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과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16)조선국방경비대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암살범 문상길·손선호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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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과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16)조선국방경비대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암살범 문상길·손선호 사형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2.1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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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학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교육정립위원장

조선국방경비대 제11연대장 박진경 대령 암살범 문상길·손선호 사형

8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 제6회 공판이 속개되었다. 이날 전 피고 8인 중 황주복(黃柱福․24) 하사와 김정도(金正道․25) 하사에 대하여는 사실 심문에 있어서 증거 불충분과 기소 이유 불명확으로 재판장 이응준 대령으로부터 무죄 석방의 언도가 있었다.

잠시 휴정하여 심판관 전원의 판정평의(判定評議)와 판결평의(判決評議)가 있은 다음 11시 20분 문상길(23) 중위 및 신상우(20) 하사, 손선호(23․저격범) 하사, 배경용(19) 하사 등에 대하여 총살형에, 양회천(梁會千․25) 이등상사는 일체의 급료 몰수와 무기징역, 강승규(姜承珪․22,애월면 상귀리 출신 ‘강자규’ 일설도 있다 ) 하사에 대하여는 급료 몰수와 5년 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을 각각 내려(경향신문 1948년 8월 15일) 11시 30분 박대령 암살사건 고등군법회의는 모두 끝마쳤다.

4명의 총살형은 9월 23일 하오 3시 경기도 수색(水色) 지역 모 산록에서 집행하기로 되었는데 총살형에 처해질 명단은 문상길(23) 중위 및 신상우(20) 하사, 손선호(23․저격범) 하사, 배경용(19) 하사 등이었다. 9월 23일 집행 직전에 신상우(申尙雨) 하사와 배경용(裵敬用) 하사는 특사로 감형(경향신문 1948년 9월 25일)되었다.

이 감형에 대해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27쪽에는 “변호인의 감형 진정서가 제출되고, 각계에서 감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총살형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그 덕분인지 신상우‧배경용에 대한 총살형은 집행 직전 특사에 의해 무기형으로 감형되었다” 고 기술하고 있다.

박진경 대령 암살범에 대한 감형 언론을 주도한 대표적인 신문이 박진경 대령 암살 재판을 좌파적 입장에서 상세히 보도한 조선중앙일보이다.

조선중앙일보는 어떠한 신문인가? 김일성 직계로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를 조직하여 1947년 2월 서울에 잠입한 성시백이가 막대한 자금으로 남한의 군사 특급 기밀을 빼돌렸는데 이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중국 장개석 총통과의 비밀회담, 이승만 대통령과 육군 수뇌부만 아는 원자모의 전략 계획서, 1949년 5월 38선 최전방 국군 배치도 등이다.(박윤식. 여수 14연대 반란(여수 순천사건),(서울 : 도서출판 휘선, 2012), p. 97.) 그리고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 등 10개의 신문사를 직접 운영하여 투자한 신문 중의 하나가 ‘조선중앙일보’를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중앙일보의 암살범에 대한 감형 기사내용을 보면 1948년 9월 1일자 ‘문 중위 사형 반대 삐라!’ 제하에

‘지난 30일 하오 5시경 시내 화신 5층으로부터 돌연 수많은 삐라가 가두에 살포되었는데 삐라의 내용은 문 중위에 대한 사형집행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조선중앙일보 1948년 9월 1일)는 내용이다.

9월 23일 하오 3시 15분 경기도 수색지역 붉은 산기슭에 대한민국 육군 제1여단 사령부 정문을 떠난 대형 군 트럭 한 대에는 석 달간 영창생활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가 수갑을 찬 채 군기병의 호위 가운데 나란히 앉아 있었다. 군 트럭은 벌거벗은 산과 산모퉁이를 감돌아 준비된 사형장으로 가는 것이다. 네모로 깎은 말뚝이 둘, 붉은 산기슭에 나란히 서 있다.

9월 23일 하오 3시 35분, 동 45분. 수색(水色) 동방 5리 지점 이름 없는 붉은 산기슭에 터져 나온 10발의 총탄이 발사되어 육군 제11연대 육군 중위 문상길(文相吉ㆍ23), 위생병 하사 손선호(孫善鎬ㆍ22)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하나의 말뚝을 향하여 최후의 담배를 피우고 난 허리끈 없는 장교복 문상길 중위가 천천히 걸어간다. 군기사령관인 사형집행 장교에 의하여 총살형 집행장이 낭독되고 마지막 유언의 기회를 준다.

미군 장교 2명, 관계인 장교, 그리고 기자 입회하에 총탄을 받은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는 지난 6월 18일 오전 3시 4·3사건의 발발지 제주도에서 국방경비대 11연대장 박진경 대령을 살해하였던 것이다.

문상길은 “스물세살을 최후로 문상길은 갑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군대입니다. 마지막 바라건대 ×××의 ××아래 ×××의 ××아래 ××를 하는 조선군대가 되지 말기를 바라며 갑니다.”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문상길의 몸이 말뚝에 묶인다. 하이얀 수건으로 두 눈을 가렸다. 왼편 가슴 심장 위에 검은 동그라미 사격표식이 붙여졌다. 10m의 거리를 두고 다섯 명의 사격수가 쏜 총탄 다섯 발은 기어코 문중위의 가슴을 적중하였다. 이때 하오 3시 35분. 뒤이어 말뚝을 향하여 다시 손선호 하사가 걸어가며 미소를 띤 얼굴로 상관들에게 일일이 목례를 한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던 군가나 한마디 부르고 저 세상으로 가겠습니다.”

발을 멈추고 머리를 하늘 쪽으로 돌려 노래를 부른다.

사형집행 3분 전이다.

끝나자 집행장이 낭독되고 유언으로 “훌륭한 조선군대가 되어 주십시오.” 단 한 마디. “겨누어 총.” “쏘앗.” 다섯 발 M1 총알은 손선호 하사의 가슴을 뚫었다. 이때 하오 3시 45분. 1948년 9월 23일 하오 3시 35분, 동 45분, 서울 북쪽 수색 동방 5리 지점에서 일어난 총성은 멈추었다.(서울신문 1948년 9월 26일)

1948년 제주에서 제9연대장을 지낸 김익렬은 자기 유고 『4·3의 진실』에서 다음과 같이 제11연대장 박진경 암살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총살형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해괴한 것은 참관한 하우스만 대위가 다가가 넘어진 시체에다 자기 피스톨(권총)을 꺼내 난사했다는 것이다. 하우스만 대위는 경비대 정보책임자로 박진경 대령과 절친한 친구였으며 미 군정장관 딘 장군에게 박대령을 추천한 장본인이었다. 총살 현장의 광경은 참관자들의 마음 속에 이렇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라고 기술하여 하우스만 대위는 죽은 사자(문상길, 손선호)에도 총을 쏘았다고 부적절하게 적어놓았다.

최근에 아이러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11월 26일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는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의 사형이 집행된 곳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수색기지 인근에서 진혼제를 했다고 전해진다.

‘문상길 중위 손선호 하사 진혼제’ 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그 옆에는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내걸었다. 저승에 있는 문상길과 손선호는 태극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한번 음미해 볼만하다. 문상길은 5월 20일 제9연대 41명의 군인들이 총과 탄알을 가지고 탈영하는 날 당직사령이었고 철저한 남로당 공산주의자이고, 손선호는 대구 10·1폭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으며 제주에서 5·10 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자기 담당구역인 한림면 일대의 각 투표장에서 선거방해 공작을 하였다.

‘애국애족 전사들이시여! 이곳에 모인 후손들은 임들이 구해주려 했던 제주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이 나라와 제주사람들을 구하려했던 높은 뜻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뉴제주일보 2022.11.27.) 진혼제 제문을 읽으면서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을 암살한 남로당 장교 프락치 문상길 중위와 사병 프락치 손선호 하사를 추모했다.

지난 9월 22일 제주4·3도민연대(대표 양동윤)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통일청년회는 22일 남로당 장교 프락치 문상길 중위와 사병 프락치 손선호 하사가 사형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기도 한 야산을 찾아 진혼제를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봉행된 이날 진혼제는 약력 및 경과보고, 제주4·3 추모시 낭독, 총살 목격기 낭독, 주제사, 추도사,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는 12월 1일~3일 전주형무소 터와 4.3희생 지역 순례 및 진혼제를 했다고 한다.

“그 시절 목숨 내던져 제주 사람 살린 애국 국민 전남 보성 사람 양회천 이등상사도 이곳에서 숨졌나이다. 양회천 이등상사여! 이제야 왔다고 노여워 마시고 강림하옵소서!” -4.3도민연대 초혼문 中

양회천(梁會千․25) 이등상사는 과연 누구인가?

양회천은 제9연대 남로당 사병 프락치로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암살에 깊이 관여한 반역자 군인이다.

남로당제주도위원회 군사총책 김달삼의 연락원인 제11연대 배경용 하사를 통해 박진경 대령 암살 지시를 받은 문상길 중위는 암살을 모의·준비하기 위해서 진압·토벌작전에는 빠지고 아프다는 핑계로 위생병 손선호를 대동하여 제주도립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남로당 장교 프락치 문상길 중위는 남로당 사병 세포인 전라도 보성 출신 정보계 양회천 이등상사를 긴급히 불렀다. ‘17일 날 저녁 대령 승진 옥성정 축하연에 참석하여 귀가하는 반동의 거두 박진경을 사살하라. 국방경비대가 우리 인민해방군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김달삼 동무의 지령이다.’지시를 했다.

옥성정에서 축하연이 있는 날 남로당 사병 세포 양회천 상사는 남로당 세포원들을 신상우 하사 숙소로 조용히 모이게 하여 세포원들에게 박진경 대령 암살에 주어진 임무를 부여하였다.

주어진 임무는 ‘박진경 연대장이 숙소에 도착하여 잠이 깊이 들 때인 새벽 3시

경이 제일 좋으니 신상우 동무는 부대 정문에서 연대장이 오는 것을 확인해서 강자규 동무에게 알려주고, 강자규 동무는 즉시 배경용 동무와 손선호 동무에게

알려주면서 연대장 사무실 밖에서 보초를 서고, 배경용 동무는 손전등으로 불을 켜주고, 손선호 동무는 M-1총을 쏘는데, 두 방을 쏘면 잠자다 놀라서 모두 일어나면 안 되고, 또 죽은 후에 피가 많이 흐르고 보기가 흉하니 머리에 딱 한방으로 끝내야 되요.’ 등 역할 분담들을 시켰다.

‘잠을 자던 사람들이 잠결이라 총소리도 난 것도 같고 나지 않은 것도 같아 꾸물대어 사살 후 우리 동지들이 도망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죽은 시체가 험하지 않아 증오심이 적을 것이니 지시대로 침착하게 행동하여 실수 없이 하라. 만약 실수로 잡힌다면 나 혼자의 죽음으로 끝내야지 절대로 다른 동무들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엄하게 전라도 보성 출신 양회천 이등

상사는 남로당 사병 프락치들에게 지시를 했다.

이것이 양회천 이등상사가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암살에 깊이 관여한 내막이다.

경향신문 1948년 8월 15일자에는 ‘8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 암살사건 제6회 공판이 속개되었는데 심판관 전원의 판정평의(判定評議)와 판결평의(判決評議)가 있은 다음 11시 20분 양회천(梁會千․25) 이등상사는 일체의 급료 몰수와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을 각각 내리어 11시 30분 박대령 암살사건 고등군법회의는 모두 끝마쳤다’(경향신문. 1948년 8월 15일.)고 보도하고 있었다.

조선중앙일보 1948년 8월 15일자에도 “박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고등군법재판이 드디어 14일 오전 11시 반 양회천(2등상사·25)에 무기징역 언도하였다.(조선중앙일보. 1948년 8월 15일.)”고 보도하고 있으며,

한성일보 1948년 8월 15일자에도 ‘박대령 암살사건 제5일 고등군법회의는 ……14일 다시 제6일 공판으로 들어갔다. 극도로 긴장된 법정에는 곧 언도가 내리어 조선경비법 제35조에 의하여 양회천(하사)은 무기징역을 언도하였다(한성일보. 1948년 8월 15일.).’라고 보도하고 있어

일체의 급료 몰수와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은 양회천 이등상사(25세)는 제11연대장 고 박진경 대령을 암살에 참여한 주범중에 주범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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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하악전투 2023-12-16 09:31:05
제주4.3사건은 중앙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고 반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