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일본아리랑] (102) 가을이 오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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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일본아리랑] (102) 가을이 오는 길목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0.1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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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가을이 오는 길목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한일 양국에서 가을을 나타내는 의미는 대동소이 하지만 파고들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자연 환경에서 산에 대해서는 단풍, 억새꽃 등이 있고, 바다에서는 꽁치, 갈치 등이 있는데 이것을 가을과 대비해서 사용할 때는 한국과 별로 다름이 없다. 그런데 특이하게 일본에서 가을을 소개할 때 각종 미디어들이 언제나 상위권에서 '가을의 미각'이라는 관용구 속에서 올려놓는 것이 있다. 송이 버섯이다.

송이 버섯 비빔밥을 TV에서 소개할 때는 옆에 있는 아나운서나 출연자들이 먹고 싶어서 침흘리는 코멘트를 추임새처럼 남발한다. 또한 온천가에 가서 그 지방에서 캔 송이버섯을 먹는 코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송이버섯 수확량이 아주 줄어들어서 이 고장에서 나는 송이버섯이 없어서 수입한 외국산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라고 선전용 전단에 기입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송이버섯을 이렇게 가을의 미각이라고 매스컴마다 호들갑스럽게 소개하는 것을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자연 환경에서 나오는 풍경과 수확물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가을에 대해서 일본 특유의 언어도 있다. 일본에서는 8월 말이나 9월 초순에 들어서면, "아키와스구소코니"(가을은 바로 거기에 (왔다):秋はすぐそこに)라는 의미와 "지이사나아키"(작은 가을(이왔다):小さな秋")라는 표현을 날마다 여기저기서 사용해서 식상할 정도이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소슬바람의 싱그러움이나 어둠이 짙어지면서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가냘픈 벌레 소리에 '가을은 바로 거기에 왔습니다' 혹은 '작은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라는 의미 속에 사용한다. 그러나 금년은 달랐다. 아니 금년만이 아니고 해마다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금년 가을에서는 이 단어들이 나올 기회를 엿보았으나 사어가 되고 말았다. 작은 가을이 실종이다.

한국에서는 작은 가을이 찾아 왔다거나 가을은 바로 여기까지 왔다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걸로 필자는 알고 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라는 풀어쓰기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가을은 살며시 찾아 온다는 이 표현 역시 지금은 진행형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계절의 경계선의 완충 기간이 무너지고 말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계절의 여운이 사라진 일상 속에서. 30도를 오르내리던 기온이 어느 날 갑자기 20도 전후로 뚝 떨어져서 가을은 제트 코스터 처럼 찾아온다. 갑작스런 이 변화에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에 빠진다. 여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잔상(殘像)의 상실이다.

이럴 때에 한국에서 필자의 친구로부터 마당에 감 나무가 있는 어느 시골집의 영상을 보내 왔다. 한 그루 밖에 없는 감 나무에 노랗게 감들이 익어 가고, 그 밑에서 강아지가 뛰어 놀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그 영상에는 익히 보던 가을이 넘치고 있었다. 한국의 전형적인 시골집의 가을 풍경이었다.

일본에서 가을의 상징으로 시골 마당에 감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노랗게 익어 가는 영상은 물론 엽서 한 장도 본 기억이 없었다.

무언가 한일 양국의 가을 소개에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바로 이것이었구나를 이제야 알았다는 새삼스러움에 놀라는 자신을 발견했다.

가을만이 아니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하장까지 이어진다. 소복히 눈이 쌓인 초가 지붕의 마당 모퉁이에 고고히 감나무 한 그루가 지켜보고 있다. 그 감나무에 노랗게 익은 감 몇개가 달린 풍경은 고국 시골의 원점이기도 하다. 필자는 작은 가을이 아니고 큰 가을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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