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94)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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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94)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07.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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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박수기정 관점'이라는 책 이름으로 우편물이 왔다. 열어보니 정드리문학 제11집이었다. 박수기정이라면 그렇게 알려진 관용구가 아닌데, 샘물을 뜻하는 절벽을 뜻하는 의미가 합쳐져서 바가지로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제목이었을까 하고 의아스러웠는데 시집에 '박수기정 관점'이라는 시가 있었다. 여러 동인의 작품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서 동인지 책 이름이 '박수기정 관점'인지는 모르겠다.

금년 6월에 발행된 시집 머리말에는 양시연 회장의 짤막한 글로 시작되고 있었다. 쑥도 바닷가 쑥이/ 더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바닷가에서 20년 자란 정드리가/ 이제 또 하나의 발돋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두렵고 설렙니다./

20년의 동인지 역사는 대단하다.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이 시집에는 지난 5월에 유명을 달리한 오승철 회원의 추모 특집이 화보와 함께 52쪽이나 게재되었었다. 그래서 축하의 말은 자제하면서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동인들에게는 무척 그립고 안타까운 나날들이겠지만 오늘을 사는 동인들은 작품으로써 그 애틋함을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고(故) 오승철 시인의 대표작들은 여러 곳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몸국>을 소개한다.

 

몸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거냐고?

그러네, 어느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를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에 부조하듯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오면

펄펄끓는 가슴에 똥돼지 고기국물

배지근 우린 몸국이 되고 싶네

 

제주의 관혼상제의 전날이나 당일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몸국이다. 늦가을 마지막 잎새가 될 이파리끼리 낙엽이 되어 정처 없이 떠날 길을 속삭인다. 싸락눈 내리기 전에 황량한 들판에서 일을 마친 사람들은 허기진 몸을 지탱하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포근한 마을을 향해 총총걸음을 옮긴다. 별들도 주린 배 안고 같이 따라오는 초저녁 마을에는 펄펄 끓는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사람들은 그 몸국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원을 뛰어넘어서 그러한 몸국이 되고 싶어 한다. 애절한 상황 설명 속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를 걸어놓고는 제주도 전역에 산재해 있는 360여개의 오름이 아니겠는가. 몸국은 제주 향토음식이기 이전에 제주 특유의 관혼상제 제물의 원천(源泉)이다. 가문잔치만이 아니고 장례식, 대소상 등에 필연적인 메뉴인 몸국은 제주인의 제식(祭食)이다. 그 몸국이 오사카 이쿠노의 재일 제주인 음식점에서 향토요리로 등극하고 있다.

다음은 문순자 시인의 <성소를 훔쳐보다>이다.

 

성소를 훔처보다

 

노랑턱멧새인가 곤줄박이 녀석인가

가끔은 농약도 치는 감귤나무 가지에

손녀딸 밥사발만 한 새집 하나 생겼다

 

몇 번의 날개짓이 둥지를 완성했을까

이끼와 지푸라기 솜털로 차린 신방

저들의 성소를 엿보는 내 몸이 저릿하다

 

삐이삐 찌르찌르 밥 한 술도 못 줬는데

그럼에도 탈 없이 부화를 끝냈는지

올여름 가마솥더위 달구는 저 새소리

 

농약까지 친 감귤나무에 손녀 딸 밥사발만 한 귀여운 새집 하나. 둥지를 틀기 위해 작은 새가 셀 수 없이 비상한다. 훔쳐보는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어느덧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로운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왔다. 도움 하나 받지 않고 새들의 억척스러운 자립의 일생이 계속된다. 새 생명 탄생의 고고함은 가마솥더위도 축복이었다.

다음은 조영자 시인의 <낮달>이다.

 

낮달

 

참말로 반짝이던

스무 살 그 첫사랑

 

함부로 그리워하면

그마저 죄가 될까

 

아직도 해독 못하는

행간으로 떠 있다

마음 속이나 머리 속에 그려 보는 모든 사고(思考)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성스러운 최고의 자유다. 그 사고마저 유무죄를 따진다면 인간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첫사랑을 함부로 그리워하면 죄가 될까 하고 올려놓은 시 구절이 앙증스럽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운 첫사랑을 왜 낮달과 비교했을까. 첫사랑은 미화시키면 시킬수록 잘 닦은 보석처럼 더욱 빛난다. 그런데 퇴색해버린 낮달은 파아란 하늘가에서 안쓰럽게 표류하고 있다.

다음은 김양희 시인이 <박수기정 관점>이다.

 

박수기정 관점

 

마그마 더운 피가 파도에 굳어버렸다

한라산 울분이 송두리째 엉켜 붙었다

난드르 그 갯바위에 무릎을 구부린다

 

날 세운 갯바위가 흰 무릎을 찢을 때

울분도 더운 파도 바람에 모두 불리고

개으른 사내의 평화 드러났다 잠겼다

 

예고 없는 한 순간에 정전을 당한 당혹스러움 같다. 아니, 그 이상의 충격 속에 굳어버린 모든 것들은 결코 한라산의 울분만은 아닐 것이다. 그 한이 서린 기정(절벽)은 끊임없는 눈물(박수)을 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갯바위에는 쉬임 없이 파도가 밀려와서 부딪힐 때마다 하얀 파도를 일으킨다. 참회 속에 구원의 자세인지 모르겠다. 썰물과 밀물, 바람까지도 그렇게 갯바위 주위를 맴돌면서 무릎을 구부리고 있다.

다음은 양시연 시인의 <그리운 실랑이>이다.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는 시이다. 오히려 해석을 덧붙이면 탈선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감상을 말한다면 나이가 들어 상군 해녀가 아니더라도 좋다. 숨비소리는 고통의 한숨이 아니고 희열과 성취감의 환희이다. 숨비소리를 제주 출신 문인들까지 삶의 고난의 상징적인 한숨이라고 쓰는 문인들도 있다.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필자는 정반대이다. 숨비소리야말로 제주 여성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대표적인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합창처럼 들려오는 환청의 숨비소리에 어머니는 오리발 내밀고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 갈 것이다.

 

그리운 실랑이

 

"다시 물질 안 가겠다"

눈치 보던 어머니

 

태왁이며

오리발 숨기고

오리발 또 내미네

 

어느새

숨비소리가

텃밭에 낭자하네

 

마지막으로 김현진 시인의 <동문아리랑 1>이다.

 

동문아리랑 1

 

까만 손톱으로 하얗게 깐 쪽파 몇 줌

그 옆에 마른 고사리 오분작도 한 접시

맨바닥 봉다리 행렬 아리아리 동문시장

 

장사가 뭐 별건가 궤짝만 엎으면 되지

명함 한 장 내밀 듯 간판마다 고향 이름

"상 갑써, 싸게 줄랑께" 반반 섞인 사투리

 

나는야 서울 토박이 어쩌다 흘러와서

'오메기' 뜻도 모른 채 오메기 오메기떡장수

아리랑 동문아리랑 내 곡조도 섞인다

 

이 시는 <시와 소금 2022 봄호>에 게재되었던 시라고 한다. 그런데 <정드리 창에 비친 좋은 시조 10편>에 '시작노트'와 게재된 것을 소개한다. 문화는 지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유구한 세월을 계속 지켜오니까 그것이 전통이 되어 문화를 형성한다. 음식문화도 그렇다. 특히 제각기 지역마다의 재래시장은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명함 한 장 내밀 듯 간판마다 고향 이름' 시인은 시작노트에서, "그 옛날 배를 타고 무작정 제주로 온 무산자들은 그곳에 그저 궤짝 하나 엎어놓고 장사꾼이 되었습니다. 푸성귀며 바닷고기를 올려놓고 솜씨 좋은 이는 국밥이라도 말아 팔았겠지요" 온고지신 속에 동문시장은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시장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곳의 후미진 구석에는 아침에 뜯은 푸성귀를 파는 할망들이 있다. 시인은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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