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밭담을 기리는 진정한 선정비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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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밭담을 기리는 진정한 선정비를 세우자"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2.0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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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김구 판관 선정비 건립 주창
김진돈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김진돈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제주판관(현재의 제주시장)으로 1234년(고려 고종21) 부임한 김구는 처음에 정원부사록에 보직된 후 이곳 제주에 왔다. 조선 초기 시문선집인 『동문선』에 의하면, “김구가 제주판관이 되어 현지에 가보니 백성들의 내 밭, 네 밭의 경계가 없어 힘이 센 토호세력들이 나날이 남의 밭둑을 침범하는 우려를 범하고 있었다. 이에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는 돌을 모아 밭에 담을 두르기 시작하니, 이것이 바로 밭담이다. 토호세력이 발호하던 그 시대에 보통 용기가 있지 않으면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뒤부터 밭의 경계가 분명해지고 백성들이 편하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애월읍 금성리에서 발굴된 성곽이나 삼양동 집터 유적을 보면 돌을 쌓았던 흔적이 선사시대부터 보이나 사실 제주도 돌담은 김구로부터 역사성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제주돌담은 원래 있었던 고인돌이나 묘소들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되었고, 2014년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지금은 제주도가 자랑하는 경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밭담은 밭 가운데 있는 돌을 이용했기에 자연스럽게 농토가 풍요로워졌다. 큰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으며 밭의 경계를 뚜렷하게 했다. 흙의 유실을 막아주고 소와 말의 침입을 막아 농작물을 보호했다. 또 토지의 분쟁을 막아주며 묘지를 보호했으며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김구가 판관을 할 때 제주부사(현재의 도지사)로 있던 사람은 문청공 최자이다. 그가 김구에게 글을 짓게 하여 아들의 과거시험 교재로 삼은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김구가 근무할 당시 제주도는 최고의 문예부흥기라고 볼 수 있다. 김구는 밭담을 행정시책으로 추진하여 진정한 위민정신을 구현했고, 제주도의 흥학에 힘을 기우렸으니 어찌 드높이지 않으리!

이에 제주도민들은 그의 업적에 걸맞는 선정비를 하나 세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을 오래오래 기억하며 기렸으면 한다. 제주의 선정비는 조천이나 서귀포 등에서 볼 수 있는데, 현무암으로 지붕을 얹었고 비신은 산방산에서 나는 조면암을 사용했다. 알고 보면 제주밭담이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되는데 가장 공헌한 인물은 역사적 근거로서 지포 김구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주도민의 뜻을 한데 모아 적절한 장소에 판관 김구의 위민정신을 기리는 선정비 세우는 것을 제안한다.

이글은 지난 11월 28일 열린 제주도에서 개최된 ‘지포 김구선생 전북-제주 교류 학술세미나’에서 김순이 전 제주도문화원장이 주제발표에 대해 김진돈 전북 문화재위원이 토론에 참가해 발표한 지포 김구선생의 선정비 건립 주창을 요약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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