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106)제주 PEN문학 제2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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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106)제주 PEN문학 제20집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1.2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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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PEN문학 제20집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지난 10월 15일 발행한 PEN문학(김원욱 화장) 20집이 왔다. 한·베(베트남)수교 30주년 기념 공동시집 출판기념회의 시들도 게재되었었다. 이 특집에 게재된 작품을 소개하려면 번역된 베트남 시인들의 작품도 열거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 글로만 쓴 시를 몇편 소개한다. 그대신 이 특집에 게재된 한국어 작품도 생략한다.

나기철 시인의 기획1, 작가 조명에 게재된 작품 2편을 소개한다, <사진 2>이다.

 

사진 2

 

육이오가 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신안주 원흥리

뒷집 오빠와

만났을지 모르지

 

열여덟

월남해서,

결혼했던 열 살 위

이북 남자와

안 만났을 걸

 

그럼

나는 없겠지만

 

육이오의 비극의 응축된 시로서 가슴을 찌른다. 자신의 가계도를 담담히 술회하고 있지만 파란만장의 삶 속에 우연히 남한에서 만난 두 사람의 필연성에 자신이 존재한다. 어머니는 어쩌면 고향 신안주 원홍리 뒷집 오빠와 만났을지 모르지의 애달픈 향수는 더욱 연민의 정을 자아낸다.

다음은 <엄마>이다.

 

엄마

 

아내가 집에 있다

 

아파트 문

열기 전

걸음이 빨라진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있는 집에

올 때처럼

 

지금 한반도에서는 함량 미달, 아니 자격 미달인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이 공개 출판기념회에서 <암컷이 설치고 다니고 있다>는 발언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심정은 어렸을 때 사랑하는 보다 사랑해 주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줄달음치던 그 모습과 오버랩된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내와 엄마, 또는 딸을 향해 암컷이라고 영웅담처럼 공개 석상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가 존재하고 있어서 토하고 싶은 그 오염에서 치유되고 있다.

다음은 강방영 시인의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름다운 순간

 

빛이 지나갔다

투명한 듯 나를 투과하면서

초여름 초록 잎을 흔드는 나무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

빛이 어둠을 밀고 비췄다

빛나는 사랑이 날았다

 

강방영 시인의 시에서는 숲에 대한 시가 꽤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보는 시각이 바뀐다. 빛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빛은 고고하게 어느 곳에나 골고루 비추고 있다. 그것을 어떠한 장애물들이 그 빛을 거부함으로써 그늘이 생기곤 한다. 시인은 이것을 역설적으로 파고 들었다. 어둠을 밀고 비추게 한 것은 빛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처럼은, 잎새가 흔들림으로 인해서 어둠이 오기도 한다. 그러한 우여곡절 속에 어둠을 밀쳐내고 날아간 빛은 축복의 사랑이었다.

다음은 김광렬 시인의 <호수>이다.

 

호수

 

베란다 토란 잎사귀에 호수 하나 빠져 있다

어제 저녁 물울 줄 때 받아두었나 보다

청보석 같은 외눈이 외롭게 반짝인다

그래도 괜찮다, 사실 그것은

이골 저골 물이 넌출져 합수한 것이 아니니까

외롭고 고달픈 삶들이

연초록빛 사랑방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무사히 건너온 오늘 하루를

도란도란 반짝반짝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그 호수 속에는

옛날 같은 오늘이 담박하니 출렁이고 있다

 

어떻게 잎새 하나에 맺힌 이슬 한 방울(물 한방울)을 호수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 그 호수는 빠져 있다고 한다. 청보석 같은 외눈이 외롭게 반짝인다. 그 작은 호수는 두 개도 있지 않고 하나밖에 없다. 무사히 건너온 오늘 하루를/ 도란도란 반짝반짝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의 도란도란 반짝반짝의 의태어의 삽입도 놀랍다. 그 호수 속에는 오늘이 담박하니 출렁이고 있다. 극적인 삶의 전개도 아니고 보편적 일상의 흐름의 연속이다. 이슬 한 방울이 호수로 비약되면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다. 오래간만에 읽을 수 있었던 수작(秀作)이었다.

다음은 고성기 시인의 시조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

 

법정 스님이 가셨지만

이 말은 남아 있다

보시 많이 하지 말아

절은 가난해야 한다

비워야

채워지는 게

그 어디 절만이랴

 

금과옥조 대장경도

빨래판 같다는 어느 할매

그저 스친 말이지만

새길수록 깊은 것은

맘에 낀

얼룩진 때를

깨끗하게 씻는 법어

 

많이 들어보고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말이지만 대비가 날카롭다. 비워야 채우기 위해서 온 정성을 다 기울인다. 대한민국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빨래판 같다는 어느 할매의 말은 국보 모욕죄가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비유가 척 들어 맞는다. 투박스럽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빨래판> 같다는 표현은 꼭 들어맞는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연상케 한다.

시인은 이것을, 맘에 낀/ 얼룩진 때를 씻는 법어/로 승화시켰다. 빨래판 같다던 어느 할매의 말이야말로 핵심적 발언이었다.

다음은 오영호 시인의 시조 <그럴 수 있다 하다가도>

 

그럴 수 있다 하다가도

 

스트레스 쌓였나

아내의 한 마디에

순간 마음 밭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

방아쇠 당길까 말까

입을 꾹 닫아걸다

 

그래, 봄 햇살에 다 녹아 버렸나,

대못을 박아 놓고 한마디 말이 없는

그럴 수 있다 하다가도

마음 밭은 빙판이다

 

폭발 직전 순간이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기에 독자들에게 따뜻한 울림과 미소를 제공할 수 있었다. 빙판 같은 마음 밭도 뜨거운 냄비 식어 가듯 식어 가서 제풀에 식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후부터이다. 이러한 한(?)이 쌓여 마음의 병이 될는지 아니면, 면역이 되어 포용력 깊은 마음 밭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분석을, 차분히 쓸 여유가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고 있다.

끝으로 장승련 시인의 동시 <나무에 톱날을 갖다 댈 때>이다.

 

나무에 톱날을 갖다 댈 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나무 밑둥에 톱날을 갖다 댈 때는,

 

날아오던 새가

지친 날개를 접고 노래할 만한 곳이

어디 있는지,

 

더운 여름날

이파리마다 손을 맞잡고 숨결 일렁이는

시원한 바람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한꺼번에 비가 쏟아져도

빗물을 조금씩 받아먹고 내려보내며

몸체를 키우는 나무의 숭고함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자,

나무 밑둥에 톱날을 갖다 댈 때는.

 

몇십년 자란 나무를 벨 때에는 그야말로 참수(斬樹)이다. 나무처럼 고고한 생물도 없다. 뿌리를 내린 곳에서 자기 수명을 다할 때까지 묵묵히 버티고 있다. 그 숭고함이 수많은 연륜이 지나노라면 <신령의 나무>로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태풍이나 폭우 등의 자연 재해로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히는 경우도 있다. 이럴때에도 안타깝기 짝이 없는데,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인위적으로 톱날을 나무 밑둥에 갖다 대고 짜를 때에는 시가 제시하는 비원과 다름없다. 그 나무가 갖고 있는 몇십년의 역사를 한 순간에 부정해 버리는 잔혹성도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시로서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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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im 2023-11-26 22:44:29
제주에서 이런시 들이!
다시 찬찬히 읽어보며 음미하고싶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