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 (4)홍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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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 (4)홍 엄마
  • 김동훈 기자
  • 승인 2022.10.14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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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K0ICA 해외봉사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홍 엄마

“선생님 혹시 오늘, 홍 엄마 집에 가실래요?”

“네, 가보고 싶어요. 직접 뵙고 싶었는데, 함께 가도 되나요?”

“네! 물론이지요. 그분은 항상 모든 사람, 대환영이예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 봉사단원이 말을 건네 왔다.

세네갈 봉사 단원들 사이에는 홍 엄마라는 분이 유명하다. 지방에서 봉사하는 단원들이 수도인 다카에 올라와서 잠잘 곳이 변변치 않거나, 배고픈데 돈이 떨어졌거나,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는 모두

 

현지 홍 엄마택에 초청받았다. 엄청난 상 차림에 감격하면서 ~.
현지 홍 엄마택에 초청받았다. 엄청난 상 차림에 감격하면서 ~.

홍 엄마를 찾아간다. 천사 같은 그런 어머니가 계시다는 소식을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다. 어떤 분인지 항상 궁금했다.

나는 며칠 후에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는데, 선물 거리가 마땅치 않아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가죽 지갑을 살까 하고 있었다. 연락해 보니, 마침 홍 엄마가 도와줄 수 있다고 한다.

슘베듐 시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 시장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그림, 나무 조각품, 악어가죽 제품 등을 판다. 그녀는 산뜻한 스포츠 복장 차림이었다. 방금 골프 라운딩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흥정의 달인이었다. 생각이 뚜렷하고, 현지어 대화는 거칠 것이 없었다. 덕분에 가방, 벨트 등의 선물을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홍 엄마 집으로 갔다. 이미 도우미가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제부젠(Ceebu jen)이다. 제부젠은 기름으로 볶은 밥에 생선을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 한국인의 식성에도 아주 잘 맞는다.

여기서 세네갈 사람들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세네갈의 음식은 대부분 쌀이 주요 식재료로 이용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그리 생소한 식문화는 아니다. 하지만 조리과정에서 기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름지고 향신료 특유의 냄새가 있기 때문에 간혹 현지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한국인들도 있다. 종류로는 고추기름으로 볶은 밥 위에 튀긴 생선과 양파, 당근, 양배추 등을 곁들여 먹는 쩨부젠, 흰 밥 위에 양파와 갖가지 향신료를 볶아 만든 야사 소스에, 튀긴 닭고기를 곁들여 먹는 야사뿔레(Yassa poulet), 각종 고기류와 향신료 그리고 땅콩가루를 섞어 만든 스튜인 마페(Mafé) 등이 있다.

주된 아침 식사는 바게트 빵과 커피이다. 집에서 가볍게 아침식사를 하기도 하지만, 집 근처 구멍가게나 마이가(Maiga)라고 부르는 길거리 노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이가의 메뉴는 다양한 편이며, 길게 자른 바게트 빵 안에 버터, 마요네즈, 볶은 스파게티나 마카로니, 찐 감자, 삶은 계란 또는 오믈렛, 야채, 양파와 함께 볶은 고기나 생선 등을 넣어 각자의 기호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넣어 먹는다.

가장 비싼 고기를 넣어 먹어도 400 세파프랑(Fcfa, 한화 1000원 정도)이면 충분하다. 원하면 무료로 현지 조미료를 뿌려준다. 또한 고기와 야채 등을 넣은 튀긴 만두라고 할 수 있는 파타야(fataya) 또한 즐겨 먹는데 노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다. 점심 혹은 저녁 식사시간이 되면, 커다란 쟁반에 음식을 담아 모든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식사하면서 야채나 생선 등을 잘라 다른 사람들의 앞에 먹기 편하게 놓아주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다. 숟가락을 쓰기도 하지만, 손으로 먹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식사를 할 땐 오른손만을 사용할 수 있으며, 둥근 쟁반에 담긴 음식을 각자 피자처럼 조각내어 먹는 방식으로 식사를 하면 된다.

마마두 뒤우프 국장댁에서 일본 봉사단원들과 함께 제부젠 식사를 하면서
마마두 뒤우프 국장댁에서 일본 봉사단원들과 함께 쩨부젠 식사를 하면서

보통 하나의 쟁반에 모든 음식을 함께 올려 먹는다. 주민들은 오른손으로 식사하니 수저가 필요 없다. 오늘도 지름이 6~70 센티가 넘어 보이는 쟁반에는 생선과 각종 야채, 또 양고기를 저며 환으로 만든 음식도 나왔다. 매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이 넓게 퍼지는 음식 맛이 천상적이다. 우리는 식사와 대화를 함께 먹고 즐겼다.

홍 엄마는 세계 굴지의 다국적 가발회사 부사장님이다. 40여 년 전 그녀의 이모부가 한국에서 가발회사를 시작했고, 그녀는 곁눈질로 가발 디자인을 익혔다. 그 후 중국에서 가발회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세계 굴지의 가발회사에 스카우트되어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발 디자인 분야에선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말한다.

아프리카까지 와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봉사 단원들을 보자 그녀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집으로 초대했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너무도 따뜻한 그녀의 후의에, 남녀 불문하고 다카에 오는 단원들이 잘 곳이 마땅치 않거나, 먹을 것이 힘들 땐 자기 집처럼 그녀의 집을 드나든다. 모든 방은 언제나 개방되고, 냉장고에선 무엇이나 꺼내서 먹을 수 있다. 물론 전부 무상이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마침 함께 간 어떤 단원의 생일이어서 그녀는 직접 디자인해 주문한 핸드백을 선물했다. 그녀는 모든 봉사단원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베푼다.

이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몇 년 전 한 여자 단원이 공항에서 전화했다. 귀국하는데 짐이 초과되어 못 떠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즉시 공항으로 가서 40여만 원을 대신 지불해 줬고 단원은 무사히 출국했다. 그러나 단원은 지금까지 고맙다는 인사도, 돈도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보상을 바라진 않았지만, 마음이 아주 조금 쓸쓸했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카톡으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 언제나 가장 빨리 친절하게 꼭 답장하는 것이 그녀다. 세계를 경영하는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카에 있을 땐 나도 자주 도움을 받았다. 실제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모든 다카의 한 국 봉사단원의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 ‘홍 엄마’는 마음 넓은 어머니여서 ‘홍(弘) 엄마’가 된 것이라고.

세네갈 전통음식
세네갈 전통음식

무통(mouton), 수도를 점령하다!

유아교육 국장인 오스만 디우프가 타바스키(Tabaski) 축제에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8층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마당엔 양들이 여기저기 묶여 있다. 조금 기다리니 국장 오스만과 아들 모하메드가 들어온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치고 오는 것이다. 1층 현관으로 부른다. 이미 양 잡는 작업은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다. 매어 있는 가장 큰 양이 그가 준비한 것이다. 친구들 모습을 보고 놀랜 것인지 계속 울어댄다. 일곱, 여덟 마리의 양이 한 곳에서 소위 재물로 바쳐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주 어린 양도 있었는데, 옆에 함께 간 일본 봉사단원인 여자 선생님은 눈물이 거의 쏟아지는 듯 했다. 조금은 엽기적인 모습을 온 가족이 무심히 지켜보며 거든다. 양처럼 온순하다는 말처럼 큰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듯 했다. 숨이 끊어진 양을 전봇대에 거꾸로 메달고 가죽을 통째로 벗긴다. 나는 차마 다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마당 주변을 괜히 헤집고 다녔다.

세네갈에서는 이슬람력 12월 10일부터 시작되는 이 날을 월어프말인 타바스키(Tabaski, 회교 축제일)라고 부르고, 다른 무슬림 국가에서는 아드 알 아드하(Eid Al Adha)라고 부른다. 아브라함(Abraham)이 신의 명령을 따라 자신의 아들(Ismael)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는 마지막 순간에, 신이 양을 마련해 대신 제물로 삼았다는 내용에 기인한다. 양을 잡아 가족,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명절이다. 이때는 가톨릭 가정이 이슬람 가정에 초대되기도 하고, 코리떼(Korité, 라마단 종료일)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이웃집을 돌며 용돈이나 선물을 얻으러 다니면서 서로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한 여자가 큰 플라스틱 통을 머리에 이고, 아이들과 함께 왔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고기를 조금씩 얻어서 어머니에게 넘긴다. 원래 양을 잡으면 삼등분 하여 가난한 자, 이웃, 그리고 가족이 나누었다고 한다. 거의 두 시가 되었을 때 구운 양 갈비와 약간의 고기 그리고 바게트가 나왔다. 수저 없이 오른 손으로 먹는다. 이것이 아침 식사다. 대여섯 시에 먹는 것이 점심이고, 밤 열한 시경에 먹는 것이 이날의 저녁이다. 그리고 이날은 그 집에 머문다.

나는 다른 교육부 직원인 마만두의 초대가 또 있어서 청장 집에서 일찍 자리를 떴다. 마만두는 유아원장 출신으로 대단히 친절하고 온화한 분이다. 올해 말이 정년이다. 그는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참으로 다복한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부인이 둘인 듯싶다. 부엌에 있던 분과 중간에 한 여자가 들어 왔는데 다시 부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세네갈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네 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교육국 직원들은 직위도 높고 여유도 있어서 두 명 이상의 부인을 두고 있어 보였다.

축제 한 달 전부터 수도 다카는 지방에서 몰려온 양, 즉 무통(mouton)들로 북세통을 이루었다. 약간의 공간만 있으면 양들이 차지했다. 양들의 신분도 각양각색이다. 뿔이 여러 번 잘 휘어지고 흰빛이 영롱하고 등치가 크면 금장식을 하고 수백만 원을 홋가한다. 희생되는 것은 모두 수컷이다. 못 생기거나 암컷만 남는다. 소위 못생긴 자의 행복이 이런 것이 아닐는지.

도시를 점령했던 무통들이 자취를 감춘 11월, 수도 다카는 다시 고요한 열대의 아침을 맞고 있다.    <계속>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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