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116) 허무한 '정연(政緣)'과 무소속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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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116) 허무한 '정연(政緣)'과 무소속 출마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4.03.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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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116) 허무한 '정연(政緣)'과 무소속 출마

“유교의 나라 한국에서는…” 일본 매스컴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나 일상적 습관을 소개할 때, 가끔 사용하는 첫 마디이다. 재일동포들이 이러한 보도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내용에서도, 이 수식어의 관용구는 한국이라는 국명 앞에 얹혀진다. 진부한 예이지만,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노인들께 자리 양보하는 일상적 풍경에서도 “유교의 나라 한국에서는 노인을 공경하는 관습이 몸에 베여서…”라고 한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여러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이니 다른 나라에서도 있는 일인데, 꼭 ‘유교의 나라’를 접목시킨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의 끈끈한 정을 논할 때는 한 단계 비약해서, 한국 특유의 ‘3연’도 도마에 오를 때도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 요소로서 빠질 수 없는 주축을 이룬다고 한다.

사실이다. 혈연과 지연은 유년기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채, 신체의 한 세포처럼 성장을 같이하면서 학연이 가미된다. 20대에 사회 초년생이 되면서부터 이 3연은 옷 젖는 줄 모르는 가랑비처럼 몸에 스며들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런데 ‘사연(社緣)’이 없는 것이 가끔 이상하게 느낄 때도 있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취업한 회사, 관공서 등은 정년을 맞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몇십 년을 같이 지내는데 구체적인 ‘사연’으로서 표면화되지 않는다.

취업 대상이 일반 회사가 아닌 또 다른 직업 선택이 있다. 정치가가 되기 위한 정계 입문이다. 젊었을 때부터 정계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분야에서 사회적 명성을 얻고 그것을 자본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을 필자는 또 하나의 인연으로서 <정연(政緣)>이라고 스스로 명명하고 인식하고 있다.

이 정연이야말로 가장 활동적이고 파괴적이다. 동일한 이념과 사상, 신조 속에 굳게 뭉쳤다고 동지라는 호칭 속에서 경쟁의 상대 정당을 이기기 위해 투쟁, 쟁취, 전쟁 등의 과격한 표현 속에 목적 달성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올해의 총선거는 어느 해보다도 한반도를 들끓게 하고 있다. 여・야당의 공천 과정과 결과가 본선을 능가하는 치열함을 보여 주었다. 일본에서 바라보는 재일동포들에게도 그 치열함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야당의 공천 과정의 고무줄 시스템과 범죄 혐의자들의 비례 정당 창당에는 심한 혐오감을 자아내고 있다.

여・야의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는 경선과 전략 공천의 부당성을 비난하면서,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동일 지역구에 출마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관리해온 지역구인데, 중앙당 차원에서 일방적인 행위라고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 생명에 사활을 걸고 관리해온 지역구에서의 배제는 실로 참담할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구에서 평가를 받고 싶어서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후보자 본인에게 있어서는 숙명적이고 당연지사일는지 모른다. 유권자들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경선 후보자끼리 힘을 합쳐도 어려운 선거일 경우, 탈당을 하고 그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은 공멸을 의미한다. 공생이 아니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다.

군소 정당의 후보자가 지역구에 출마할 때에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고 당의 선전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여당과 제일 야당의 후보자는 당선이 목적이다. 물론 3파전에서 이길 수 있는 특출한 후보자도 있지만 극소수이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동일 지역구에서 무소속 출마의 승패는 후보자 자신이 유권자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사실이다. 그런데도 출마를 강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공천 탈락의 억울함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당선 가망성이 없는 동일 지역구에서의 무소속 출마는 유전병처럼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것은 자신만의 패배가 아니고 자신을 지지하고 투표를 한 유권자까지 동반한 패배인 것이다. 그 책임은 막중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부조리는 후보자 자신이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념과 사상, 신조가 같다고 동지라면서 같이 행동해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배신의 정치가 시작된다. 때에 따라서는 모든 혈연, 지연, 학연이 후보자 자신들만의 욕망으로 정연(政緣)으로 이끌어내고 이 배신의 정치에 가담시키곤 한다. 이러한 고질적인 유전병은 정치가 스스로가 고쳐야 한다. 대의(大義) 속에 사의(私意)를 버리면 언제나 바로 고칠 수 있는 유전병이다.

해외 거주 동포들에게는 지역구와 비례 양쪽에 선거할 수 있는 투표 권리와 비례 투표권만 부여되는 동포로 구분된다. 알기 쉽게 말하면 외국에서 태어나고 거주가 오래되어, 한국에 주민등록이 없거나 말소된 그 자손들은 비례투표권만 부여되고, 주민등록이 있고 국내 거주자가 외국 주재일 경우에는 지역구 투표권도 부여된다.

필자에게는 비례 투표권밖에 없다. 일본에서는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해외 공관과 민단 사무실에서 부재자 투표가 실시된다. 고국에서처럼 혈연, 지연, 학연이 '정연'과 헝클어져서 치열한 선거전은 없지만, 재일동포 사회에는 그것을 초월한 ‘국연(國緣)’이 있다. 외국에서 한국인라는 국연 속에 모국 사랑을 위해 모인 동포들이다. 재일동포 사회만이 아니고 재외동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나라 사랑을 위해 투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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