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21)양변기 위에서(김선우)
상태바
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21)양변기 위에서(김선우)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09.23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선우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파밭에 갔다가 모락모락 똥 한무더기 밭둑에 누곤 하였는데 어머니 부드러운 애기호박잎으로 밑끔을 닦아주곤 하셨는데 똥무더기 옆에 엉겅퀴꽃 곱다랗게 흔들릴 때면 나는 좀 부끄러웠을라나 따끈하고 몰랑한 그것 한나절 햇살 아래 시남히 식어갈 때쯤 어머니 머릿수건에서도 노릿노릿한 냄새가 풍겼을라나 야아―― 망 좀 보그라 호박넌출 아래 슬며시 보이던 어머니 엉덩이는 차암 기분을 은근하게도 하였는데 돌아오는 길 알맞게 마른 내 똥 한무더기 밭고랑에 던지며 늬들 것은 다아 거름이어야 하실 땐 어땠을라나 나는 좀 으쓱하기도 했을라나

양변기 위에 걸터앉아 모락모락 김나던 그 똥 한무더기 생각하는 저녁, 오늘 내가 먹은 건 도대체 거름이 되질 않고      -김선우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내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쏴아아…집안으로 이 ‘양변기’라는 용품이 들어 온지는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데 저희가 어릴 적 만해도 칡잎이나 모시 잎으로 뒤를 닦는 게 다반사였고, 집집마다 모두 돼지를 키워 그 돼지가 똥 무더기를 먹기도 하고 그 똥 무더기를 먹은 똥돼지가 그렇게 맛나기만 하고. 그런데 이게 가능했던 것은 그때는 먹는 것들이 죄다 자연에서 온 것이라서 잘 썩고 또 잘 분해되어 도루 자연이 되는 게 다반사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먹는 것 마다 농약이다 방부제다 하도 많이 쳐 대어서 온전한 거름이 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지경이고. 심지어는 우리 몸 그 자체가 지구를 병들게 하는 오염인자가 되어 버렸으니 이 자체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싸기만 하면 큰 병 없이 건너 갈 수 있져‘ 라고 하셨던 할머니의 그 말씀이 의미하는 참뜻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요즈음, 지난 추억은 모두 그리움이 되는 이 아름다운 느낌을 선물로 주신 우리 부모 세대가 무척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 후 우리는 아니 이 땅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는지…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네요.    <시인 송인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