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4) 화장실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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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4) 화장실 찬가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1.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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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찬가
김길호 재일작가
김길호 재일작가

"초등학교 3학년쯤에 웬일인지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옆에는 우리 집이 있었는데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집안 일을 도우면서 오목(바둑)을 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화장실 청소는 어려웠다/ 할머니가 말했다/ 화장실에는 곱고 고운 여신이 있지/ 그러니 날마다 깨끗하게 청소하면 여신처럼 미인이 되지/ 그날부터 나는 화장실을 번쩍 번쩍 빛나도록 했지/ 미인이 되기 위해 날마다 닦았지/"

12년 전인 2010년 "도이레노가미사마:トイレの神様"라는 노래가 일본에서 대히트를 쳤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화장실(변소)의 신"이라는 의미이다. 위에 소개한 글은 그 가사 첫머리 부분이다. 일본에서는 화장실을 '도이레' 혹은 '데아라이(手洗い)', 'W・C'라고 하는데, 도이레는 영어 'TOILET' 의 일본식 표현이다. 정확한 의미는 양변기인데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 노래는 싱어송라이터 우에무라 가나(上村 花菜) 가수의 작사, 작곡으로서 그해에 대히트를 쳐서 상을 휩쓸었고 , NHK고하쿠(紅白)노래자랑에서도 불렀다. 보통 노래 가사는 3,4분 정도인데, 이 노래 가사는 10분에 가까워서 7분쯤으로 줄였지만 신인 가수의 노래를 7분까지 연장 시켰다고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일상샐활 중에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화장실이면서도 혐오 시설로 인식되었던 이미지를 일신 시켰다는 화제성으로 연속극까지 나올 정도였다.

규슈 가고시마 출신인 할머니와 우에무라 가수가 생활하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까지 겪은 실화의 내용이고, 가사가 일상적인 대화체로 들려주는 노래여서 일본 국민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듣고 있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다.

2015년 한국 '월간문학' 12월호에 제136회 신인작품 당선작 동시 부분에 정은미의 '화장실'이라는 시가 게재되었었다.

"어느 날/ 화장실이 말을 한다면/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거예요/ 멋쟁이 삼촌도, 어여쁜 이모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테니까요/ 어느 날/ 화장실이 화가 나서/ 떠들어대기라도 한다면/ 선생님도/ 대통령도/ 맘 놓고 돌아다니지 못할거예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할 때는/ 바로 화장실에 앉았을 때에요/ 비밀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해주는/ 화장실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를 읽는 순간 미소가 저절로 넘쳐흘렀다. 필자는 혼자 읽기가 아까워서 이메일로 여기저기 전송도 하고 프린트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화장실을 의인화 시켜 정곡을 찌르고, 화장실을 너그럽고 사랑스럽게 동시로 승화시켰다.

지금 일본에서는 제4차 한류붐이 일어나고 있다. 제1차는 2003년부터 2004년에 '겨울연가(일본에서는 후유노소나타:겨울소나타)‘가 방영된 시기이며, 제2차 붐은 2010년부터 2011년에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빅뱅 등의 K팝의 시대, 제3차 붐은 2016년부터 2017년 한국 음식의 먹거리와 화장품, 제4차 붐은 2020년부터 현재까지 '기생충(일본에서는 파라사이트)’, '이태원클라쓰', '사랑의 불시착'의 영화와 드라마, BTS, 니쥬 등의 K팝의 어우러져 상승일로에 있다.

제4차 한류붐은 오사카 이쿠노(生野)에도 강한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러면서 가장 난문제로 클로즈업된 것이 화장실 문제였다.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국가 간 이동이 전면 금지되어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한류팬들은 집에서 한국의 영화, 드라마, 음악을 즐기면서 이쿠노 코리아타운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쿠노구는 구민 약 12만 6000명 중(2021년 10월 현재), 외국인이 약 2만7400명이 살고 있는데 구민의 약 21.6%가 외국인 등록자로서, 한국・조선국적이 약 2만300명, 중국과 베트남 국적이 각각 약 2800명 등으로 일본 전국에서 외국인 최대 밀집지이며, 그 중에서도 재일동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재일동포의 성지'로 불리우고 있다.

특히 이곳에 동서 약 500미터 거리의 속칭 '조선이치바<조선시장: 정식 명칭은 미유키모리(御幸森)상점가>'가 있는데, 제1차 한류붐 이전에는 "셔터의 시장"으로 위기를 맞았었다. 손님이 안 오니까 문을 닫고 서터를 내려야 할 위기적 상황이었다.

"이 위기의 탈피 대책으로서 상점가의 임원들은 야마가다현 모가미군 도자와무라(山形県 最上郡 戸沢村)까지 시찰을 다녀왔습니다." 2010년 7월에 필자가 인터뷰할 당시 미유키모리중앙상점가회장겸 연합회(상점가는 동, 중앙, 서로 세 군데로 나눠졌었지만 2021년 10월에 하나로 통합됨) 故 홍여표 회장의 말이었다.

도자와무라는 한국의 여성들을 신부로서 적극적으로 맞아들였다. 그녀들은 김치를 중심으로 한국식품들을 팔고 '도자와김치'를 브랜드화 하는데 성공했으며, 1997년에는 '고려관'을 개관하여 '무라오코시(일본판 새마을)' 운동에 성공했다.

일본 굴지의 동포 밀집지로서 '조선시장'이라는 민족시장으로서 자긍심을 가졌던 자존심을 버리고 동북에 위치한 야마가다현의 시골 도자와무라까지 상점가 임원들이 시찰한 것은 당시의 위기적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위기감의 탈피를 위해 우선 상점가 명칭을 '죠센이치바:市場' '코리아로드' '코리아타운'을 놓고 부심했었다.

그런데 한류붐으로 이 상점가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일본 미디어가 조선시장과 쓰루하시(鶴橋)역 주변을 포함해서 이 일대를 '코리아타운'이라는 명칭으로 보도하기 시작해서, 명칭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완전히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죠센이치바'라는 명칭을 좋아 한다)

인터뷰 때, 홍 회장은 제주도가 제주 돌하르방을 2기 기증해 준다면 상점가 동서 입구에 세우겠다고 요청했었다. 그후, 필자가 당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오사카에 왔을 적에 조선시장을 안내하면서 이 말을 전했더니 기쁜 마음으로 기증한다고 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홍 회장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더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필자의 마음에 걸린다.

조선이치바는 쓰루하시역에서 도보로 약 15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데 평일 날도 그렇지만 토,일요일 때는 인파가 끊이지 않아서 필자는 이쿠노의 '한류로드'라고 부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일본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하여 불요불급(不要不急)의 외출을 자제하고 거리두기를 연일 호소했지만 코리아타운만은 별천지처럼 몰려드는 인파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학교와 직장이 코로나로 휴무, 휴교를 취했는데 그 휴일을 이용해서 가족, 친구, 연인끼리 찾아들면서 붐볐다. 조선이치바를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회장실 난은 날로 심각해졌다. 조선이치바에는 공중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연간 200만(2019년 조사)이 찾아오는 곳에 공중화장실이 없어서 방문객 중 약 8할이 여성인데 화장실 설치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500미터 상점가의 동쪽 편에 있는 조그마한 미유키모리 제2공원에 공중화장실 설치를 오사카시에 요청했지만 오사카시는 재정난과 소규모 공원에 화장실 설치 동결 방침을 취하고 있어서 협의는 평행선에서 진전이 없었다. 2020년 민단 오사카본부와 오사카한국총영사관이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 결과 2020년 12월 14일 기공식, 2021년 4월 23일 한국풍 공중화장실 준공식을 가졌다. 한국 해외동포재단이 2억원, 민단과 상점가 측이 5000만원의 재정을 부담했다. 화장실 앞에는 이쿠노에 재일동포가 많이 살게 된 배경의 비를 세우기가 추진되고 있으며, 재일 제주인이 가장 많이 사는 이곳에 제주 돌하르방 설치도 다시 논의되고 있다.

현재 국가 간의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태라는 우려 속에 4,5년이 지나고 있다. 타개할 길이 꽉 막혀서 반일과 혐한의 축적은 마치 '화장실 없는 한일 관계'처럼 표류하고 있다. 국가 간 표류와는 달리 제4차 한류붐은 민간 차원에서 성숙도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교류를 친한가인 우에다 마사아키(上田 正昭. 1927-2016) 일본 역사학자는 국가와 국가 간 '국제교류'라는 단어는 국익에 얽매이니까 한계가 있다. 그러니 민중과 민중의 교류, 즉 '민제(民際)교류'가 더 중요하다고 언제나 역설했었다. 그는 1965년에 '간무천황(50대천황 781-806년 재위)'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저서에 처음으로 발표하여 우익으로부터 테러의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에는 아키히도 천황(현재 상황)이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천황의 생모는 백제 왕손이라는 발언을 하여 충격을 주었다. 우에다 씨는 천황 주최로 열리는 궁중 우다카이(歌會)에 참석하면서 천황과 교류가 있었는데, 천황 부처가 교토에 머물 때 만찬 초대를 받았었다.

천황 부처의 마중을 받고 셋이서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때, 우에다 씨는 화장실에 들렀었다. 화장실을 나오고 우에다 씨는 깜짝 놀랐다. 천황이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천황의 인품에 놀랐으며, 이 사실을 공개하면 불경죄로 비난 받을까 봐서 말을 안했었다면서 필자를 포함한 몇 사람이 교토에서 우에다 씨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할 때 들려준 일화였다.

그는 일본 고대사의 제1인자였다. 고대사에 나오는 한반도 우리 민족의 일본 도래(渡來)를 '귀화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국가 형성이 제대로 안되었을 때인데 어불성설이라면서 '귀화인'을 '도래인'으로 불러야 한다면서 한일 간의 여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도 했다.

우에다 씨가 역설했던 민제교류를 위해 필자가 아는 저널리스트이며 편집인인 일본인 카와세 슌지(川瀨 俊治. 74) 씨는 한일 간을 마당발처럼 오가고 있다. 한일 양국의 번역물을 부탁 받으면 거절하지 않고 양국의 출판사를 찾아가서 난색을 표명해도 끈질긴 교섭 속에 번역 책을 내기도 했다.

일제시대인 1943년 나라현 덴리시에 있는 해군이 주도하는 야나기모토비행장 건설에 강제연행된 조선인 노동자 2,3000명과 경상남도에서 강제연행된 20여명의 위안부가 있었던 사실을 일본 시민단체가 밝혀냈다. 그 설명판을 1995년에 시내 공원에 설치했는데 나라시가 2014년 강제 철거해버렸다.

시민회는 덴리시에 항의 운동을 전개하면서 2019년 4월에 비행장 건설중이던 현장 가까운 곳에 다시 설명판을 설치했다. 카와세 씨는 시민회의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증언을 듣기 위해 한국도 몇 차레 방문하면서 시민회를 주도했다. 설명판의 한국어 번역을 필자도 도우면서 그들의 열정에 가슴 뭉클했다. 카와세 씨는 한일 민간(민제)교류의 교과서처럼 지금도 활동중이다.

유년시절 으슥한 뒷골목에서 남자들이 소변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변금지'라는 글을 낙서처럼 쓴 것을 보고 우리들은 그 글을 거꾸로 읽으면 '지금변소'라면서 깔깔 웃으면서 오줌 쌌던 기억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곳에 신사(神社) 마크인 도리이(⛩)를 그려서 신성한 곳이라고 웃지 못할 고육책으로서 오줌싸기를 방지하기도 한다.

매너면에서는 좀 껄끄럽지만 이렇게 유머스러운 배설의 화장실도 한일 양국 사이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얼어붙은 양국의 정치는 오늘도 오리무중의 표류 중에 있다. '화장실 없는 한일 정치'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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