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9) 대통령의 '금의환향'과 '실의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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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아리랑] (39) 대통령의 '금의환향'과 '실의환향'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2.03.0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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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통령의 '금의환향'과 '실의환향'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재일작가 김길호 선생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현실화 되어서 고향으로 찾아갈 때, 우리는 '귀향'과 '낙향'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귀향은 일시적으로 고향 나들이를 할 때에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낙향은 타향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영구적으로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에 흔히 사용한다.

지금 고국에서는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최종전에 들어섰다. 이렇게 쓰면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 국적의 동포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의 재외동포는 고국에서보다 더 빠른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기일 전 투표를 실시하여 주권 행사를 마쳤다. 요즘은 동포들끼리 만나면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인사가 되고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전·현직 대통령은 고향에 새로운 집을 마련하여 낙향 준비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달성군 유기읍 쌍계리에, 문재인 대통령은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이지만 실지로 살던 곳은 아니었다.

고향이라는 개념을 좀더 정확히 분석하면 필자는 '고향이란 유년 시절 스스로가 몇 년간 보냈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즉, 유년 시절의 지울 수 없는 첫 화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향에 대한 세심한 협의적인 의미이고, 광의적인 의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구였던 정치의 고향 달성군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전에 살고 있었던 같은 양산시이지만 하북면이다. 낙향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서울을 떠나 고향의 범주에 들어있는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타향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 그 사람의 삶을 최대로 평가하는 언어로서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있다. 5월 10일 대통령 임기 5년을 무사히 마친 문재인 대통령의 낙향은 그야말로 '금의환향' 중의 '금의환향'이다.

그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떠한가. 한국 역사상 처음 있었던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박탈당하고 구속되어 4년 9개월 동안 수감되었었다.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예우도 동시에 박탈당해서, 신변 안전을 위한 경호만이 예외로 따른다고 한다.

추징금으로 사저까지 경매로 잃어버려서 집 한 채 없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원회가 마련해준 집에서 살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정반대인 만신창이에서 고향에 돌아가니 '금의환향'이 아니고 삶에서 무참히 패배한 '실의환향(失意還鄕)'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후보가 2월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해아죠'를 반복하면서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10일 이 사실을 안 문재인 대통령은 격노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의 격노에 '제 발이 저린다'라는 말이 회자되어서 퍼졌다.

임종석 문 대통령 전 비서실장은 2월 5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대한민국의 미래도 문재인 정부의 성공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소박한 삶도 여러분의 투표에 달려 있다. 위대한 국민의 땀방울과 문재인 대통령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세계의 모범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하여 후회가 남지 않도록 투표합시다'고 호소했다.

불법과 비리가 있으면 누구나 관계없이 수사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윤석열 후보의 이 발언에 격노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해달라'고 했던 문 대통령은 오히려 당당하게 '죽은 권력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야 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 치적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모셨던 대통령이니까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퇴임 후 소박한 삶도 여러분의 투표에 달려 있다'는 구절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권이 바뀌면 더 조용한 삶을 보낼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당당했다면 문 대통령의 격노나 임 전 실장의 이러한 걱정들은 다 부질없는 헛걱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낙향하는 쌍계리와 문재인 대통령이 낙향하는 평산마을은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성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추종하는 세력들은 제각기 아전인수처럼 평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은 성지로서 시민권을 얻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과 정치가 죽은 권력과 정치로 역사의 화석'이 되었을 때, 이념의 차원을 넘어 국민의 참된 성지는 과연 어느 곳이 될는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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