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08) 제주 테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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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08) 제주 테우 문화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2.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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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제주 테우 문화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망망대해에 뗏목과 같은 난파선에 누더기 빤스만 걸친 건장한 젊은이와 갑옷을 입고 쇠사슬로 칭칭 감긴 군인이 있었다. 누더기 빤스만 걸친 남자는 그 부근을 항해하는 군함에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여, 군함은 그들을 발견하고 기함으로 끌어 올린다. 1962년도에 한국에서 개봉되었고 2019년에 재개봉된 <벤허> 영화 속의 한 장면 이야기이다.

60여 년 전에 제작한 영화이지만 아직도 영화 베스트 텐에 들어가는 불후의 명작이다. 유태 민족 귀족인 벤허는 모함으로 인하여 로마 해군 함대의 노를 젓는 노예 생활을 한다. 로마군 함대가 마케도니아 해적과 싸우러 떠날 때, 벤허는 함대 제독 아리우스 눈에 들어 벤허만은 노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에 채우는 쇠사슬을 채우지 않도록 명령한다.

해적들은 아리우스 제독이 탄 기함에 투석 무기를 쏘아 불을 지르고 집중 공격을 해 가라앉힌다. 벤허는 묶이지 않았기 때문에 노를 젓는 노예들을 풀어준 후에 바다에 떨어진 아리우스를 구출한다. 누더기 빤쓰만을 걸친 벤허는 대패한 줄 알고 아리우스 제독이 자결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쇠사슬에 칭칭 감고 표류하다가 로마 제국의 함대에 발견되어 구출된다. 제독의 군함은 침몰되었지만 이 해전에서는 대승리를 거두었었다.

이때 표류하면서 벤허와 아리우스 제독이 탔던 배는, 배가 아니고 침몰한 배들의 선체를 모아 만든 뗏목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제주에서 중학교 재학 시절 단체 입장으로 보았다. 말들이 모는 전차 경주의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지만, 필자에게는 뗏목에 두 사람이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이 장면 또한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조그마한 조각배에 타고 표류했었다면 그 배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있지만 뗏목은 어떠한 경우에도 뒤집히는 위험성이 없기 때문에 편안한 안심감을 주었다. 벤허는 아리우스 제독과 로마에 개선하여 제독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의 포상으로 노예 제도에서 풀려났고 그의 양아들이 되었다.

필자가 영화 벤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러한 영화 이야기보다 표류 중에 탔던 뗏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아직도 강렬하게 남은 그 장면을 들추었다. 여기서는 뗏목이라고 썼지만 제주에서는 이러한 배를 일반적으로 ‘테우’라고 부른다.

필자의 고향은 제주시 삼양 2동인데 조그마한 어선이 출입하는 작은 선착장도 없는 검은 모래뿐인 해변이다. 삼양 1동(설개)과 3동(벌랑)은 이러한 선착장이 있어서 이곳에 중학교 때 놀러가면 친구들이 뗏목(테우)이나 작은 낚싯배를 태워서 가까운 바다로 나갔었다. 이때에 낚싯배를 타면은 꼭 멀미를 했는데 테우를 타면은 멀미 걱정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테우를 좋아했고, 영화 벤허 속의 뗏목에는 감동했었다.

지난 10월에 도서출판 신아에서 “제주 테우 문화”가 출판되었다. 테우 자료집처럼 느꼈지만 그 영역을 뛰어넘어 표지 뒷면에 쓴 것처럼 “역사의 격랑을 헤쳐온 제주 바다, 제주 사람들의 삶에는 테우가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책의 표지 정장도 튼튼하고 본문 내용에는 컬러 사진과 테우 설계도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글자가 커서 읽기 쉬워서 필자는 단숨에 읽어버렸다.

제주 땅에 돌하르방이 있다면 제주 바다에는 테우가 있었다. 목차는 5장과 부록 1.2로 구성되었는데 테우 지식이 전혀 없었던 필자로서는, 읽고 나서 테우 전문가가 된 느낌이 들었다. 제1장. 제주도의 해양 환경 및 역사적 고찰. 제2장. 테우의 구조와 기능. 제3장. 테우 현황. 제4장. 테우의 생활 문화사. 제5장. 제주 문화의 조명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테우 입문서이며, 교과서였다.

제2장 테우의 구조와 기능에서는 테우 명칭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소개하는데, 제주 지역에서도 그 명칭이 다름을 알고 놀랐다. 제주시 이호동에서는 ‘테우’라고 하고, 우도에서는 ‘터우’ ‘터욱’ ‘터위’라 부르고 구좌읍 평대리에서는 ‘떼배’라고 하고, 서귀포시 보목리에서는 ‘떼배’ ‘테위’ ’테’ ‘터우’ 표선면 세화리에서는 ‘터배’ 성산읍 오조리애서는 ‘테위’ ‘터배’ 삼달리에서는 ‘때배’ ‘터위’ ‘테위’ ‘테’라고 부른다고 했다. 필자의 고향 삼양애서는 ‘터우’라고 불렀었다고 기억한다. 이렇게 부르는 명칭이 지역마다 다른 것은 그만큼 애착을 갖고 각 지역 생활에 밀착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불리고 있는 명칭인 ‘테우’로 사용하겠으며, 부득이한 경우에만 지역에서 부르는 명칭을 쓰겠다고 기술했었다. 테우의 제작 과정에서 삼나무나 한라산의 구상나무를 잘라서 몇 개월간 말리는 등 사전 준비가 오래 걸리는 과정을 처음으로 알아서, 해변에서 자랐지만 이러한 것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에 혼자 읽으면서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테우 위에 다시 평상처럼 상자리를 만들어 휴식을 취하거나, 해녀들이 미역 철과 다른 해조류를 채취하면서 추위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서, 불을 지피고 테우 선상의 불턱용으로도 사용했다는 사실에는, 제주 해녀들의 진취적인 삶의 도전에 마음을 숙연케 했다. 그런가 하면 자리돔을 거는 테우 사진을 보았을 때는, 풍요스러움과 평화스러움, 그리고 여유로움들이 어우러진 내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제주의 잊을 수 없는 풍물시의 하나였다.

각 마을 마다 찾아다니면서 테우 제작과, 테우를 타고 자리돔과 여러 해산물 채취를 했던 사람들의 채록 기사는 테우의 역사와 문화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해 주었다. 더욱 놀란 것은 <제주 테우 문화>의 저자가 세 분 중에 두 분은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남성도 테우 제작 과정과 채록 등은 경험이 없으면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테우라는 배를 제작하는 등, 각 방면에서 사용하는 것을 여성이 전문 지식을 갖고 집필할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테우의 제작은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배가 아니었기에 마을 공동체에서 수시로 제작되었다. 개인이 제작하여 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속화되어가고 기술 혁명과 과학 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전통시대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삽시간에 사라져갔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전통 테우의 소실이다.”

“제주 전통 테우의 자취가 사라지기 전에 테우에 관한 지식과 제작 방법, 테우 문화, 테우의 생활사를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절박성에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첫머리에 “책을 펴내며”에서, 양종렬, 장혜련, 김순이 씨 세 분의 인사였다.

양종렬씨는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에 적을 두고 있었으며,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이다. 장혜련씨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비상근)이고, 김순이씨는 제주도만속자연사박물관, 제주도 문화재감정관,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이다.

대표저자 양종렬 씨는 이 책을 펴낸 후, 눈이 편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 빨리 회복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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