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11)세월(송상)
상태바
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11)세월(송상)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7.08 2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월

눈 깜박할 사이였다. 민달팽이가 콩잎을 갉아 먹은 것이

 

                                                                  -송 상- 

 

 

 

 

엊그제 새해를 맞은 것 같은데 벌써 상반기를 훌쩍 다 보내고 후반기를 마주하는 요즘입니다. 장마라 그런지 근래 자주 내린 비로 인해 눈 뜨면 이만큼씩 부풀어 오르는 게 찐빵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 초록에 초록을 보태어 마당 한 켠에 콩잎이나 따 먹을 요량으로 어머니는 소량의 씨앗 콩을 심었습지요. 그런데 손바닥만큼 한 이 땅에도 주인이 따로 있었는지 어느 날은 보니 푸르게 올라오는 콩잎 새순에 민달팽이 식구들이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어머니 농사를 아작 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예부터 여름을 나는 데에는 이만한 푸성귀가 없어 그렇다고 따로 농약을 살포 할 수도 없고 해서 밤마다 손전등을 들고 민달팽이와 숨바꼭질을 하시는. 말이 그렇지 눈 감아도 시름에 잠 못 드는 어쩌면 이런 어머니의 세월도, 그러는 어머니를 위해 늦은 밤까지 사락사락 詩를 쓰는 시인의 그 세월도,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투 잡, 쓰리 잡 생계를 책임져 온 민달팽이의 저 세월도 돌아보면 모두 다 눈 깜빡할 사이입니다.

주절주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게 또한 詩가 갖는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그 문장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제목이 그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그 詩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위의 詩 ‘세월’은 이를 대표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송인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