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21)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총재의 부활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21)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총재의 부활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09.30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총재의 부활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님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님

"기시다는 끝났다". 일년 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패배한 기시다 후미오(64) 의원에 대한 평가를 하는 정치가와 평론가들도 있었다. 압도적인 표차로 자민당 총재선에 패배한 자민당 기시다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히로시마 참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자민당 패배로 끝났었다.

9선 의원으로서 스스로가 파벌 영수이고, 방위성장관, 외무대신, 자민당 정조회장 등의 화려한 요직을 역임했지만 지명도와 인기, 수상후보자의 대상자 속에서는 언제나 하위선에서 맴돌았다. 스가 수상이 재선을 표명했을 때도 입후보 자체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스가 수상의 재선했을 때, 지지율 30%대를 오르내리는 그가 자민당 얼굴로서 10월 말에 임기가 끝나는 국회의원(중의원) 선거를 하게 되면 참패를 면할수 없다는 2,3기 신진 의원들이 강한 내부 반발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참패할지 모르는 자민당 총재선에 재 입후보하게 되었다.

"자민당 임원 임기는 1년, 연임은 3년까지만 인정합니다." 입후보 정책 발표 속에 자민당을 개혁한다는 의미에서 임원 임기를 못박았다. 어느 정책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스가 수상의 권력 이상의 권력을 쥐고 5년간이나 자민당 2인자로서 군림하고 있는 니카이 간사장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자처한 기시다 선언에 재선 위기감 속에 스가 수상은 니카이 간사장에게 사임을 요구하고 자먄당 임원 개선에 착수했다. 때에 따라서는 임원 개선 전에 국회 해산까지 논의하는 기책과 꼼수까지 준비했지만 맹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이러한 눈가리기 식의 급급한 대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가 수상은 스스로 재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스가 수상의 재출마 포기 선언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 고노 타로(58) 행정.규제개혁상이었다. 웅변가이며 결단력이 빠르고 발신력이 강한 그는 언제나 수상후보 제1순위로서 국민적 인기가 높았었다. 그의 출마로 기시다 의원의 임기 개혁도 퇴색하고 말았고 당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반원전(원자력발전반대)', '천황여계(女系)승계찬성', '부부별성찬성" 등과 자민당 원로 정치가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 공격으로 자민당의 '이단아"로 불리웠던 고노 대신에게는 이러한 알레르기도 있었다. 이번 입후보 공약에서는 이러한 자신의 주의를 봉인했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으로 평소 국회의원들 사이에는 평이 안 좋았지만 국민적 인기만이 아니고 자민당 당원, 당우의 인기는 단연 톱이었다.

29일 실시된 선거 결과에서 예상대로 고노 대신은 당원표에서는 단연 1위를 차지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82명 중, 기시다 의원이 146표, 고노 대신이 86표, 다카이치 의원이 114표, 노다 의원이 34표였다. 아베 전 수상이 응원했던 3위인 다카이치 의원한테도 28표의 차가 벌어졌고, 종합순위 256표를 얻은 기시다 의원에게 255표를 얻은 고노 대신은 예상을 뒤엎은 2위로서 굴욕적인 패배였다.

결국 어느 누구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2차 선거에서 47도,부,현 47표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시다 의원 257표, 고노 대신 170표로서 기시다 의원이 압승으로 끝났다. 무엇인가 해주겠지라는 기대 속의 고노 대신에 대한 충격 요법보다는 미지근하지만 안정과 인심할 수 있는 기시다 의원을 택한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였다.

2015년 12월 <한일위안부합의서>를 난산의 난산 속에 당시 한국의 윤병세 외무부장관과 체결한 일본축 당사자는 기시다 외무대신이었다. 그후 한국은 얼굴 마담에 지나지 않았던 강경화 외무부장관의 주도하에 한일위안부합의서를 파기하고 말았다.

그 공로로 당시 한일합의서 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태규 위원장이 논공행상의 대가로 오사카총영사로 부임했었다. 기시다 의원은 일본 역대 2위인 외무대신을 맡았던 외교통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대한 정책은 바꿔지지 않을 것이다. 징용공 배상, 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에 대한 모든 공은 지금 한국에 가 있다는 인식이다. 그 공을 어떤 방식으로 일본에 넘겨 주는가 일본은 기다라고 있다는 자세이다.

총재선에 입후보한 4명에 대해서 국민을 향한 토론회가 있었다. 외교, 안보 전략에 대해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모두 제각기 자신의 정책을 논하는 가운데, 똑 같은 가치를 지닌 민주자유주의 국가로서 한국이라는 국명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영국, 동남아시아 등은 거론되었만, 어느 누구의 후보자한테서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필자가 자민당 총재 선거를 보면선 가장 인상에 남은 일이었다. 10월 4일 국회에서 정식으로 제100대 수상으로 기시다 의원은 선출된다. 그의 부활의 날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