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3) 귀국과 귀향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83) 귀국과 귀향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4.19 0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3) 귀국과 귀향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죽어도 가야 한다."

유언과 같은 마지막 한 마디이다. 3년 이상 코로나로 인한 일상적 제한은 인생의 사활 문제로 클로즈업되었다. 의사의 합리적인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장거리 이동은 물론 비행기 탑승은 절대 무리하다고 내린 결론이지만 본인은 그래도 가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무분별한 노인의 완고한 고집에서 나온 아집도 아니다. 사정을 들어보면 논리적이고 당연히 가야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건강상의 이유로 반대를 하는 의사의 권고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고국을 떠나서 생활하는 90대 인생에 있어서 귀국은 마지막 방문이 될는지 모른다.

고국, 제주 고향에서 도로 확장으로 인해 부모 산소 이장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자식도 없는 90대 재일동포 노인의 호소는 처절하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의사의 말을 듣고 절대 반대한다니까, 의사의 판단은 불의의 사태에 대한 예비의 한 방법론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라고 노인은 항변한다. 그러니 가야 하고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가겠다고 한다.

이 나이에 치러야 할 일로서 가장 가치 있는 현실인데 그것을 외면하면서까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반대하느냐고 나무라기까지 한다. 이율배반적인 모순과 부조리의 상황 속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만일에 사태에 모든 책임은 자기 자신이 진다고 하지만 만류하지 못한 주위 사람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4년 만의 귀국이지만 부모님 산소 이장만 지켜보고 조용히 지내다가 오겠다고 한다. 일본에 살면서 고향 제주에 가기 위해 귀국하고 있지만 오사카에서 직행 항공편을 이용하고 제주로 가니 협의적인 의미에서는 간단한 고향 나들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국과 귀향의 차이는 엄청나다.

오사카와 제주를 오가는 비행시간은 왕복 3시간 정도이다. 이 3시간을 위하여 소비하는 시간은 5배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집에서 공항까지, 공항에서 탑승 수속,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서의 기다림, 또 하나의 큰 걸림돌은 탑승기 내에서의 예측 불가능한 돌발적인 사태이다. 이것을 열외로 치더라도 국내선일 경우에는 수속이 간단하지만 국제선일 때는 수속 시간이 길어지고 보이지 않는 긴장감도 함께 따라다닌다.

이 모든 것을 90대 노인은 스스로 감수하고 견디고 고향 제주로 가야 한다. 제주에서 오사카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의사는 이것을 노인이 감당할 수 없다는 객관적 판단이다. 의사 말대로 이 말에 따라 고향 가는 것을 단념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협의적인 의미이지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고향 가는 것도 외국에서는 모국으로 귀국하는 것이다.

의사의 객관적인 이 판단은, <당신은 건강상 비행기를 탈 수 없으니 앞으로 귀국을 포기하고 이국에서 계속 살다가 생을 마치라>는 선고나 다름없다. 고향에 있는 부모 산소 이장의 문제도 큰 문제지만 앞으로 죽을 때까지 모국에 귀국할 수 없다는 선고는 그 이상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죽을 때까지 다시는 고향은 물론 고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재일 1세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즉, 국내에서 생각하는 고향에 대한 개념과 외국에서 생각하는 고향의 개념은,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의 애수, 향수 등이 어우러져 미화 시킨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노인은 필자도 잘 아는 노인이시다. 그 신념이 확고한 것을 다시 확인 후에 그래도 가신다면 필자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동행할 생각이다. 필자도 노인과 같은 입장이면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