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 풀처럼 살다가
바람이 동에서 불면 우리 마을엔 비가 왔지
비 오면 풀뿌리가 땅을 바짝 움켜쥐고
머리채 다 뽑히도록 기를 쓰고 버텼지
바랭이는 바랭이대로 엉겅퀴는 엉겅퀴대로
독초는 독초대로 약초는 약초대로
하늘이 허락한 만큼 제 자리를 지키며
신음은 있었지만 풀은 결코 울지 않았네
눕는 시늉하지만 풀은 결코 눕지 않았네
슬퍼도 아침이 오면 눈물 금세 거두며
이제 풀 가까이 눈높이를 맞추리라
초록 물 뚝뚝 지는 그런 시를 가꾸리라
풀밭에 풀처럼 살다가 시詩만 두고 가리라
(고정국, ‘풀밭에 풀처럼 살다가, 전문)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 기를 쓰며 하루하루 때론 ‘악’소리 그 마저도 맘 놓고 하지도 못하며. 그래도 하늘만은 알아주겠지 싶어… 울지 않는다고 울 일이 없었겠으며 눕지 않는다고 누울 일이 없었을까요. 눈 뜨면 그림자처럼 커져만 가는 절망 그러나 그 역시도 도래하는 아침, 그 앞에서만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꼬리를 감춰. 고난은 당해 본 자라야만이 그 고난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 듯 숙명처럼 쓰면 쓸수록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게 ‘시인’이라는 이름인지라 저렇듯 풀밭에 풀처럼 살다가 종내는 詩만 두고 가겠다는……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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