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33)어느 대나무의 고백(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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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33)어느 대나무의 고백(복효근)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12.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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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나무의 고백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대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치고 서늘하게 울려퍼지는 장군죽비

하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대

그 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도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있는 것이다

                                 (복효근, '어느 대나무의 고백', 전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시인.

다 보내고 남은 달력 한 장만이 쓸쓸한 아침입니다. 흔들, 그렇게나 묵직했던 세월의 흔적들은 모두 어디로 다 갔는지 종내는 저리 홀로 남아 저리 떨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네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잊고 사는, 이 땅의 모든 장삼이사들의 생은 결국 혼자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라는 것을. ‘페르소나!’ 남들의 눈 때문에 늘 씩씩한 척 용감한 척, 사는 게 모두가 다 ‘가면’일 수밖에 없는. 그래서 오늘 저 ‘대나무’를 보며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 네 생을 노래한 시인의 혜안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라면 이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그 놈의 ‘꿈!’ 마지막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꿈을 위하여 휘청, 흔들리며, 떨며 서있는, 남들이 붙여준 그 이름⸻ 나무라고는 하지만 정작 나무가 아닌⸻을 부여안고 버티고, 버티는. 어쩌면 저 모습이 이 세밑,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왔고 또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닐는지요. 그러고 보니 칸칸이 저 나무의 옹이가 달리 옹이가 아니었네요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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