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4) 이쿠노 돌하르방 설치와 군마현 추도비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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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114) 이쿠노 돌하르방 설치와 군마현 추도비 철거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2.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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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이쿠노 돌하르방 설치와 군마현 추도비 철거

늦어도 많이 늦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설치되어야 할 곳이었다. 이쿠노에 있는 공원에 지난 1월 29일 돌하르방 한쌍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돌하르방의 설치가 늦었다는 비난이 아니다. 그 동안 부자(父子) 2대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라고 높게 평가하고 싶은 의미에서 말하고 있다.

제주 돌하르방은 지금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 중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중남미 파라과이에도 설치되어 세계 각국에 약 30기가 있다. 모두 공적인 장소에 설치된 것인데 사적으로 설치한 곳을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일본에는 도쿄 아라카와구, 와카야마, 산다시, 오사카 민족학교 백두학원에도 설치되었다. 그

런데 이쿠노만은 공적 장소에 없었다.

제주도가 지난 1월 29일 일본 속의 한국으로 불리는 이쿠노의 공원에 돌하르방 2기를 설치했다. 

약 13년 전인 2010년 7월 필자는 제주 조천읍이 본적지인 동포 2세인 당시 홍여표(80) 도쿠야마물산 회장을 인터뷰했다. 이 기사를 필자가 연재하고 있던 제주투데이 <김길호의 일본이야기>에  "이쿠노에 돌하르방을'(2010,7,26)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속칭 죠센이치바(조선시장)로 불리웠던 상점가의 행정상 정식 명칭은 '미유키도리상점가'였다. 이 상점가는 다시 미유키도리히가시(東), 쥬우오(中央), 니시(西)상점가로 나눠져 있었다.

홍 회장은 미유키도리쥬우오상점가 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당시 3개 상점가가 하나가 되어  연중행사로 공동 개최되었던 <이쿠노 코리아타운 공생마쓰리(축제)>를 성공적인 축제로 발전 시키고 있었다. 2009년 10월에는 서쪽 상점가 입구에 있는 미유키모리덴진규우신사에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갖고 왔다는 왕인 박사의 가비(歌婢)를 건립했다. 닌도쿠천황을 모신 신사인데 4세기에 왕인 박사와 닌도쿠천황과의 교류가 있어서 그때 왕인 박사가 지은 노래를 지은 가비이다. 이때에도 건립위원회 고문으로서 많은 공헌을 했다. 필자는 가비의 설명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제주도에서 동, 서상점가 양쪽 입구에 세울 커다란 돌하르방을 기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설치하겠습니다." 홍 회장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행정상 제주도와 정식 교류는 없었지만 재일 동포의 성지로 상징되고 제주 출신이 경영하는 상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곳에 어느 곳보다 먼저 세워져야 했었다. 상점가에 사적으로는 자기 가게 앞에 돌하르방을 세운 곳은 한 군데 있었지만 공공 장소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해 7월 16일 제주에서 열린 <21세기 제주 발전을 위한 100만 제주인의 역할과 과제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가하여 이 점을 강조하고 협력을 요청하고 우근민 당시 제주도지사에게 편지도 보냈다. 다음 해, 2011년 9월 1일 탐라문화제 50주년 기념행사로 오사카공연이 있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도 함께 벙문하여 코리아타운(조선시장)을 돌아보았다. 그때 필자가 안내하면서 돌하르방 기증을 다시 요청했다. 우근민 지사는 백두학원에 설치한 크기의 돌하르방을 기증하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하고 구체적인 설치 기획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홍여표 회장이 전해인 2010년 10월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돌하르방 설치에 대해 필자가 여기저기 얘기해도 모두가 소극적이었다. 결국 구체적인 진전 없이 지나면서 제주도지사도 바뀌었기 때문에 돌하르방 건립안은 표류하다가 백지화 되었다. 그후, 홍여표 회장이 뒤를 이어 도쿠야마물산을 운영하던 홍성익 씨가 중앙상점가 회장으로 취임해서,  2022년 6월에는 3개 조직으로 나눠진 상점가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사단법인(비영리형)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설립하고 이사장이 되었다.

"우리 세대에 이뤄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장에 취임하여 이 상점가를 하나로 통합했고 더욱 발전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한국 식료품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고 김치 만들기 체험과 그림들도 전시할 수 있는 다목적 홀 <반가식공방:班家食工房>을 2003년 건립한 부친의 대를 이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화가인 그는 자신이 사용하던 갤러리를 무상으로 대여하여 2023년 4월에는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사장 홍성익. 관장 고정자)>을 개관했다.

지난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철거된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군마숲 공원에 설치됐던 일제시대 조선인 강제 동원 희생자 추도비.  

그리고 지난 1월 28일에는 제주~오사카 직항로 군대환(君大丸:기미가요마루) 개설 1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이쿠노 코리아타운(속칭 죠센이치바:조선시장) 공원에 돌하르방 한 쌍이 건립되었다. 제막식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스지하라 아키히로 이쿠노구청장 등이 참가했다. 고(故) 홍여표 회장이 요청후, 약 10년만에 부자 2대에 걸친 결실이었다. 10년 전 홍회장을 인터뷰했던 필자로서도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홍성익 이사장은 2022년 11월 제주 동문재래시장과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공헌을 인정 받아서, 홍성익 이사장은 2023년 제주문화상 해외부분을 수상했다.

한편,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에 걸쳐서 군마현 다카사키시 '군마의 숲' 공원에 설치되었던 일제시대 조선인 강제 동원 희생자 추도비가 철거되었다. 일본 시민 단체가 시민 모금으로 2004년 4월에 세워진 추도비였다. 2012년 추도제에 참가한 사람이 강제 연행에 대해 언급한 것을 우익 단체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서 법정에까지 비화했다. 

추도비 설치 당시 허가 조건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사항에 위반된다는 대법원 판정을 받고, 군마현이 철거를 강행했다. 양심의 시민 세력에 대한 우익의 무모한 주장에 법원과 행정이 손을 들어주었다. "과거의 역사를 수정할 의도는 없다. 추도비 자체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의 이율배반적인 발언 속에 '역사지우기'가 잠재하고 있었다.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건립한 돌하르방과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는 하루를 사이에 두고 일어났다.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의 '역사 지우기'와 차원은 약간 다르지만,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설치한 돌하르방은 '역사 새기기'였다. <역사 새기기>와 <역사 지우기>라는 역사의 콘트라스트였다. 미래 지향이라면 모두 밝은 미래만을 생각한다.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도 야마모토 지사는 현민들은 이해할 것이라면서 밝은 미래 지향을 내비추고 있지만 어둠을 향하고 있다.

오사카 코리아 타운의 조선이치바는 재일 동포의 상징적인 곳이지만, 혐오 대상지의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속했던 곳이다. 한때 상점마다 문을 닫아 '셔터를 내려서, '셔터의 거리' 위기 속에 처해 있던 코리아타운이 한류 붐을 타고 부활했다. 지금은 어느 일본의 재래시장 보다도 집객력 최고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코리아타운은 한류 붐의 부가가치 속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재일 동포 문화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제주 돌하르방의 설치는 그런 의미에서 새롭고 밝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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