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0)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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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0)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1.12.15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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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재일작가 김길호선생

저무는 연말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에게 보내려고 정성을 다해 포장한 선물을 안고 우체국에 갔을 때, 깜빡 주소를 잊고 가서 당황하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망연자실 속에 상대방에게 바로 연락해서 주소를 확인해도 좋지만 깜짝 선물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보내는 정성의 애틋함과 희열의 감정이 반감하고 때로는 자기 혐오에도 빠지기 쉬운 애처로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순을 바라보는 노학자 이어령 석학이, 난간에 앉아서 먹이를 쫒는 참새를 보면서 회한에 젖는 한 마디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 어린 생명을 우리는 참새구이라고 해서 먹은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라는 어느 인터뷰 기사는 읽는 독자들 마음까지도 울컥하게 한다. 자연의 섭리 속에 마당에서 천진난만하게 먹이를 쫒는 그 참새들의 평화로운 생을 모질게 빼앗았다는 구순의 삶 속에서 흘린 회한의 눈물은 숙연하다.

한여름 폭풍우 속에서도 나무에 앉아서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매미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알에서 유충 때까지 무려 7년간 땅 속에서 살았던 매미가 지상에 나와서 보내는 생애는 길어서 3,4개월이다. 천적의 거미나 벌, 개미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폭풍우 때도 같은 장소에서 참고 견뎌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 폭풍우 속에서도 피하지 않고 나무에 앉아서 버티는 고고한 모습에는 나약하게 울기만 하는 매미가 아니라 숭고함이 있다.

깊어 가는 가을,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가 떨어뜨리는 황금 빛 낙엽을 쓸고 또 쓸어서 아스팔트가 피가 날 정도로 청결을 유지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낙엽이 쌓여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일지 몰라도, 황폐한 도시인들의 마음에 자연의 황금 빛 낙엽은 스트레스 치유에 서정성을 수반한 더 없는 특효약이다. 아무리 청결을 좋아 하는 일본인이라지만, 그래서 도로는 깨끗하겠지만 그 위를 걷는 도시인들의 마음은 더욱 우울하고 어둡기만 하다.

새벽, 부엌의 달그락 그릇 소리와 함께 만든 어머니의 대표적인 맛이라는 된장국의 된장이, 날에 따라 메이커가 다른 된장국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콩에서 메주로 자급자족의 된장이 사라지고 메이커 된장을 사용하는데 TV광고에 의해서 달라지는 된장국 맛은 가정마다 전통처럼 내려온 맛까지 바꿔버렸다. 변함없는 어머니 맛이라고 아득한 옛 이야기처럼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시대가 그리울 뿐이다.

어느 병원 앞에 <간호사 모집>이라는 퇴색된 간판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몇 년 전부터 아니, 그 병원이 개원했을 때부터 그 간판은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것은 그 병원을 신뢰해서 다니는 환자들의 눈에는 간호사들의 빠른 이동을 상징하고 병원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는 일반 회사 앞에 <사원 모집>이라는 간판을 본 적이 없다.

<연중무휴>라는 음식점이나 가게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손님 위주라는 서비스 정신은 대단하지만 일 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일하는 가게의 모든 것은 사람만이 아니고 모든 것이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하는 사람들도 교대식이라고는 하지만 어딘가에 긴장감이 해이되고 도구나 부엌은 마를 시간도 없다. 오늘도 피로 회복 때문에 연중무휴의 가게에서 음식을 먹거나 물건을 사기도 한다. 아이러니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절의 불상 앞에 <사진촬영금지>라는 벽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불상이 갖고 있는 권위와 촬영 시 셔터음과 빛이 조용히 감상하는 사랍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절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멀고 먼 외국에서까지 온 관광객들에게는 죄송스럽지 않을까.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일본 최고(最古)의 아스카절(飛鳥寺)의 대불상은 사진촬영이 자유이고, 그 불상 앞에 편안히 앉아서 쉬어도 된다. 그래서 찾아가는 방문객들에게는 친밀감이 있고 아늑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쓰레기 수거함'이 아닌 장소에 불법 투기되어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이불 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몰래 버린 사람의 사회규칙에 위반한 비도덕성에 대한 혐오감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이불 등이 무척 가엾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그 가족들의 단란한 일상을 같이 하면서 소중이 여겼던 물품들이다. 그러나 필요 없으니까 정해진 장소도 아닌 곳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버려진 냉정함은 소중한 일상의 추억까지 무자비하게 버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 볼펜 하나 갖지 않고 나들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그것이 당연한 일상생활의 습관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대라고는 하지만 급하게 볼펜으로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볼펜 빌려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는 모습은 아무리 좋은 정장을 한 차림새일지라도 그 가벼움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병원에 한 번도 입원하지 않고 생애를 마친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건강에 넘친 그 파워는 존경을 받을만하지만, 너무 인생을 달리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있다. 한번쯤 멈춰 서서 자신이 걸어 왔던 인생을 뒤돌아 볼 장소도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절호의 장소가 병원이라고 생각하는데, 단 하나 조건이 있다. 완치되어 퇴원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절대 필요하다. 틀림없이 입원 생활 중에 자신의 인생을 조감도처럼 뒤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사전에 첫 항목으로 소개되는 '부부'와 '결혼'이라는 사전적 설명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부부는 남녀가 결혼하는 것'이라고 표기되었고, '결혼은 남녀가 결혼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 설명이 통한다면, '동(東)은 서(西)의 반대 방향'이고 '서는 동의 반대 방향'이라고 써도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깊은 한밤중에 형광등 하나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공중전화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거리의 불들이 꺼지고 조용한 잠자리에 들어 간 도회지의 한 모퉁이에서, 상대도 없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공중전화의 풍경은 고독감에 쌓인 애수마저 감돈다. 낮에는 낮대로 사람들은 공중전화에 눈도 주지 않고 지나친다. 모두 자기 포켓트에 전화가 있으니까 나이 든 공중전화에 신세질 일이 없다. 그러나 오늘도 자기를 필요로 하는 '초대 받지 않은 소중한 고객'을 기다리면서 옹고집처럼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희로애락 때 흐르는 일본인 눈물인 '참새의 눈물'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증유의 자연 재해나 사고로 인한 절망적인 슬픔의 극한상황 속에서도 흐르는 눈물은 손수건으로 콕콕 찍어서 닦을 정도 밖에 안 된다. 마치 화장을 약간 고칠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절제된 그 억제에는 어떤 두려움도 느낀다. 이성으로 복 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의 일본인의 질서 의식은 미학적일는지 모른다. 몸부림의 절규도 문제이지만, 그러나 눈물은 남에게 감동을 주는 자신의 순수한 원점의 혼의 외침이기도 하다. 최근 일본의 도회지에서는 눈물이 갖고 있는 카다르시스를 활용하기 위해 마음껏 울 수 있는 동호인도 조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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