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0)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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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0)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1.0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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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저물어가는 올해를 잘 마무리 하시고, 빛나고 희망에 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필자도 "마지막 잎새처럼 며칠 남지 않은 올해를 유종의 미로 마치시길 바랍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합니다. 새해도 시작의 미를 잘 거두시고 충실한 일상이 넘쳐흐르기를 기원합니다." 등의 연하 글을 써서 보냈다.

연말연시를 전후해서 서로 주고받는 스마트폰은 저무는 한 해를 아쉬워하고 새해 찬가로 넘쳐났다. 그 많은 복을 받는다면 스마트폰은 엄청나게 무거워져야 할텐데 가벼움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희망의 기원 속에 막을 연 1월 1일과 2일은 일본열도와 한반도는 그와는 정반대인 대형 재해, 사건, 사고의 돌연변이 일상으로 변해 버렸다.

연말연시의 연휴 속에, 기다림의 재회로 즐겁던 일본열도의 가족의 단란한 한때가 지진으로 무너졌다. 신년 축하 일색으로 웃음과 즐거움을 제공하던 일본의 각 TV는 신년 특집 방송을 모두 중지하고 이시가와현 노도반도에서 일어난 지진을 생중계했다. 지정학상 일본열도의 숙명적인 지진이라고는 하지만, 정월 초하루의 지진은 면역이 된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정에서 오랜만에 귀성한 가족들과 정답게 주고받던 그 가족의 누군가가, 아니면 가족 모두가 한순간에 집이 무너지면서, 싸늘한 죽음으로 변해버린 이 엄청난 현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했을까. 화면을 응시하는 시청자의 가슴도 미어지는데 당사자는 어떠했을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북받치는 가슴의 통곡을 절제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 각국이 이구동성으로 일본 국민을 질서 의식이 뛰어난 민족이라고 모두 높게 평가한다. 질서 의식이라면 어떤 단체 속에 서로가 남에게 피해, 혹은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면이 강한 자신에 대한 절제이고 희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것은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났을 때만이 아니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감정 표현은 다양하다. 가령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 축구의 승리나 자신의 지역 출신의 스포츠 선수의 활약이 두드러질 때에도 그 기쁨의 감정 표현은 절제하지 않고 몸짓까지 하면서 그대로 나타낸다.

그런데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는 전혀 다르다. 생이별의 현장과 현실 속에서도 대성통곡 한번 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 마구 쏟아지는 눈물도 없다. 단체 속에서만이 아니고 개인적인 주변 환경 속에서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단체 속에서의 의도적인 질서 의식 이전에 각 개인의 심적 현상이고 현실이다.

70대의 일본인 저널리스트에게 이러한 일본인의 심적 구조를 물었더니 생각 끝에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한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가 지고 참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의 대답에 전부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참는다는 데는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나라 한국을 ‘한의 나라’라고 한다, 외국인들도 그렇게 말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선전한 요소도 많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말 그대로 한의 나라이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대륙의 한반도에 지나지 않은 한국이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지켜온 나라로서 많은 굴곡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면에서는 모든 굴욕을 참으면서도 대성통곡의 유일한 치유법도 있었고, 희로애락의 감정 표현은 민요, 풍자와 해학적인 가면극 등 다양하다. 이것은 한에 대한 대항 정신과 정화 시켜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한이 없는 나라가 없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의 종교, 민족 분쟁으로 되풀이되는 전쟁은 해결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면서 한을 재생산 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은 축적된 한의 절제가 그 원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2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부지를 시찰 후, 이동 중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이 뉴스를 들은 필자만이 아니고 동포들은 아연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범인의 범행 동기 등은 조사에 의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테러 행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하루빨리 완쾌되어서 정상적인 여야 대결의 선거에 임하기를 기원한다.

한편, 이러한 테러는 고국의 정치가 막무가내로 양극화로 치닫는 내로남불의 결과이기도 했다. 정치가들의 정제되지 않은 원색적인 비난도 테러라는 극단적인 사태에 불을 붙였다.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에 언제나 심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지만, 한국 정치가들의 비난 또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실정이다. 그들의 국어 수준이 아니라 인품의 저질화를 스스로 노출 시키는 추태를 자랑스럽게 연출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들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와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웠던 한국의 서정적인 아름다움마저 이러한 정치가들은 '가장 시끄러운 나라'로 한국을 전락시키고 이끌어가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게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앞에서도 자칭 애국자라고 외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같은 날인 2일 저녁에 일본 하네다공항에서 일본 JAL 여객기와 일본 해상보안청의 수송기가 충돌했다. 승객 367명, 승무원 12명이 탑승한 JAL 여객기는 화재 속에 전원 비상 탈출구로 대피해서 무사했다. 해상보안청 수송기는 6명이 탑승했는데 5명이 사망했다. 수송기는 노도반도의 지진 지원 물자를 수송하던 중의 안타까운 2차 참변이었다.

대형 사고 속에서도 여객기 탑승자 전원이 무사한 대피는 이거야말로 질서 의식이 낳은 기적이라고 외국에서도 높게 평하고 있다. 신년을 맞이해서 이틀도 채 지나기 전에 한반도와 일본열도 이웃에서 엄청난 일들이 발생했다. 특히 노도반도의 상황은 육로의 막힘으로 지원 물자가 공급되지 않아서 엄동설한에 피난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하루빨리 보편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의 절실한 바람이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 멀고 아득하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보편적 일상이 행복한 가정의 나날들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신년의 이틀이었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빠른 복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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