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25) 어느 수녀의 한국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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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티모르](25) 어느 수녀의 한국 유학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9.2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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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녀의 한국 유학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며칠만의 등교다. 아침 미사를 보고 등굣길에 빵 열 개를 샀다. 1달러다. 무척 싸다. 크지는 않고 보통 작은 만두 사이즈로 도너스형, 만두형, 찐빵형 등 몇 가지 종류가 있었다. 등굣길 슈퍼에서 파는데 아주머니가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아주 깔끔한 인상이다. 이무현 선생님이 출근한다고 하니까 함께 점심을 먹으면 될 것 같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는데 경은지 선생님을 만났다. 김경미 선생댁에서 자고 온다고 한다. 그녀로부터 이 선생님 숙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 선생님과 김 선생님은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다. 한국 주인이 집 두 채를 지어서 원룸식으로 나누어 임대하고 있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철문이 잠겨 있다. 밖에 차량 한 대가 서있는데 아마 우리학교 학부모인 것 같다. 문을 두들기니 멀리 기숙사에서 한 학생이 알아듣고 달려와서 열어 준다. 사무실 안은 몹시 후덥지근하다. 키우는 고구마 줄기는 오래 물을 안 줘서 악취가 난다. 카사바도 마찬가지다. 청소 아줌마가 출근하면 물을 갈아줘야겠다.

강남대학에 유학하게 될 학생과 이기남 대사.
강남대학에 유학하게 될 학생과 김기남 대사.

오늘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오후에 한국에 유학 가는 두 명의 우리학교 학생들에 대한 인터뷰를 대사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사관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대사관에서 보내온 차로 이무현 선생님 그리고 두 명의 학생과 함께 대사관으로 갔다. 학생들은 대사관 현지 직원 및 대사님과 과외 활동, 봉사활동, 학교생활 등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사님은 지금 동티모르 정치 상황에 대해 몹시 걱정하고 계셨다. 선거는 끝났는데 정부 내각 구성이 안 이루어졌고 의회는 여소야대로 분열되어 있다. 예산 통과가 안 되어 공무원들의 봉급이 지불되지 않고 있으며, 사회가 불안해져서 각종 사업체들이 활동을 멈추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투자하고 있는 기업체들이 상당수 철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학교의 여러 문제들, 새 건물들의 부실 공사, 특히 화장실, 수돗물, 전기 등의 문제를 잘 알고 계셨다. 코이카 건축 담당 PM이 지난번에 대사님께서 알고 싶어 한다면 유지 보수 현황과 문제가 되고 있는 시설들을 촬영해 갔었는데 아마 대사님께 상세히 보고 드린 것 같다. 수도꼭지는 금속성으로 값이 나가는 것인지 많이 망실되었다. 또 플라스틱 연결 부위들도 보수하자마자 바로 파손되거나 없어진다.

대사님은 아주 열정적인 분으로 이 곳 학생들이 한국에서 무상 유학을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오고 계셨다. 강남대학과 결연을 맺어서 올해 3명의 유학생을 보낼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다. 학비 생활비 등 모든 경비가 지원된다. 우리학교 학생이 2명, 돈보스코 기술학교 학생이 1명 선발되었다.

돈보스코 선정 유학생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여학생인데 그녀의 나이가 24살이다.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는데 그녀는 다른 학생들에 비교하여 5, 6년 더 나이가 들었다.

그녀는 11명의 형제자매를 가진 대 가족의 장녀였다. 동생들을 돌보느라 대학에 가지 못했고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수녀원 적응이 잘 안되어 수녀원에서 나와 돈보스코 기술학교에서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4명의 지원자가 있었는데, 모두가 성적도 우수했고 성실했다. 그러나 어렵지만 많은 가족들, 또 수녀원에 다녀 온 경험 등을 살펴보았을 때 소위 흙 수저 중의 흙 수저였다. 그러나 장래에 성실하고 열심히 학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를 선정했다.

그녀가 선정되는 데는 이영대 자문관의 영향력이 커 보였다. 이 자문관의 말에 의하면 그가 처음 이 곳에 부임했을 때 테툼어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많이 격고 있었다. 그 때 그녀가 테툼어와 영어를 대비해서 작성한 간단한 생활 테툼어 쪽지를 만들어 제공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 정도의 정성과 열정이 있으면 어디 가서든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대사님은 임기를 마치고 28일 귀국하게 된다. 정국이 지극히 불안한 이곳에서 훌륭히 임기를 마치고 떠나시게 되는 것 같다. 해군 소장 출신인 그는 항상 서민적이고 친절하고 자상한 태도로 우리를 잘 보살펴주었기 때문에 교민들을 오래 잘 기억하리라고 믿는다. 귀국 후에도 더욱 보람차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땡칠이와 복구

아침 미사에 갔다. 베코라 성당 안은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요즘 놀라운 점은 학생들이 워낙 많다는 것이다. 어른이 100여명이라면 학생은 300여명은 넘어 보인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소위 ‘동새벽’에 일어나서 몸치장을 하고, 새벽 6시 30분 미사에 참례하려고 하면 정말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길로 등교한다.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대견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시간이 지나도 미사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의례히 신부님이 조금 늦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성당 집사와 수녀님이 분주히 오가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슨 일이 있나 보다. 다시 기다리다 6시 50분 경이되자 결국 수녀님이 신부님 대신 공소 예절로 미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성체 분배는 있었다. 한국에서는 공소예절을 하면 성체분배는 하지 않는데 어쨌든 기쁜 일이었다.

이 곳은 이상하게도 신부님들이 거주하는 곳은 성당이 아닌 곳 같다. 그러니 상주하는 신부님이 안 계시고 신부님들은 돌아가면서 이 성당 저 성당 날짜 요일 별로 미사를 집전한다. 그러나 보니 헷갈리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 성당을 관리하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가 그 성당 사제관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신입생 원서접수와 함께 칠판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신입생 원서접수와 함께 칠판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는 학생들.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어제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강당 앞과 운동장에 운집해 있다. 요즘 입학시험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강당에서 서류 작성과 등록을 하고 학과별로 가서 문제 풀이와 면접시험을 치른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 찌는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동티모르 최고의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이 정도의 수고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가량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다.

점심은 학교에서 교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도시락을 이무현 선생님과 함께 내 사무실에서 먹었다. 치킨이 있어서 뼈들을 모았다. 집에 있는 개, 땡칠이와 땡칠이 딸 ‘복구’ 생각이 났다. 요즘 외식을 할 때는 항상 봉지에 뼈나 남은 음식을 모아 가져다준다.

점심이 끝나자 선생님들이 식사했던 회의실로 갔다. 여기저기 선생님들이 먹다 버린 닭 뼈들이 있어서 함께 모았다. 그 중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도시락도 있어서 함께 가져 왔다. 먹지 않은 도시락 전체는 어미 땡칠이에게 주었다. 그리고 닭 뼈는 그의 딸 ‘복구’에게 주었다. 복구는 아주 옛날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였다. 복을 구해다 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미가 도시락 전체를 차지하고 또 복구에게 준 것까지 가져다 먹어 버린다. 한 집에 살면서 자기의 피붙이인데도 먹이 욕심이 큰 것 같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아니면 이 곳에서는 주인이 기본적으로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보일 때 많이 확보해 두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침대 매트리스가 너무 꺼져서 관리인 주다이에게 갔었는데 마침 주인 부부도 있어서 얘기했더니 바로 교체해 주었다. 그런데 누워보니 계속 덜컹대는 소리가 난다. 매트리스를 들어내고 보니 침상은 그냥 나무 지지대 위에 얇은 합편 몇 조각을 합쳐 놓은 것이고 그 위에 매트리스를 올려놓은 침대였다. 나는 부드러운 것보다 딱딱한 침대가 좋다. 그런데 이 매트리스는 경은지 선생이 쓰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 경 선생이 오래전부터 매트리스가 좋지 않아 계속 교체해 달라고 했더니 바꿔주었다고 했다. 지출을 극히 아끼는 주인이고 보면 오늘 얘기한 요구를 바로 들어 신품으로 구입해주었을 리가 없다. 아마 다른 손님이 쓰던 매트리스를 바꿔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신품도 아니다. 어쨌든 옛 것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원서 제출과 동시에 치르는 입학시험

오늘은 동티모르 교민 송년의 밤이 열리는 날이다. 학교에서는 마지막 신입생 원서 등록과 입학시험이 있는 날이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학교는 몹시 혼란스럽다. 그러나 엊그제 많이 등록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차분해진 편이다. 이곳에서는 신입생 입시 원서접수와 등록을 하면서 바로 시험도 치르는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 시험은 학과별 학생별로 대부분 다르고, 여러 선생님들이 한 학생을 일일이 평가한다. 넓은 장소에 과별로 학생들이 앉아 있고 차례로 앞으로 나와서 칠판에 문제를 풀거나 면접관 질의에 응답하는 형식이다. 그러니 앞 학생들이 시험 치는 모습과 문제 등이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는 그냥 노출되는 격이다.

처리할 일이 많아서 학교에 좀 늦게 남아 있었는데, 창밖에 빗소리가 요란하다. 꽤 많은 폭우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껏해야 1시간 반 아니면 반시간 후엔 그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자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몹시 후텁지근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려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보니 수돗물 모터 주변에 기술자 두어 명이 작업을 하고 있다. 또 수도관 어디에 고장이 생겼나 보다. 그냥 에어컨을 틀고 있으니 괜찮다.

심층면접 입학시험
심층면접 입학시험

6시 30분에 라멜라우 호텔에서 송년회가 있으니 6시 15분까지는 도착해야겠다. 5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미크롤렛은 대만원이다. 겨우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좁은 문에도 세 명이 달라붙어 있다. 낮은 천정 때문에 고개도 들지 못하겠다. 너무 사람들이 가득차서 밖을 보며 내릴 곳을 보고 동전으로 벽을 두세 차례 처서 내려야 하는데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옆에 차들이 너무 많이 세워져 있어서 어딘지 분간이 잘 안 된다.

겨우 내려 보니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를 미리 내렸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걸어가면 될 것 같다. 6시 15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우선 구내에 있는 코이카 사무실에 들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식장엔 내가 맨 처음 도착했다. 차츰 사람들이 들어와서 백여 명이 모였다. 2/3는 처음 보는 분들이다. 가서 인사를 해도 멀뚱멀뚱 처다 보거나 건성으로 대답하고 서로 잘 아는 지인끼리만 모여 대화한다. 한국 사람의 일반적인 습성이다. 특히 외국에 나갔을 때는 더욱 이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끼리끼리만 그룹을 형성하는 습관은 지양해야 한다.

이제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는 김기남 대사님의 송별식을 함께하는 뜻 깊은 행사다. 대사님은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친밀감이 넘치는 분이다. 이 곳에 있으면서 많은 일들을 해냈다.

대사님이 회고의 말씀을 하신다. 이곳에 근무한지 3년 8개월이 되었고 베코라기술고등학교 리모델링 등 많은 코이카와 연계한 사업을 했다. 특히 어려운 학생들의 한국 유학을 주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사님은 요즘 어수선한 정국, 교민의 안전 문제 등에 대한 염려를 많이 말씀하셨다. 이어서 이철희 영사님의 안전 관련 강의와 양주윤 한국어평가원장의 산업연수생 송출 문제 등을 설명했다.

송별연은 뷔페식이었다. 그러나 대사관 예산 문제 때문에 15개 음식이 차려진 소박한 저녁이었다. 과일도 없고 주스가 나왔다. 코이카 차량으로 귀가했다. 오랜만에 늦은 시간 9시가 조금 지나 잠자리에 들었다.

무장 경찰이 배치된 합격자 발표일

우리학교 신입생 합격자 발표일이다. 교감이 어제 말하길 오늘 아침 6시경에 학교 벽에 합격자를 게시할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7시 30분경에 학교에 도착했다. 교문 밖에 백여 명의 아이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선배 학생들이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교감을 만났다. 교감은 합격자 수가 조금 늘었다고 한다. 자동차과와 기계과 지원자가 워낙 많아서 2반을 증설하여 6개 과에 8학급이 편성되었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일  폭동에 대비해 무장경관이 동원됐다.
신입생 합격자 발표일 폭동에 대비해 무장경관이 동원됐다.

9시가 조금 지나자 교문이 열리고 10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20분쯤 지나자 지원한 학과 별로 학생들이 모이고 학생들에게는 합격자 명단이 인쇄된 종이를 나눠준다. 두 장인데 한 장에 3개 반씩 합격생 명단 전체가 쓰여 있다. 희비가 많이 엇갈린다. 합격생들은 기뻐 날뛰고 불합격한 학생들은 조용히 서성인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인다. 밖 유리창에는 합격생 등록 안내문이 붙여 있다. 교복 및 실습복 대금 187달러와 기타 비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돈은 동티모르 학부모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입학 정원도 딱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지원자수가 많다고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증원한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1년 전에 교육청에서 입학 정원, 시험과목, 설치 학과, 입시 일정 등에 대한 입학 전형 승인을 교육청으로부터 받아서 그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

학교 교정 안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었다. 불합격자들에 의한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 일에는 항상 경찰이 배치된다고 했다. 영어교사 Felix 가족과는 26일에, 한국어 교사들과는 27일에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하고 귀가했다. 모두 내가 초청하는 자리다.       

(2017년 12월 18일, 12월 20일, 12월 21일, 12월 23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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