담과 일화로서 차원이 다른 측면에서 조명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놓고 전체주의,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는 저의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애국가 제창이 왜 비난 받아야 합니까." "저희들은 아버님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삶을 존경합니다. 누군가는 '가족 강제가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나라가 잘 된다면 애국가를 천 번 만 번이라도 부를 겁니다." "저희는 애국가를 부르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괴롭지도 않습니다."

성명문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필자도 그렇다. "나라가 잘 된다면 애국가를 천 번 만 번이라도 부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