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09) 재일 동포의 고향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09) 재일 동포의 고향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3.12.26 0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9) 재일 동포의 고향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지금 일본에서는 각종 TV와 미디어들이 연말 연시의 민족 대이동을 식상할 정도로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 북새통 속에서도 마지막 잎새처럼 덜렁 남은 한 장의 카렌다는 일주일도 남지 않은 여명 속에 자기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해마다 펼쳐지는 불변의 연중행사의 풍경들이다. 한국에서는 구정의 음력설이 있기 때문에 신년의 연휴는 다소 거리가 먼 느낌일 것이다.

그 동안 민족 대이동의 흐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타향살이 속에서 귀향 의식이 강했던 귀소본능의 차원을 뛰어넘어 미지(未地)와의 만남을 위해서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민족 대이동의 대상에는 경제적 여유로 인해 지역 차원 속에 한정되었던 것이 지금은 지구 차원으로 다양화 되었는데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민족 대이동의 원류는 아직도 고향이 텃주대감처럼 군림하고 있다.

"구니에가에리마스카?: 國へ帰りますか?: 고향(한국)에 가십니까?" 십 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일 동포 1세들 사이에는 연말이 다가오면 오가는 인사 중의 하나였다. 구니(國)라는 단어는 한자 그대로 국가를 뜻하지만, 재일동포나 일본인들끼리 서로 사용할 때는 고향을 의미한다. 이럴 때 동포 1세가 고향(한국)에 혼자 갈 때도 있었지만 2세 가족들과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약 40만(일본 귀화 동포 제외)의 재일동포 사회에서 1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내로 줄어든 현재는 1세의 고령화로 이 러한 인사는 사어(死語)나 다름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해방 이후 한글 세대가 일본에 정주하는 신 1세들 (일본에서는 '뉴커머'라고 부른다.)의 경우에는 다르지만 아직도 재일동포 사회 속에서는 소수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재일동포 3,4세가 주축을 형성하는 동포사회에서 그들의 고향은 어디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재일동포 사회만의 현상이 아니고 한국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고향이라는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보편적 의미에서 고향이라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말한다.

그러나 부모의 고향을 자기 고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재일 동포 사회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현저했었지만, 1세의 감소로 그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다. 예를 들면 필자의 고향은 제주이다. 제주에서도 더 축소 시키면 태어나서 자란 제주시 삼양이다. 그렇다면 필자의 자녀도 고향은 제주시 삼양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오사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녀들은 많이 가야 일년에 한번 가나 마나 하는 아버지 따라 가는 삼양이 고향일까.

이것은 한국 국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족들의 세대에도 적용되는 문제이다, 부모 고향이 제주도(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니까 서울이나 부산 등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자기 고향 역시도 제주도라는 말이다. 필자는 이러할 경우 자산의 본적지는 제주도이지만 고향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향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의 차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재일 동포 사회에는 다른 차원의 갈등도 존재한다.

우선, 고향이라는 개념이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는 고향이라는 개념을 <고향이란 유년 시절 스스로가 몇 년간 보냈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즉, 유년 시절의 지울 수 없는 화석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개념을 대입했을 때, 재일 동포 2세 이후의 세대들의 고향은 일본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한국 군대까지 갔다온 필자의 일방적인 논리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래서 동포 2세인 70대의세 사람의 의견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물론 태어나고 자라난 곳은 일본이고. 더구나 동포 밀집지인 이쿠노지만, 출신지라면 몰라도 고향을 일본(이쿠노)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부정하는 의견을 말했다. 출신지와 고향을 구분하는 주관적 논리에 놀랐지만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동포는 2세 고향이 일본이어야 한다는 말, 잘 말해 주었다고 적극적인 찬성을 했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재일 동포 사회에 보이지 않는 배제감과 저항감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정면으로 잘 말해 주었다고 덧붙였다.

또 한 사람은 50대 초반까지 한국 한번 갔다 온 적이 없었지만, 나의 고향은 부모가 살았던 경상북도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의 부모는 고국에서 결혼 후, 일제시대에 일본에 왔는데 자신은 그 사이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사정으로 한국에 갈 수 없어서 50대에 간 부모 고향이지만 자기 고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갔기 때문에 같이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고향에 대한 견해가 다른 사실에 재일 동포 사회의 또 다른 심연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고향이라는 단어에는 어머니 품 속처럼 다정함과 따뜻함 그리고 그리움 등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곳을 상상하고, 실재의 고향 역시 때에 따라서는 고무풍선처럼 부풀려서 미화 시킨다. 그런데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동포들은, 그곳을 그리운 고향이라고 상상하고 미화 시키는데는 솔직히 저항감이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에 살면서 몸에 베인 어떤 차별감이 고향이라는 본질적인 개념까지 희석 시키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아니라고 반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고향에 대한 정서적인 생각에서 나온 반대라고 생각한다.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정확한 고향의 개념은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지만, 그 실체적인 고향 보다는 더 많은 애정과 친밀감을 아니면 똑 같이 느낄 수 있는 향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향은 한 마디로 그립고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는 선입감에서 일어난 정서적인 사고(思考) 속의 환상의 고향이다.

십 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일본에 귀화하는 재일 동포(한국・조선적 포함)가 1만명을 넘는 추세였다. 그러나 2020년부터의 법무성 발표에 의하면, 2020년도가 4,113명, 2021년도가 3,564명, 2022년도가 2,663명이었다. 해마다 줄어드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귀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한국・조선 국적을 가진 재일 동포 인적 자원의 감소에 의한 비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연말 연시 민족 대이동 기간에 이동하는 재일 동포들은, 본적지가 있는 한국의 선조 고향을 찾아가는 귀국이 아니라, 실지로 자기 부모들이 살고 있는 일본 어디인가의 귀향을 위해 마음 설레고 있을는지 모른다. 과연 <재일 동포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끝으로 덧붙인다면 고향 사랑과 나라 사랑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