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1) ‘제주문학’ 겨울호 제9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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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1) ‘제주문학’ 겨울호 제97집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1.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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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제주문학’ 겨울호 제97집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제주문인협회(회장 양전형)가 발행하는 계간 문예지 2023년도 겨울호가 제주에서 십 여일만에 도착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붙인 책이 한달 이상 걸리던 때를 생각하면 무척 빠른 편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었다. 그때로 되돌아가기는 앞으로 어려울 것이다.

이번 겨울호에는 제주문인협회가 선정하는 2023년도 제주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이 상에 장승련 시인(동시)이 수상했다. 그의 시 2편을 소개한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어느 새>라는 동시이다.

어느 새

내가 친구에게

좋아한다 말해볼까

생각만해도

마음은 어느 새

두근두근

 

토라진 친구와

웃으며 화해해볼까

생각만 해도

마음은 어느 새

방실방실

장승련 시인의 작품 세계를 쓴 김종호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시인의 눈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마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가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한다. 어른들도 두근거리게 하는 마음이다. 시인은 일상 속의 평범한 진리를 찾아내어 격정적이거나 고조되지 않은 쉬운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2018년도에 발표한 <비오는 날>이다.

 

비오는 날

 

비오는 날

너와 내가

한 우산을 들고 걸어가면

 

소곤소곤

우리 둘이 나눈 이야기는

 

도도 도도

비가 다 듣고

 

우리가

어깨를 붙여

팔 걸고 걸어가면

 

비는 어느새 다가와

오른 쪽 내 어깨를 적시고

왼쪽 네 어깨를 적시네

 

비도 우리 사이를

시샘하는 걸까?

 

위 시는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을 노래한 시인가. 장 시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설정에서 환경의 복원과 인간성 회복을 줄기차게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곧 생명 존중이며, 또 그것은 자연 사랑일터, 꿈과 소망을 실현하는 본질이 될 것이다라고 김종호 시인은 평하고 있다.

여기에 필자의 생각을 덧붙인다면,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자신을 갖고 있다. 이중 인격자인 요소도 물론 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순수한 두 개의 자신이다. ‘동심으로 돌아갔다’라는 말을 가끔 듣기도 하고 자신의 그 동심 세계에 빠질 때가 있다.

이것은 동시, 동화 작가만의 갖는 마음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 동화 작가들에게는 이 마음이 일상 생활에서 동시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타임머신처럼 동심과 어른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두 개의 자신을 갖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주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합니다.

다음은 강희규 시인의 <오름>이다.

 

오름

 

도란도란 돌아앉아

마주 보며 소곤거릴 때

여명이 물러간 허리춤에

하얀 천 걸쳐 들고 아침을 맞네

 

밤새 서러움에

살포시 내려앉은 새벽 눈물이

반갑게 찾아오는 아침 햇살

입맞춤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굼부리를 휘감는 골바람에 실려온

님의 향기가 가득하구나!

 

368개가 있다는 제주 오름은 서로 마주볼 수 있는 거리에도 있다. 의인화 속의 오름을 연민스럽게 관조하는 시각이 무척 아름답다. 새벽 아침에 스며드는 실안개는 허리에 살짝 걸쳐 나풀거리는 하얀 천이었다. 밤새 속삭이다가 떨어져야 할 서러움은 살포시 눈물이 되어 내려앉은 새벽 이슬이었지만 아침 햇살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찾아온 골바람은 굼부리를 휘감고 님의 향기가 되어 전한다. 많은 작품 속에서 돋보이는 오름 시였다.

다음은 고문현 시인의 <고적한 니힐리스트>이다.

 

고적한 니힐리스트

 

펜이 지나간 원고지에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남고

물감이 스쳐간 화선지에는

정다운 고향산천이 펼쳐지지만

한편 님 떠난 빈 가슴에는

너울만 출렁출렁

기억을 허물었다 지었다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몹쓸 그리움만 남았다.

 

님 떠난 사랑의 아픈 마음을 원고지의 글과 캔버스의 그림의 비유 속에 제시한 콘트라스트는 빈 가슴을 더욱 비게 만들었다. 비유의 대상이 된 원고지에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였으며, 캔버스에는 모두가 그려보는 고향산천이라는 발상도 그 많은 대상 중에 선택한 감각 또한 날카로워서 헤어진 그리움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것은 결코 몹쓸 그리움만은 아니다. 이 그리움이 없다면 모든 세상살이는 황량한 들판과 같은 삶의 연속이 될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적한 니힐리스트>라는 제목이 약간 위화감을 느끼는 데 필자의 기우일까.

다음은 박미리 시인의 <별사람 당신>이다.

 

별사람 당신

 

젊음의 용광로 앉고

신기루 찾던 시절엔 먼 하늘의 별이

더 빛나 보일 때도 있었지만

 

불혹이라는

부록(附錄)을 간직한 이제는

가장 가까이서 빛나 주는 별이

진정한 별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굳이 사랑이라는

포승절 없어도 눈 감으면

한움큼 별이 주르르한

별사람 당신

 

모진 풍상에 넘어질 듯 아슬해 보여도

속으론 더 단단히 뿌릴 키운 바위처럼

내 삶에 뿌리내려 날 비추이네요

그 세월 돌아보며 더 사랑할게요

 

먼 하늘의 별은 역시

잠시 잠깐 빛나다 사라지는

신기루일 뿐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 삶 자체를 사랑으로 승화시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앞에 소개한 사랑의 두 작품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꿈은 나이와 반비례한다고 하지만, 꿈의 축소가 아니고 꿈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행복의 상징으로 불리우는 파랑새는 먼 하늘에 떠있는 신기루의 별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평범한 별이었다. 그러나 그 별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참된 신기루 같은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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