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29)기적은 우리들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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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큰 별 세네갈](29)기적은 우리들 안에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2.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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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선생님의 KOICA 해외교육 봉사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기적은 우리들 안에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라는 이승복 의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두 번째 읽지만 여전히 큰 감동이 밀려온다. 그는 한국 출신 사지마비 재활의학과 전공의다.

10여 년 전 서귀포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읽은 적이 있는데, 며칠 전 유숙소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서 빌려다가 다시 읽었다.

1973년 그의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욕 퀸즈 플러싱에 정착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나디아 코마네치의

수펴맨 장애인 의사 이승복
수펴맨, 재황의학 분야의 최고의 장애인 의사 이승복

경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체조를 시작했고, 15세에 두각을 나타내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1982년 국제 친선 주니어 체조대회 종합 3위, 전미 체조대회 청소년부에서 마루와 도마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1983년 훈련 중 사고로 경추를 다쳐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고 전까지 이승복은 대한민국 국가대표의 꿈을 가지고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고 후 오랜 고난과 재활을 거쳐서 팔과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재활 과정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의가 생겼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끝난 후 가을, 이승복은 공부를 결심하고 뉴욕대학교에 입학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난 후,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으나, 학장이 추천서를 써 주지 않아 의과대학 진학을 일단 접어두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받았다.

주위의 격려와 그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1993년 다트머스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는 휠체어를 탄 첫 의학 생도였다. 2001년 졸업을 했고, 하버드 의과 대학교에서 인턴을 마쳤다.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서 재활의학 수석 전문의로 근무하게 되었다. 동료 의사들은 이승복은 척추외상환자를 돌보는 데, 정상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의 별명은 '슈퍼맨 닥터 리'이다. 영화 〈슈퍼맨〉의 주연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와 같은 증상을 앓았고,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너 차례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알아주는 약사였지만 이민을 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였다. 미국에서는 생활 유지와 자녀 교육을 위해 청소부, 수퍼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가계를 꾸렸다. 그 과정에 수 차례 죽음과 부딪혔다. 약탈, 방화, 도둑, 강도 등을 당하면서 치열한 생활을 하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결국 다시 한국으로 역 이민을 했다.

또 다른 반공소년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연상하면서, 인간 극복 인간극장을 보는 듯했다. 그를 보니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를 보면서 사람은 계획이 있어야 뜻도 이루고 꿈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계획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세네갈에는 세네갈 도약 계획(Plan Sénégal Emergent; PSE)이 있다. 그 내용을 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육부 고위 간부들과
교육부 고위 간부들과

국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하여 세네갈 정부는 2014년 2월에 2014-2023년 간 경제사회개발 청사진을 담은 ‘세네갈 도약계획(Plan Sénégal Emergent; PSE)’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PSE에 따라 현재 연 4.6%의 경제성장률을 4년 이내 연 7-8%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5.4%에 달하는 정부 재정적자를 2018년까지 3.9%로 낮출 계획이다. PSE는 2035년 신흥 경제국으로의 도약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축을 전략의 기초로 하고 있다.

PillarⅠ: 현재의 원동력과 새로운 개발 분야의 통합으로 경제의 구조적 개혁으로 부와 직업 창출, 사회적 통합 성취

Pillar II: 국민의 삶의 질 개선, 사회적 불균형 해소, 자원의 보존과 신생지역의 지원 등

Pillar III: 사회적 안녕과 발전 잠재력 구현을 위한 국가안보, 안정성 및 거버넌스 강화, 인권과 자유 보호

또한, 2014-2018년 5년 간 동 전략을 추진해 갈 구체적인 ‘우선순위 사업추진계획(Plan d'Action Prioritaire; PAP)’을 수립하였다. PAP의 공공분야는 ①인프라, ②에너지, ③농업, ④교육 및 직업훈련, ⑤식수 위생, ⑥보건 등 6개 핵심 분야다.

이제 나도 더 열심히 계획적으로 살아야겠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책을 읽으면 삶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12월 11일)

마갈뚜바

오늘은 마갈 뚜바(Magal Touba)라고 하는 공휴일이다. 독립투사이고 전 국민이 성인처럼 존경하는 ‘아마두 밤바’라는 분을 모시고 있는 뚜바의 대사원 모스크를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행사이다.

기도 시간이 되자 모두 차에서 내려 기도 중인 무슬림
기도 시간이 되자 모두 차에서 내려 기도 중인 무슬림

세네갈 이슬람의 대표적인 4개의 종파 중 가장 큰 종파로 약 400만 명에 달하는 ‘무리’가 성지순례를 위해서 세네갈 내에 있는 Touba라는 도시로 대이동을 한다. 많은 인구가 움직이다 보니 전국의 모든 기관이 Magal Touba의 앞뒤를 포함해서 며칠간 쉬고 사람들은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Touba를 향해 이동하기 때문에 주유소에 기름이 다 떨어지는 사태도 일어난다. 또 낡은 버스나 트럭 위에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타서 이동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각 이동거점에는 음식을 판매하기 위해서 많은 상인들이 모여든다. 뚜바에 이동해서는 마라부가 제공하는 소를 잡아먹고 또 많은 돈을 헌금한다고 한다.

세네갈 이슬람은 특이하게 모하메드(이슬람의 창시자)보다 오히려 마라부 (코란, 경전을 가르치는 사람)을 더 믿고 따른다. 무리 종파가 믿는 마라부는 ‘아마두 밤바’( Shaikh Aamadu Bàmba Mbàkke) 라는 사람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바다 위에 서서 기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이렇게 많이 따른다고 한다. 실제로 온 세네갈에 벽화와 스티커, 목걸이, 사진을 걸어둔 것에서도 사회, 문화, 경제, 정치에 걸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세네갈은 이슬람과 마라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나라다. 전 국민이 그들을 존경하고 흠모한다. 택시나 차량 집안 등 곳곳마다 흰옷에 검은 얼굴이 대조를 이루는 그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기간 중에 수백만 명이 성지 뚜바를 찾으면서 교통사고가 폭주하기도 한다. 우리 청장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그리로 갔다.

나는 이틀 계속 성당에 다녀왔다. 요즘은 해가 짧아 돌아오는 길이 너무 어둡고 또 매연과 먼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 모래 먼지 속에서 땅콩 몇 봉지, 과일 몇 종류를 팔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마갈 뚜바 축제로 다카는 텅 빈 느낌이다. 물론 마키살 대통령도 그곳에 가 있다. 텔레비전에서 그곳에 가서 마라부에게 절하고 참배하는 모습을 계속 방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종교 국가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종량 자문관도 자기 부서에서 출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했으나 인턴과 자기밖에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그 부서 장관은 축제를 전후해서 보통 한 달 동안 그곳에 머물고 사무실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세네갈의 정신적 지도자
세네갈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교육자인 마라부들

저녁때 배윤정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자문단이 함께 알마디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두 자문관은 몇 차례 갔다 왔나 보다. 꼬막과 홍합, 또 굴을 시켜 먹었다. 모든 음식이 1Kg에 2000 세파 정도했다. 그런데 꼬막도 아주 작고 굴도 아주 작다. 껍질을 포함해서 파니 실제 먹을 것은 별로 없다. 원래 굴은 이곳 사람들이 먹지 않는 식재료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으니 요즘은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이다. 홍합은 아주 크다. 자연산이고 크기도 워낙 커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이 자문관이 덧붙인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오니 좋다. 일몰이 일품이다. 사진도 몇 장 남겼다.

(2014년 12월 11일)

타버린 계란

오늘은 큰 실수를 했다. 책을 읽다 조금 졸린 상태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았다. 무엇일까? 꿈일까?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냄비에서 계란이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주 까먹는 일들이 있다. 세탁기에 빨래를 작동시키고 잊어버리고,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를 비웠다 곧 까먹는다. 그래서 원칙을 나름대로 세워본다. 수도든 음식이든 진행 중일 때는 지루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그러나 전화도 받고 다른 일도 조금 신경 써서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나는 계란을 그냥 삶아 먹는다. 전에 후라이팬에 익혀 먹었었는데 오래된 후라이팬인지 많이 달라붙고, 먹은 다음 설거지가 귀찮고 냄새도 나고 해서 포기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10개 정도를 삶아서 냉장고에 쌓아둔다. 그리고 아침 식사는 사과 한 알, 계란 한 개, 끼렌(생수) 한 잔으로 간단히 먹는다.

아마도 계란이 다 익은 후에 다시 20분 정도 더 끓이다 보니 물이 다 증발하고 온통 태웠나 보다. 집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냥 외출 중이었으면 어찌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하다.

(2014년 12월 19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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