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90) 고(故) 오승철 시인 마지막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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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90) 고(故) 오승철 시인 마지막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6.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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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고(故) 오승철 시인 마지막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새로운 시조집이 나오면 언제나 바로 보내주었던 오승철 시인이었다. 그 시집을 읽고 난 후에 필자도 바로 평을 써서 게재된 기사를 이메일로 보내면 무조건 고맙습니다 하고 이메일 회신이 왔었다. 이러한 수학적인 공식이 이번에는 빗나갔다. 보내준 시집이 필자에게 오지 않았다. 이 배달 사고로 오승철 시인의 부인, 강경아 씨가 5월 31일 다시 보내준 시집이 6월 13일 배달되었다. 오승철 시인이 읽지 못하는 감상을 지금 쓰면서 몹시 안쓰럽다.

고(故) 오승철 시인의 마지막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는 모두 5부로 59편이 게재되었다. 그 작품 중에서 11편을 소개한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이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

 

둥실둥실 태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 하고 싶다

이별의 인사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면서 손을 흔들거나 말을 건네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등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그 많은 방법 속에 유난히 '거수경경례'이다. 어쩌면 인위적일지도 모를 이별의 의식이다. 그러나 거수경례에는 보이지 않는 위엄과 권위가 있다.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이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그렇다. 가난의 생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녀들의 물질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다. 그 전장(戰場)에서 퇴역하는 상군과 은혜를 베푼 바다에 대한 숭고함과 경건함에서 우러나온 거수경례는 최대의 의례이다.

<축하하듯>이다.

 

축하하듯

 

어느 마을에나 정자가 있고 공론의 장이 있다

서너 명만 모여도 웃음꽃은 피어나고

망오름 장끼소리도 까딱하면 소환된다

 

하루는 어머니도 이 논의 속에 올랐다지

저 하늘 별 하나 더 늘었을까 줄었을까

가신지 얼마쯤 돼야 고향에 별로 뜰까

 

하늘은 하늘대로 우릴 내려 보나보다

하늘나라 입학을 축하하는 것인지

가끔은 마을 밖으로 별똥별도 쏘아댄다

마을마다 정자가 있고 공론의 장이 있다. 제주에서는 팽나무가 있고 또 옛날에는 용천수에서 빨래를 하거나 물허벅에 물을 담아 나르는 곳도 그중의 하나이다. 정보 발신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이다. 희로애락의 삶의 여운들이 소용돌이처럼 휘감기는 그 화제 속에는 하늘의 별이 돼버린 망인(亡人)들도 소환된다. 어머니도 이 논의 속에 올랐다지만, 그것은 어머니 이야기도 그렇지만 오승철 시인 자신의 이야기를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서귀포 한쪽>이다.

 

서귀포 한쪽

 

눈발이 펏들 펏들

서귀포 동문로타리

시외버스 끊겼지만 국밥은 말고 보자

택시비 그게 문젠가 '비틀' 길을 메고 간다

 

2022년 12월 23일 오후 9시 50분

이 길이 십 년 후면 나를 기억해 줄까

변변한 시 한 편 없이 찾아온

서귀포 한쪽

 

'2022년 12월 23일 오후 9시 50분' 시인 외에 이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길이 십 년 후면 나를 기억해 줄까'라고 '시외버스 끊겼지만 국밥은 말고 보자'라고 해서 먹을 것 다 먹고 독백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이 길이 기억을 못 하더라도 누군가가 아니고 거의 모두 기억해 줄 것이다. 변변한 시 한 편이 아니라 번쩍이는 시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사천 년 해녀물질 끝나는 바다에서>이다.

 

사천 년 해녀물질 끝나는 바다에서

 

한반도 해안선 따라 굽이굽이 돌아들면

어디서나 고무옷 입고 늙어버린 바다가 있다

이어도 꿈을 그리며 건너온 저 바다들

 

삼짇날 원정 물질 추석이면 돌아간다

다 떠난 바다에도 물결소리 숨비소리

더러는 육지 총각과 눈이 맞아 눌러산다

 

사천 년 대 이은 물질 이제 비록 끊긴대도

사람 서넛 사는 섬에 데닥데닥 홍합처럼

사투리 제주 사투리 끈질기게 붙어산다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로서 강남에 갔던 제비도 돌아온다고 전해지는 세시 풍속이다. 그때제주 해녀들은 육지에 원정물질 나갔다가 추석 때는 돌아온다. 한 해만이 아니고 되풀이된다. 약 반년의 타향살이지만 그 생활 속에 사랑도 싹트기 시작한다. 사천 년 대 이은 물질이 대를 끊겨도 육지의 어느 작고 작은 섬에 사람 서넛 사는 그 섬에 홍합처럼 제주 사투리와 끈질기게 붙어산다. 연민의 정을 느끼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함축돼 있다.

다음은 <2022년 첫눈>이다.

 

2022년 첫눈

 

망오름 앞뒤로 품은

내 고향과 가족묘지

허랑방탕 꿩 한 마리

산소에 뭣하러 왔나

아버지 어머니 생각

더 못 버텨 내리는 눈

 

허랑망탕 꿩 한 마리는 오 시인 자신의 분신이었고, 더 못 버텨 내리는 첫 눈 역시 자신의 눈물이 아니었던가. 내 고향과 가족 묘지에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간 2022년 첫눈이 내린 추운 겨울이었다.

다음은 <자녀 셋을 완판했으니>이다.

 

자녀 셋을 완판했으니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했지

막내딸 혼사 끝내자 어느 선배하는 말

청년들 삼포시대에 현대판 장사꾼일세

 

삼포시대라는 단어 의미를 몰라서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삼포세대'라는 의미로 연애와 결혼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대한민국의 신조어라고 써 있었다. 언어도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아무리 외국 생활이지만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그 단어의 무지에 대해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론이지만 부친으로서 할 일 다 하고 생을 마친 오 시인은 어느 선배 말처럼 뛰어난 현대판 장사꾼이었을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꺼져간다. 봉분들>이다.

 

꺼져간다. 봉분들

 

이대로 꺼져주랴 이대로 꺼져주랴

뻐꾹뻐꾹뻐꾹이 요즘 자주 저러시네

몇 년째 병수발 받다 요즘 자꾸 저러시네

 

이백 년쯤 되었을까 삼백 년쯤 되었을까

비치미오름 오르다가 무덤 자리 흔적을 보네

눈비와 바람에 흩어진 한 생애를 만났네

 

종손과 실랑이 끝에 명절제사 작파했네

살아서 육칠십 년 죽어서 이삼백 년

천년도 누리지 못한 봉분들이 꺼져간다

돌아가서 얼마 안 된 고인의 작품에 대해서 이런 얘기하면 신랄한 비판을 받을는지 몰라도 '천년도 누리지 못한 봉분들이 꺼져간다'에 대해서는 솔직히 사치스런 소리이다. 종손들과 다틈 없이 명절 제사 작파 않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대물림으로 정성껏 치른다 해도 천 년은 고사하고 백 년, 오십 년도 어림없다. 지금까지 오승철 시인 답지 않은 시였기에 고개 갸웃둥거리면서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첫 경험>이다.

 

첫 경험

 

잎 다 진 참나무에 과일 몇 일렁인다

초겨울 어스름 저녁 저게 무슨 과일일까

후르륵 날아오르는 떼까마귀 여섯 마리

 

링거대 링거액이 주렁주렁 달렸다는

어느 선배 그 전화에 우린 통쾌하게 웃었다

그렇게 많은 링거를 달아 본 건 처음이란다

 

본질과 현상이라 쉽게 말하지 마라

링거가 많을수록 전과가 많다는 뜻

그 선배 어깨쭉지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고독한 병실에서 을씨년스러운 만추의 창밖을 바라보면서 동병상련의 선배와 나누는 대화는 늦가을 창밖의 쓸쓸함을 통쾌하게 극복하고 있다. 링거의 무게와 반비례하는 몸무게가 링거 많은 전과의 어깨쭉지를 더욱 무겁게 한다. 자신도 그러하거늘 선배를 감싸는 이심전심은 선배 또한 후배에게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음은 <애벌레 풍경소리>이다.

 

애벌레 풍경소리

 

낙엽이 지고 나니 절 한 채가 보인다

절집 사람들은 잠시 외출하였는가

몸 뱅뱅 감은 낙엽만 대롱이는 풍경소리

 

빽빽했던 숲속 산사의 주변은 만추가 지나면서 마지막 잎새까지 다 떨어져서 베일에 싸였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쩌다 나무에 위태롭게 남아 있는 아니, 걸려 있는 그야말로 마지막 잎새가 바람결에 대롱인다. 마치 뱅뱅 도는 그 낙엽이 금방이라도 산사의 종이 되어 울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은 <아리랑 아리랑 이쿠노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이쿠노아리랑

 

재일동포 소설가

깡다구 김길호 씨

세화장 한켠 같은

이쿠노 쓰루하시 시장

좌판에 싸락눈 소리

오락가락 제주사투리

 

이 시는 독자들이 읽어도 제대로 이해 못할 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는 오 시인과 김길호(필자)만이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한 '사우곡(思友曲)'이다. 필자가 쓴 중편소설 '이쿠노(生野)아리랑'이 있다. 이쿠노를 배경으로 4.3을 주제로 쓴 소설이다. 오승철 시인이 오래전 오사카에 왔을 때 이쿠노에 있는 쓰루하시 시장을 같이 돌아본 적이 있었다. 제주 출신 할머니들이 많이 장사하는 곳이었다. 다음 소개하는 시도 그렇지만 그때 그 모습을 시로 썼다. 가슴이 찡하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어 어 어>이다.

 

어 어 어

 

소설가와 언론인 재일동포 두 김씨가

오사카에서 대판 싸워

등 돌리고 살았는데

물 건너 세화오일장에서 딱 마주쳤네. 어, 어, 어

 

소설가는 필자이고 언론인이라면 함덕 출신인 김봉신 재일동포 민족일간지 통일일보 오사카 지사장이었다. 그 선배와 무척 친하게 지내면서 오 시인이 오사카에 왔을 때 소개했다. 그런데 오사카에서 필자와 크게 다툰 후 그는 함덕으로 귀향하여 지내고 있었다. 서로 연락도 끊고 지내다가 필자가 제주 갔을 때 우연히 세화오일장에서 마주쳤다. 너무도 갑작스런 마주침에 우리는 오랜 앙금을 버리고 함덕 선배집을 방문할 때 오 시인도 같이 갔었다. 이러한 연유를 안 오 시인이 '어 어 어'라는 시를 썼다. '오사카(대판)에서 대판 싸워'의 대판을 다시 삽입한 재치성에 탈모한다.

오승철 시인의 <시인의 말>을 소개한다.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습니다. 자욱했던 숨비소리도 사라지고 불턱의 잔불들도 꺼져가고 항일운동을 펼쳤던 그 기개만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상군해녀였던 어머니도 떠나셨습니다. 더 텅 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

2023년 봄기운 속에서 ... 오승철

오승철 시인은 2023년 5월 19일 영민하여 5월 22일 제주문인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오승철 시인은 서귀포 위미리에서 태어나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겨울귤밭>으로 등단. 시조집으로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 <터무니 있다> < 누구라 종일 홀리나> <개닦이> 등 5권을 펴냈고, 단시조 선집으로 <길 하나 돌려세우고>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사고 싶은 노을> 8인8색 시조집 <80년대 시인들> 등을 냈다.

중앙시조대상, 오늘의 시조작품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서귀포문학상, 제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오승철 시인의 명복을 다시 새롭게 빌면서, 참고로 필자가 쓴 "오승철 시조시인 추도기"를 첨부한다.

(필자에 대한 시가, 추도기 속의 시와 시조집 소개 속의 시의 내용이 약간 다른 것은 오승철 시인이 교정을 했음)

http://www.jejukyeong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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