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24)열심히 산다는 것(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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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송인영의 문학이야기 (24)열심히 산다는 것(안도현)
  • 제주경제일보
  • 승인 2020.10.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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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산다는 것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 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하고

백 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 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안도현, 전문)

 

시인 송인영
시인 송인영

추석만 지나면 그때부터, 후년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하던 모습이 우리네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갑자기 이때부터 사정없이 기온은 내려가고 설상가상 신구간이 되면 또 왜 추위는 그리 유난스러웠던지… 그래도 직장 따라 또 하는 일 따라 형편껏 이사를 하고 그리고 봇짐을 풀고 그리고 나서 한 숨을 돌리면 그제 서야 눈에 들어오는 나무! 꽃샘바람 불 때쯤 봄 감기가 오히려 더 무섭다며 마치 솜이불을 덮어주듯 그 꽃들을 피워 올리고 여름 한 철 뙤약볕, 이에는 정말 답이 없다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전부를 내어 주고 아무리 바빠도 가을, 이 높디높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건 죄악 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라며 서둘러 자신의 분신들을 거두어들이는.

30원! 그러네요. 저 30원이 어느 사이 30년이 되고 오늘날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 왔네요. 육이오를 거치고 삼십년에 삼십년을 넘어 지금의 우리가 됐지만 할머니도 운전사도 아직은 뭔가 할 말이 많은… 그래도 이만하면 모두가 다 열심히 살았네요.  (시인 송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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