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큰별] (33)무슈 장, 고마워요!
상태바
[아프리카의 큰별] (33)무슈 장, 고마워요!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2.11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영운 선생님의 KOICA 해외교육 봉사활동 체험기
이영운 선생님
이영운 선생님

무슈 장, 고마워요!

오늘은 조금 늦게 일어났다.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날인데 어제부터 시내에 시위가 있어 휴교 조치가 내려졌다. Malky Salle 현 대통령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하는 시위다. 아마도 전 대통령 Wade의 아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위 같다. 전에도 메모리얼 오벨리스크 주변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적이 있다. 그러나 과격하게 충돌하거나 화염병, 최루탄이 발사되지는 않는다. 시위대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현 대통령은 원래 전 정부의 국무총리 출신으로 1차 투표에서는 패배했었다. 50% 이상을 득표해야 대통령이 되는데, 어느 누구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재투표를 하게 됐다. 1차 투표에서는 Wade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었다. 그러나 2차 투표에서는 10개의 야당이 연합하여 현 대통령 Malky Salle을 당선시킨 것이다. 그러니 전직 대통령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자꾸 이리저리 새 정부를 흔드는 것 같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어제는 사무실에 화이트보드를 사서 설치했다.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드다. 교육청 본부인데도 안내판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판자에 종이를 붙여 안내판이라고 써서 압정으로 전달하는 내용 등을 부착했었다. 아주 작고 길쭉했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한 개 구입하여 기증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시내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모나미 문구점에 가서 한국에서 수입한 화이트보드를 구입했다. 자석식으로 사용이 편리하도록 소위 리모델링 했다. 또 보드 판에 일간, 주간, 월간, 정보, 휴가 등 칸을 만들어 깔끔하게 구분 정리해서 자석으로 붙여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15만 세파 정도 들었다. 무척 비싸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5미터짜리가 22만원 정도 했었다고 기억하는데 서너 배 비싸 보인다. 유아교육청 직원들은 모두 고마워했고 화이트보드에 누군가 ‘Merci Beausoup! Monsieur Jean!’이라고 써 놓았었다. 이곳에서의 내 현지 이름은 Jean Diouf다. Jean은 나의 천주교 세례명이고 청장의 성이 Diouf여서 내 이름을 Jean Diouf로 정했었다. 직원들은 나를 Jean이라고 부른다.

지우개, 색별 마카 펜, 종류별 자석 등을 갖다 놓으니, 직원 소냐가 전부 회수해 간다. 그곳에 그냥 비치하면 누가 곧 가져가 버린다고 한다. 나는 누구나 자유롭게 놔두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의 판단이 옳을 것이다. 워낙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이라 이해가 되었다.

저녁 늦게 때 한국에서 와서 며칠간 활동하던 사이버 대학 설치 팀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샤바트라는 한국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모두 네 분이다. 우리 쪽에서는 소장님 등 사무소 직원 3명, 교육에 종사하는 봉사단원 5명이 참석했다. 최동선, 권덕용, 김유나, 황재윤 그리고 나다. 사이버 대학 설립 팀은 고계수 연구원(부천대학교), 양혜경(코이카 교육전문위원), 박승원(희림건축 전무), 구양미(방송대 뉴미디어 기획팀장) 선생님 등이었다.

Malky Salle 대통령 방한
Malky Salle 대통령이 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작년에 코이카 이사장이 이곳 고등교육 장관을 만나서 사이버 대학 설립 요청을 받았고 이를 승인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해서 현지 조사를 온 것이었다. 모두가 이 분야의 엘리트이고 배터랑이다. 구양미 선생은 파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서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전 세계를 누비는 연구원들이다. 그분들이 교육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 대학생들은 국가에서 10만 세파를 지원하고 본인이 90만 세파 정도 부담하여 컴퓨터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중고등학생들은 거의 컴퓨터가 없어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최동선 선생님 말은 중고생은 PC방을 이용하여 컴퓨터를 한다고 했다. 음식은 닭볶음, 꽃게탕이 나왔다. 많이 남아서 김유나 선생이 남은 음식을 싸서 내게 주었다. 돌아와 냉장고에 보관했다. 한두 끼는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날은 마침 세네갈이 말리와 아프리카컵 축구 예선을 치르는 날이었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가게마다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수십 명씩 모여 있다. 그래서 거리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세네갈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기는 대단하다. 모든 공터에서는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틈나는 대로 축구를 한다. 거리의 아이들인 탈리베들도 깡통으로 축구에 열중한다. 이날 축구는 1대 1로 비겼다.

(2015년 1월 24일)

김장 체험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김장을 했다. 쥬르벨에 사는 이득규 선생님이 김장을 하자고 했다. 작년에도 했다고 한다. 쥬르벨은 3시간 정도 거리다. 다카에 출장으로 온 김에 함께 김장도 해서 가겠다고 했다. 우리들만 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도구도 있어야 하고 장소도 여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한인선교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작년에도 그곳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목사 사모님의 안내로 김장 김치 체험중
목사 사모님의 안내로 김장 김치 체험중

이 선생님과 김유나 선생이 우선 깰멜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무, 파, 젓갈, 마늘 등을 사왔다. 전날 저녁때 함께 모여 4, 5시간 동안 마늘을 깠다. 아침에 유나 선생이 다니는 한인선교회에 가서 소위 공동 김장을 한 것이다. 목사 사모님이 오셔서 작업 순서, 또 양념 준비와 만들기 등 김장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정성껏 도와주셨다.

그곳에 마늘 가는 믹서가 있어서 쉽게 할 수 있었다. 배추는 부산식당에서 샀다. 이곳에서는 배추를 먹지 않으니 재배하지도 않는다. 이곳 중국인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위해서 배추를 재배한다고 하는데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세 사람이 쓸 것으로 40Kg을 샀다.

김장하면 돼지 수육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를 어렵게 구입하여 김장 끝에 김장 김치와 함께 즐겼다. 아삭한 김장 김치에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를 오랜만에 먹으니,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사모님은 중간에 옥수수도 쪄 주셨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비단결 같다. 중간에 코이카에서 퇴직한 봉사단원인 홍나니 단원이 와서 도와주었다. 그녀는 2013년에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관리 요원 신청을 했는데 안 됐다고 한다. 그러나 세네갈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서 작은 사업을 하면서, 꿈을 계속 키우고 싶어 왔다고 했다. 용기도 있고 지혜도 넘쳐 보인다.

나는 이득규 선생과 함께 배추 절이는 일을 먼저 했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무도 썰고 파와 양파도 다듬었다. 파는 3, 4센티 정도로 썰었다. 여기에 오징어 소스, 고춧가루, 풀 등을 넣어서 양념을 만들었다. 절인 배추는 네 차례 씻었다. 사막에서 재배된 배추라 모래가 워낙 많다. 시래기도 일일이 손질하여 삶았다. 새 밥을 지어서 김장 김치와 돼지 수육을 곁들여 먹었는데 최고의 맛이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집에 오니 오후 다섯 시였다. 그런데 김장을 어떻게 익혀서 먹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2015년 1월 29일)

어떤 부부

문재인 전 대통령이 Malky Salle 대통령에게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를 선물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Malky Salle 대통령에게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를 선물하고 있다.

요즘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같다. 새파란 하늘에 조금씩 구름이 빗겨 지나간다. 자동차 매연과 먼지바람 하마탄만 없다면 너무도 쾌적하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여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 그 무더웠던 여름을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과 같은 날씨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에 이처럼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아마 세네갈 다카가 그래도 가장 복받은 곳일 것이다. 아침 미사에 다녀오고 나서 김장 김치로 바께트를 먹었다.

미사 중에 보면 특별한 부부가 있다. 항상 맨 앞에 자리 잡는 부부다. 50세 중반처럼 보인다. 부인은 백인이고 남편은 흑인이다. 항상 아주 가까이 붙어 있고, 미사 중에도 항상 손을 꼭 잡고 있다. 부인은 바싹 마른 프랑스인 같고, 남편은 큰 골격의 백인의 피를 조금 받은 흑인이다. 이곳에서 다문화 가족들을 보기는 거의 어렵다.

미사 보는 모습도 아주 진지하고 성실해 보인다. 그런데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모두가 주변 사람들과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하지만, 이들 부부는 주변 사람들과 악수를 하지 않는다. 한 번은 한 흑인 할머니가 오랫동안 손을 내밀어도, 눈을 감고 앞쪽만 향했다. 그들의 행동은 이해가 되었지만 조금 민망해 보였다. 나는 그런 용기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먼저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나눈다. 무엇이 그들의 행동에 변화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악수는 문제가 많은 신체 접촉이다. 많은 질병이 악수를 통해 전염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어떤 여자들은 악수 후에 손 소독제를 바르는 모습을 쉽지 않게 보게 된다. 변화는 항상 바르게 긍정적이며 오른쪽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고 양심이라고 기대해 본다.

(2015년 2월 1일)

[전 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 전 외국어고등학교교장, 전 위미중학교교장, 전 BHA국제학교경영이사, 전 동티모르교육부교육행정자문관, 전 세네갈교육부교육정책자문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